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하정민 기자
2005.03.07 09:54:07
[edaily 하정민기자] 일본 간판기업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이 실적 부진 때문에 물러난다. 한때 세계 가전업계 최강자로 군림했지만 과거 명성을 회복하지 못한 소니와 마찬가지로 최근 몇 년간 시련의 나날을 보냈던 이데이 회장이 결국 사임을 선언한 것.
활발한 강연과 저술활동 등으로 잭 웰치 전 GE 회장에 버금가는 스타 최고경영자(CEO)로 군림했지만 2002년부터 거듭되는 실적 부진과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책임론으로 그는 편치않은 나날을 보냈다. 이데이의 사임으로 소니는 일본 주요 전자업체 사상 최초로 외국인 출신 최고경영자를 맞이하게 됐다.
이데이 회장만큼 경영자로서 굴곡이 뚜렷한 인물도 적지 않다. 박수받는 퇴장을 할 수 있는 화려한 말년을 보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화려한 출발을 한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명성과 신뢰도에 타격을 입은 대표적 경영인이다.
1995년 당시 상무 출신에서 12명의 선배들을 제치고 일약 사장으로 발탁된 이데이 회장은 `디지털 드림`을 내세우며 침체된 소니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어와 불어에 능통하고 사교적인 그는 가장 일본적이지 않은 일본 경영인으로도 꼽힌다. 1995년 CEO 취임식장에서 한 기자가 선대 회장들의 업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데이 회장은 "선배들의 업적을 존경하지만 결코 참고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당시 소니는 3000억엔의 적자를 기록하며 비틀댔지만 그는 취임 후 바이오PC, 베가TV 등의 신제품을 속속 히트시키며 사령탑에 앉은지 3년 만인 1998년 2000억엔이 넘는 대규모 흑자를 일궈냈다. 이후에는 디지털 컨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게임기기, 영화산업 등으로 활발히 진출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면에서 세계 IT 분야의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활발한 영토확장, 특히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는 2000년대 이후 소니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가져왔다. 영화, 음반,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투자를 집중하는 대신 DVD레코더, 디지털카메라, 디지털TV 등 주요 디지털 기기 신제품 개발에 소홀해 한 수 아래로 여겼던 경쟁업체들에게 뒤쳐진 것. 디지털TV에 주력한 샤프, 디지털카메라에 집중한 캐논 등과 달리 소니는 과거의 `워크맨`처럼 소니하면 바로 떠오르는 상품을 내놓지 못했다.
게다가 소니가 가장 강점을 갖고 있었던 음향기기사업에서는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추월당한 상태. 소니는 MP3플레이어 분야에서 미국 애플 `아이팟`에 선두자리를 빼앗긴 지 오래다. 잘 알려진대로 지난 1979년 출시된 휴대형 카세트플레이어 `워크맨`은 소니를 세계 최대 전자업체로 발돋움하게 한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소니는 MP3플레이어란 시장 흐름 변화를 놓쳐 애플에게 1위 자리를 넘겨줬고 `가전왕국`이란 명성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액정표시장치(LCD) 사업도 마찬가지다. 소니는 아직도 TV 분야에 상당한 강점을 갖고 있지만 디지털TV의 핵심 재료인 LCD 패널 생산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며 투자 시기를 놓쳤다. 결국 자체 생산능력 한계에 도달한 소니는 일본 정부와 기업계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경쟁사 삼성전자와 합작, 삼성으로부터 LCD 패널을 조달받고 있다.
소니가 `본업`보다 `부업`에 치중한 결과는 실적악화로 이어졌다. 소니는 2003년 4월, 2003년 1분기에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고 당시 도쿄 주식시장은 이른바 `소니 쇼크`로 버블 붕괴 이후 최저치까지 급락했다. 이후에도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일본 경기회복으로 경쟁 전자업체들이 우수한 실적을 거둘 때도 소니의 성적표는 그저 그런 수준을 유지했다. 소니는 이미 올해 3월말 끝나는 2004 회계연도의 매출 및 이익 전망치도 하향한 상태다.
실적 부진은 사업확장을 주도한 이데이 회장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소비자 욕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무책임한 사업 확장에만 매달린 무능한 CEO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데이 회장은 작년 미국 경제주간지 비지니스위크(BW)로부터 최악의 경영자로 꼽히는 수모도 겪었다. 이데이 회장이 제너럴모터스(GM), 네슬레의 사외이사를 맡은 것을 두고 "그렇게 바쁜 데 언제 소니 일에 매달릴 수 있겠느냐"는 따가운 지적도 쏟아졌다.
이에 대해 그는 "베스트 CEO에 뽑히기 위해 경영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금까지 소니 붕괴론이 수 차례 제기됐지만 소니는 그 때마다 살아났다"고 반박했다. 소니의 퇴조가 이데이 회장의 전략 실패라기보다 산업 환경의 변화가 가져온 측면이 더 크다는 동정론도 물론 있다.
그러나 전자, 반도체, 영화, 게임, 금융산업에 이르기까지 사업 영역은 광범위하게 커졌지만 부활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전자부문 회복이 더디고 뚜렷한 캐시카우가 없다는 소니의 문제점이 상당부분 이데이 회장에게서 비롯됐다는 비난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사임 소식이 전해진 7일 일본 주식시장에서 소니 주가가 올랐다는 사실은 이데이 회장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어떠한 지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