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소리]원효대사와 김성원
by김영환 기자
2022.08.13 08:00:00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래퍼 래원의 노래 `원효대사`는 가사가 가히 충격적이다.
원효대사 오면 절이 엎어지고
현역 대상 오 불합격 추억팔이 은폐엄폐
어우 연애는 나 못 해 저기 오빠 또 해줘
저녁에 소고기 쏴버려 엎어 지갑
어떤 부분도 의미가 호응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아무말 대잔치`다. 그러나 이 가사는 의미, 곧 `기의`는 치워버리고 드러나는 발음, 곧 `기표`에 주목했다. `원효대사 오`는 `현역 대상 오`와 발음에서 유사성을 갖는다.(1000만명이 감상한 영상이 있으니 일청(聽)을 권한다.) 한발 더 나아가서 `어우 연애는 나 못`도 `원효대사 오`와 비슷하게 들리는 환청(?)마저 일어난다. 종국에는 `원효대사 오`가 `저녁에 소고기`까지 변주된다. 이 노래의 가사는 다 이런 식이다. 세포소기관 `미토콘드리아`는 항공사 `아랍에미레이트`와 병기돼 `귀르가즘`(귀+오르가즘)을 선사한다. 이 노래에서 의미를 찾는 건 무의미가 된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말한 `기표의 미끄러짐`이다. 기사를 쓰고 있는 카페에서 본 `커피`와 같은, 형태가 비교적 명확한 개념은 사회적 합의를 모으기 쉽지만 `공정`과 같이 추상적 단어는 저마다의 언어적 감수성이 다르다. 나의 `공정`과 너의 `공정`이 다르다는 건 기표가 아무리 기의를 향해 다가가봐야 미끄러진다는 의미다. 정치를 보수와 진보로 나누지만 어디까지가 보수이고 어디까지가 진보인가. 노래 원효대사는 기의의 불안함을 치워버리고 기표만을 십분 활용한 힙합 가사의 진일보다.
|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11일 서울 동작구 수해복구 현장에서 “사진이 잘 나오게 비가 더 왔으면 좋겠다”고 실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사진=채널A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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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를 지냈던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이 뭇 세인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의 현실 인식도 개탄스럽다. 주 위원장은 김 의원의 망언 직후 “여러분(기자)들 노는 데 우리가 다 (노는 걸) 찍어보면 여러분들은 (문제 될 만한 게) 나올 거 없을 것 같나”라고 되려 반문했다. 수해 현장과 `노는 데`를 연관지은 것도 기가 막히는데 우리, 즉 국회의원과 `여러분`을 동일선상에 놓은 것에는 문제의식마저도 없는 듯하다. 정치인, 그것도 300명에 불과한 헌법기관이 짊어져야할 막중함을 까마득하게 잊은 현실인식이다. 이런 인식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2018년 신년 기자회견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나 정부 정책 비판 기사에 안 좋은 댓글이 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한 기자의 읍소에 “저 역시 많은 악플을 받은 정치인”이라며 “기자분들도 담담하게 생각하면 되지 않나 싶다. 너무 예민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위로했다. 정치인들은 한 해 600조원에 달하는 대한민국 재정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권한이 큰 만큼 새겨들어야 할 비판도 크다. 그저 정치인과 `가까이 있을 뿐` 일개 국민인 기자들의 가벼운(?) 책임감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세 치는 10cm 가량의 짧은 길이다. 주로 혀를 수식한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소개된 `평원군열전`에서 모수라는 사람이 세 치 혀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강력한 진(秦)나라에 맞서기 위해 조(趙)나라 평원군의 식객 모수가 초(楚)나라 효월왕을 화려한 언변으로 설득해 구원병을 얻어온 데서 유래됐다. “모 선생의 세 치 혀가 백만 명의 군사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했다”라는 평원군의 평가에서 세 치 혀에 대한 교훈이 남았다. 정치에서는 이 세 치 혀가 더욱 중요하다. 모든 정치는 기본적으로 세 치 혀를 매개로 이뤄진다. 정치의 언어가 더욱 정제돼야 하는 건, 언어가 단순히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언어 자체가 정치를 구성하는 본질이어서다. 미디어가 발달하기 전 정치인의 가장 필수적 덕목 중 하나가 연설 실력이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들을 웅변학원에 보내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다. 유럽에서도 레토릭(수사학)은 교양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래서 주 위원장이 김 의원을 비호하려 “장난기가 좀 있다”고 가벼이 두둔한 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결국 국민의힘은 윤리위원회까지 열어 사태 수습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위로`라는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이라고 정의된다. 모호함 투성이다. 온도라면 온도계로 따뜻함을 수치화할 수 있겠으나 말이나 행동의 따뜻함이란 건 사회적 총의를 모으기 쉽지 않다. 괴로움은 어떤가. 155km의 구속을 자랑하는 LG 트윈스 투수 고우석의 공을 일반인이 받는 건 괴로움이지만 포수 유강남에겐 직업일 뿐이다. 이러니 `ㅇ`과 `ㅜ`·`ㅣ`로 구성된 `위`, `ㄹ`과 `ㅗ`로 구성된 `로`가 합쳐져 우리가 발음하는 단어 `위로`는 사회 구성원만큼이나 다양하게 소비되고 활용될 것이다. 수도권에 집중 호우가 쏟아지던 날 볕이 좋던 남부 지방에서는 1년 만의 휴가를 즐기는 국민들도 있었다. 김 의원이 잠시나마 비가 그친 수해 현장에서 비가 더 오길 바라며 건네려 했던 위로의 온도는 얼마일까. 김 의원은 “수해 복구에 나선 국민의힘의 진정성까지 내치지 않아 주길 국민께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린다”라고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다. `원효대사 오`를 `저녁의 소고기`로 발음하기 위해 수천 번 세 치 혀를 연습했을 젊은 래퍼는 청각적 쾌감을 주지만, 시작부터 기의 따위엔 관심 없었던 김 의원이 세 치 혀에 올린 `국민의힘의 진정성`은 오롯이 의미를 담았음에도 불쾌감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