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집구하기 비하인드 스토리①] 살고 싶은데 살곳 없는 합정동
by김성훈 기자
2014.10.16 08:36:16
| △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의 중심 거리인 양화로 6길에는 휴일을 맞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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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직장을 구해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고단한 시대다. 기자는 ‘햇빛을 더한다’는 뜻의 강서구 가양동에서 거주한 지 올해로 2년째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2만원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 매달 내는 월세 부담에 새 집 내음도 나지 않아 돌연 이사를 결정했다. 집주인에게 다음달 이사한다고 선언했지만 한 달 동안 새 집을 알아보려니 걱정부터 앞섰다. 현재 목표는 지금의 주거비보다 적게 드는 것. 저렴한 가격에 좋은 집을 찾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집을 알아보고 있다.
“어머, 얘 오랜만이다.” 한글날(9일) 오후, 서울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5번 출구에 내리면 친구나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곳을 시작으로 지하철 6호선 상수역까지 20~30대를 고객으로 한 커피숍과 미용실이 이어진다. 합정역 일대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신촌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홍대 상권에서 뻗어나온 서비스 업종을 흡수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합정역에서 시작되는 양화로 6길을 중심으로 도보 15분 거리에 커피숍·식당·미용실이 200여곳 이상 밀집됐다. 특이하게도 이 일대는 5층 이상 건물이 흔치 않다. 증·개축 중인 상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은 지 20년 가량된 중저층 건물들이다.
방문 전, 인터넷으로 합정동 일대의 시세를 확인했다. 전세도 적고 월세 가격도 지금 사는 집보다 최소 10만~20만원 비쌌다. 처음 찾아간 K부동산중개업소. 공인중개사에 가능한 금액을 설명하자 요즘엔 전세가 말라붙고 원룸도 ‘저(低)보증금-고(高)월세’화된 지 오래됐다며 다른 동네를 알아보라고 말했다. 공인중개사는 이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5만원짜리 전용면적 23.1㎡의 원룸이 하나 있다고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크기는 작은데 보증금은 되레 13만원 비쌌다. 서둘러 가방을 멨다.
두 번째로 찾은 B부동산중개업소의 공인중개사는 컴퓨터로 매물을 검색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합정동 일대는 원룸을 지어도 땅값이 비싸서 이윤이 남지 않아 원룸 매물이 거의 없다고 했다. 인근에 있는 오피스텔의 시세(D오피스텔·M오피스텔)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70만~75만원 선이었다.
대화 도중 전세자금대출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자 공인중개사의 수심이 가득해졌다. 매물 대부분이 근린생활주택이라 전세자금대출이 안된다면서 목록에서 다수 제외됐다. 한참을 검색하던 그는 괜찮은 집을 찾았다며 서교동으로 안내했다.
| △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일대에 들어선 원룸촌 전경. [사진=김성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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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역·홍대입구역에서 도보 10분 거리, 망원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서교동 원룸(전세 1억500만원) 앞에 내렸다. 차를 타고 이동 중에 다른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가 동석했다. 이 일대 부동산중개업소들은 ‘두레’라는 부동산 매물 검색 사이트를 공유한다. 매물이 나오면 부동산 2곳이 공유하고 거래가 성사되면 임대인과 임차인의 수수료를 각각 가져가는 구조다.
집주인을 기다리는 10분 남짓 동안 두 공인중개사는 설명을 시작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두 공인중개사의 설득은 친절하고 견고했다. 망원역·합정역이 가까운 입지 조건, 가격 대비 집 상태가 우수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건물주가 도착해 드디어 방문을 열었다.
집은 예상과 달리 좁고 오래됐다. 수납공간도 넉넉하지 않고 부엌도 오래된 집의 흔적이 엿보였다. 화장실도 성인 남자 2명이 서면 꽉 차는 크기. 1억500만원이라는 전세금이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은 선뜻 들지 않았다. 그리 오래 구경하지 않고 집을 나왔다. 맘에 들 거라고 장담했던 두 공인중개사도 이내 말수가 줄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홍대입구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전세 1억짜리 원룸이었다. 월세로는 보증금 1000만원에 60만원이었다. 그곳엔 다른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온 일행이 한팀 더 있었다. 원룸 문을 열자 색바랜 핑크색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시야에 오래된 가스레인지와 세탁기도 보였다. 전용면적(29.7㎡)은 넓었지만, 벽지와 어두운 채광 때문에 답답하게 느껴졌다.
앞서 들어간 여자 2명이 도망치듯 방을 나갔다. 공인중개사는 이 정도면 꽤 저렴한 가격이라고 말했다. 애써 웃으면서 신발을 신었다. 차는 주차한 지 3분 만에 부동산중개업소로 향했다. 휴일이라 차가 막혀 공인중개사와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합정동 일대는 1~2인 가구, 신혼부부, 작업실 용도로 집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합정역 일대 원룸 공급이 워낙 부족해 망원역과 서교동까지 수요층이 퍼졌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는 적당한 물건이 나오면 바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한글날 합정역에서 맘에 드는 원룸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문득 허황된 시작을 한 것은 아닌지 겁이 났다. 돈은 절약하고 싶은데 젊은이가 많은 지역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과한 욕심이었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기자기하던 저층 건물들이 새삼 멀게 느껴졌다. 합정동 일대는 주말과 휴일에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대표 상권으로 자리잡았지만, 거주비를 아끼며 생활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남은 시간은 이제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현실과 마주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