[맛 다이어리 2008 #3] 달력만 넘겨도 군침이 돈다

by조선일보 기자
2008.01.03 11:05:00

7월엔 은어… 8월엔 자리물회… 9월엔…

[조선일보 제공]



은어는 생선 비린내가 없고 수박 냄새가 난다. 강바닥 돌에 붙은 물이끼만 먹고 일급수에서만 살아서 그렇다고 한다. 굵은 소금을 뿌려 센불에서 멀찍이 떨어뜨려 천천히 구워야 수박향과 담백한 살을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은어는 섬진강과 경북 울진 왕피천, 강원 삼척 오십천, 양양 남대천 등에서 맛볼 수 있지만, 역시 섬진강이 다양하다. 경남 하동에는 ‘은어밥’이란 별미도 있다. 밥을 짓다가 밥물이 줄면 은어를 머리부터 밥에 박아 넣은 뒤 뚜껑을 덮어 뜸 들인다. 살만 발라 밥과 섞어 양념장에 비벼 먹는다.

여름 보양식으론 민물장어가 빠지지 않는다. 남성정력과 항암, 시력 향상 등에 효과가 탁월하다는 비타민A가 쇠고기보다 400배 이상이라고 한다. 장어 하면 전북 고창군이다. 풍천(風川)을 이곳 인천강 어귀 지명으로 아는 이들이 많을 정도다. 풍천이란 민물과 썰물이 섞이는 강 하구를 말한다. 인천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자연산 장어는 거의 사라졌지만, 선운사 길목부터 입구까지 장어식당 30여 곳이 성업 중이다.





올 여름 제주도에 가면 자리회와 한치회를 먹자. 제주 사람들이 가장 먹고 싶다고 그리워 할 만큼 뭍에서는 만나기 힘든 음식들이다. 자리회는 당연히 자리돔으로 만든다. 제주 어디서나 파는 값싸고 흔한 생선으로, 길이가 6~12㎝로 작다. 여름에 주로 잡힌다. 여름에는 시원한 자리물회가 최고다. 자리돔을 가늘게 썰어서 각종 채소와 함께 매콤새콤한 양념에 버무리고 얼음 띄운 찬물을 부어준다. 후루룩 후루룩 마시듯 먹는다. 작은 생선이므로 회로 먹을 때는 대개 뼈째 썰어서 먹는 뼈회(세코시)로 먹는다. 풋고추, 다진 마늘, 고춧가루 등으로 양념한 자리젓이나 소금구이는 밥반찬으로 흔히 나온다.

한치는 다리 길이가 한 치(3.3㎝)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물론 열 개 다리 중에서 8개가 한 치밖에 안 되는 짧은 길이고, 나머지 둘은 오징어처럼 길다. 맛은 한치가 오징어보다 훨씬 낫다고 제주도 사람들은 말한다. 오징어보다 육질은 부드럽고, 구수한 맛이나 단맛이 더 강하다고 한다. 제주 바닷바람을 맞으며 갓 잡아 아직 투명한 한치를 가늘게 썰어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고 싶다.



사실 밥만 맛있으면 다른 반찬은 별 소용없다. 예부터 임금 수라상에 오르던 쌀 생산지 경기도 이천에는 귀하고 값비싼 음식이 아닌, ‘이천쌀’을 내세우는 식당이 많다. 이천농협에서 저온 보관하는 벼를 그날그날 도정해 밥을 짓기 때문에 아무 때나 가도 밥맛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도 식당 주인들은 “가을 추수 직후 밥맛이 가장 좋다”고 한다. 수분함량 16%인 쌀로 밥을 지어야 가장 맛있는데, 갓 수확했을 때가 16%이다. 여기 잘 구운 전어 살 한 점 얹으면 천국이겠다. 기름이 오를 대로 오른 가을전어는 가을 별미의 대명사. 전 해역에서 잡히나, 수협 관계자나 수산시장 도매상들은 남해산 전어가 조금 더 낫다는 편으로 기운다. 경남 삼천포, 남해산을 최고로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