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발 아래로 스미는 생생한 자연을 느끼다

by강경록 기자
2019.10.04 08:03:43

대전 계족산 가을 산행
맥기스컴퍼니 조웅래 회장 2006년 조성해
장동산림욕장서 14.5km에 걸쳐 있어
삼국시대 쌓아올린 계족산성도 장관
예스런 멋과 정취 그대로 간직해

대전 계족산 황톳길은 지역 기업인 맥키스컴퍼니 조웅래 회장이 맨발 걷기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 2006년 조성했다.


[대전=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대전 외곽 동쪽에 위치한 계족산. 이 산에는 맨발로 황토를 밟으며 촉촉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길이 있다. 몇 해 전부터 이름나기 시작한 ‘계족산 황톳길’이다. 이 길의 시작은 이렇다. 지역 기업인 맥키스컴퍼니의 조웅래 회장이 계족산을 걷던 중 하이힐을 신은 여성에게 자신의 신발을 벗어줬다. 맨발 걷기의 효력 덕인지 조 회장은 그날 맑은 머리로 단잠에 빠졌다. 이후 더 많은 사람과 맨발 걷기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 2006년부터 계족산에 황톳길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올 가을 대전을 찾는다면 맨발의 ‘황톳길’을 꼭 찾아 걸어보길 권한다. 걷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숲이 얼마나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지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계족산 황톳길에서 신발을 벗고 황토 위에 올라서면 금세 시원하고 부드러운 황토의 촉감이 발바닥에 스며든다


◇ 시원하고 부드러운 황토의 촉감을 느끼며 걷다

대전 계족산 황톳길은 황토를 수시로 부어가며 길을 다져 다칠 염려가 거의 없다.
계족산 황톳길 들머리는 장동산림욕장 입구다. 여기서부터 계족산의 허리춤을 빙 돌아가면서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길이 무려 14.5㎞에 달한다. 천천히 걸으면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완주가 부담스럽다면 계족산성 입구인 봉화정까지 1시간 30분만 걸어도 좋다.

황톳길 입구에 들어서면 등산로 오른쪽의 붉은 황토가 길을 안내한다. 전북 익산 등지에서 공수해온 질 좋은 황토다. 일상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보내는 이가 야외에서 신발을 벗기란 조금은 머쓱하다. 주저하는 마음으로 신발을 벗고 발을 내디딘다. 금세 시원하고 부드러운 황토의 촉감이 발바닥에 스며든다.

길은 오르내림이 적고 유순하다. 발을 다칠 염려도 없다. 황토가 메마르면 물을 뿌려 수분을 보충하고, 황토를 수시로 부어가며 길을 다져서다. 황톳길 초입부터 계족산성 갈림길까지 중간중간 발 씻는 곳이 있어 일부 구간만 맨발로 걸을 수도 있다.

황톳길 초입부터 계족산성 갈림길까지 중간중간 발 씻는 곳이 있어 일부 구간만 맨발로 걸을 수도 있다.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밟으면 지압 효과까지 얻을 수 있어 맨발로 걷는 것이 좋다. 황토는 혈액순환을 돕고 발한 작용을 촉진해 몸 안의 독소를 제거하는 효능까지 있으니 일석이조다. 울창한 숲이 뿜어내는 청량함과 맨발이 주는 해방감을 느끼며 천천히 산을 오르는 기분이란 그야말로 몸도 마음도 가뿐해지는 느낌이다.

황톳길은 나무랄 데 없이 잘 가꾸어져 있다. 길이 가파르고 바닥에 잔돌이 좀 있지만, 둘레길에 올라서면 적당한 수분을 머금은 황톳길이 기분 좋게 밟힌다. 길에 들어서는 한동안은 시선이 발아래로 모인다. 연한 발바닥으로 행여 잔돌을 밟을세라 발밑만 보고 걷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차츰 익숙해지면 시선이 열리기 시작하고,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때 보이는 시야는 신발을 신고 그냥 걸을 때와는 또 다르다.

황톳길을 따라 1시간 정도 걷다 보면 산 중턱에 계족산성 안내 표지판이 나타난다. 산성까지 다소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하므로 이곳에서는 신발을 신는 것이 좋다. 간혹 황톳길 입구에서 아예 신발을 두고 가는 경우도 있는데, 중간중간 신발이 필요한 구간이 있으니 신발은 손에 들거나 가방에 넣어 걷는 것이 좋다.

계족산 황톳길을 걷다 보면 이 길을 만든 맥키스컴퍼니 조웅래 회장과 기념촬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 예스러운 멋과 정취 품은 ‘계족산성’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다정한 연인이 계족산성 성돌 위에 앉아 대전시내를 바라보고 있다
계족산 황톳길의 또 다른 묘미는 정상에 있다. 계족산 황톳길 둘레길을 걷다 보면 계족산성(사적 제355호)으로 가는 데크길이 나오는데 제법 가파르다. 20분가량 걸으면 계족산성이 나온다. 산 정상에 능선을 따라 쌓아 올린 석축 산성이다. 발굴조사를 거쳐 최근 복원했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성벽 곳곳에는 흘러내린 성돌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삼국시대에 쌓은 석성으로, 산봉우리 테두리에 돌을 쌓아 만들었다. 성벽 길이가 무려 1037m. 대전에 있는 산성중 가장 길다. 성벽의 안쪽 높이는 3.4m, 외벽 높이는 7m, 상부 너비는 3.7m의 규모를 자랑한다.

성 둘레는 대부분 깎아지른 절벽과 급경사다. 급경사지를 활용해 성 외벽은 수직으로 높게 쌓았다. 한 눈에 봐도 성을 매우 견고하게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성을 두가지 방식으로 쌓아 올렸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연석을 이용해 성벽의 바깥쪽에만 돌로 쌓는 내탁법(內托法)이다. 서벽과 동벽 부분을 이 방식을 적용했다. 또 다른 방법은 성벽 내벽과 외벽을 모두 돌로 쌓는 협축법(夾築法)이다. 동벽과 북벽, 서벽과 남벽 일부를 이 방식으로 쌓았다. 서벽과 남벽에 문터가 남아 있고, 여기에 우물터와 조선시대까지 통신 시설로 사용한 봉수대 등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에 산성이 들어선 이유는 이렇다. 한반도 중남부에 위치한 대전은 수도권과 영·호남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대전은 예로부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고, 전쟁이 반복됐던 삼국시대 때 그 가치는 절정에 이르렀다. 당시 백제는 대전에 수많은 산성을 만들었고, 현재 약 50여개의 산성이 남아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산성을 보유한 도시가 바로 대전이다.

최근 정비한 계족산성은 삼국시대에 쌓은 석성으로, 대전에 남아 있는 50여 석성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주한 풍광은 근사하다. 견고한 성곽 너머 대전 시가지와 대청호가 펼쳐진다. 서문 터에서는 갑천, 대덕 테크노밸리 등 대전 시내가 훤하고, 곡성(성벽 밖에 볼록한 철(凸)자 모양으로 구부러지게 쌓은 성) 오른쪽으로 대청호 물결이 잔잔하다. 대전이 발아래 있는 듯한 느낌이다. 보통 산성에서의 조망은 쳐들어오는 적을 쉽게 방어할 수 있다는 이점과 주변 산성과의 연계도 원활하다는 장점도 있다. 산성에 접근하는 적들에게 그 자체로 위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산성 또한 고색창연하다. 석성에 앉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예스러운 멋과 정취를 품고 있다. 오랜 세월 풍파에 부대끼며 무너져내러 왔지만, 꼿꼿하게 섰던 1500년 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느낌은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사람은 산성을 잊었지만, 계족산성은 지난 1500여년 간 말없이 대전을 지켜보고 있었던 셈이다.

계족산성에 올라서면 견고한 성곽 너머 대전 시가지와 대청호가 펼쳐진다.


◇여행메모

△가는길= 계족산은 경부고속도로 신탄진나들목에서 대전 방향으로 가다가 장동산림욕장 입간판을 따라가면 된다. 신탄진 나들목에서 15분 거리

△잠잘곳= 대전 유성 일대에는 호텔들이 몰려 있다. 이 일대는 호텔들이 많고 숙소사정이 넉넉한 편이라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

△먹거리= 맛집으로는 허름하긴 하지만 청국장을 비롯해 토속음식을 맛깔스럽게 내놓는 양사시골이 손꼽힌다. 제주음식을 내는 제주뜰도 이름났다. 계족산 입구의 ‘띠울석갈비’도 인근에서는 알아주는 맛집이다.

계족산 정상에 있는 계족산성은 꼿꼿하게 섰던 1500년 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