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왜곡 주범"…수요예측 제도에 쏟아지는 불만[35th SRE][Issue]
by안혜신 기자
2024.11.20 08:08:09
[35회 SRE]
시장 전문가들 캡티브 영업 문제로 지적
35회 SRE 설문서 '규제 필요성' 질문에 3.66점
"시장 왜곡 막기위해 제도 개선 필요"
[이데일리 마켓in 안혜신 기자]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 제도가 도입된지 10년이 넘어섰다. 수요예측 제도는 투명한 시장가격 형성이라는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10년간 제도 손질없이 이어지면서 점차 문제점도 두드러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캡티브 영업’이다. 당연시되면서 발행금리와 유통금리간 괴리가 커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 왜곡이 결국 회사채 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35회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 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에서 진행한 ‘현행 수요예측 제도가 도입 취지에 맞게 작동하고 있는지’라는 질문에 대해 183명의 응답자 답변 평균은 2.78점(5점 척도)에 불과했다. 5점이 ‘매우 그렇다’ 1점이 ‘매우 그렇지 않다’인데 2점대 점수가 나왔다는 것은 대부분 응답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한 것이다.
CA와 비CA, 매니저, 기타 직군을 가리지 않고 모두 2점대 점수가 나왔다. 그나마 캡티브 영업을 영업의 무기중 하나로 삼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IB 직군이 속한 기타 그룹의 점수가 2.97점으로 가장 높았고 CA는 2.65점, 비CA 2.85점, 매니저 2.79점을 기록했다.
‘캡티브 영업’을 규제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3.66점이 나왔다. 상당수 답변자들이 규제의 필요성에 공감한 것이다. 여기에서도 기타 직군의 점수가 3.31점으로 가장 낮았다. CA가 3.78점으로 가장 높았고 매니저 3.72점, 비CA 3.59점 순이었다.
캡티브 영업이란 수요예측 과정에서 계열사 수요를 동원해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A사가 회사채를 발행한다고 하면 이를 주관하는 증권사가 계열사인 운용사나 보험사 등을 동원해서 수요예측에 주문을 써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매각도 막을수 있고, 발행사 입장에서는 원하는 금리 수준을 어느 정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발행사가 이를 이용한다는데 있다. 주관사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발행 주관을 맡기겠다는 빌미로 낮은 금리에 주문을 써줄것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주관사를 따내야하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계열사를 동원해서 주문을 넣을 수밖에 없다.
SRE자문위원은 “제도 도입 10년차에 레고랜드 이슈가 터지다보니 손 볼수가 없었던 분위기”라면서 “이제 시장도 안정화됐고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 손을 봐야하는 시기가 됐다고 본다”고 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해서 동조했다.
특히 이런 행위로 인해 시장 왜곡은 물론 연기금이나 공제회처럼 실질적으로 그 기업의 회사채를 사고 싶어하는 ‘실수요자’들이 정작 매수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 응답자 역시 “현행 수요예측 제도에서는 민평금리에서 크게 벗어난 수준에서 최종 발행 금리가 결정된다”면서 “이렇게 되면 채권평가사들의 시가평가와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응답자들은 주관식 답변을 통해서 다양한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한 응답자는 “수요예측 참여자에 대한 과도한 부담과 의무만 있다”면서 “발행사는 가격결정권이 있어 입맛대로 수량과 금리를 조정할 수 있지만 수요자는 정해진 조건 하에서 참여하고 참여한 뒤에는 취소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응답자 역시 “발행사에 유리하도록 기울어진 운동장인 느낌”이라면서 “발행금리가 유통금리 대비 지나치게 낮게 결정되는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이밖에 “발행사와 일부 증권사의 그릇된 영업 관행으로 지나치게 낮은 금리로 발행되고 있다”면서 “발행 당일이나 발행일 이후 캡티브 물량들이 장외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수요예측에 제대로 참가한 수요자들은 결국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의견도 나왔다.
회사채 수요예측 시장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응답자 중 상당수가 제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만큼 이를 반영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제는 캡티브 영업을 근절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수요예측 제도를 통해 들어온 주문이 정말 계열사를 동원한 캡티브 영업인지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주관사의 계열사가 들어왔다는 것으로 캡티브 영업을 의심할 수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입증할 증거를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인 셈. 뾰족한 대안을 내놓기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그럼에도 시장 관계자들은 캡티브 영업을 근절할 수 있는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그 중 하나는 현재 발행사에 공유하기 위해 작성하는 수요예측 참여표 자체를 없애야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수요예측이 끝나면 어느 기관에서 누가 어느 금리에 어느 정도 규모로 주문을 써냈는지가 엑셀 파일로 자세하게 기록돼 발행사에도 공유된다. 하지만 이 수요예측표 자체를 없애고 누구도 확인할 수 없게 한다면 주관사 역시 발행사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SRE자문위원은 “수요예측이 끝나자마자 수요예측에 참여한 사람 실명까지 박힌 자료가 도는데 이 자료 자체를 원천봉쇄해버리는 방법”이라면서 “이렇게 되면 발행사도 그렇고 누구도 참여 정보를 알 수 없어 캡티브 영업이 사라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행사가 보험사에 퇴직연금 운용을 맡기고 그 자금을 활용해 수요예측에 참여할 것을 강요하는 행태도 문제로 지적됐다. 한 SRE자문위원은 “일종의 ‘내돈내산(내 돈을 주고 내가 사는 것)’ 행위인데 엄밀히 말하면 직원 돈인 퇴직연금으로 회사채를 비싸게 사도록 하는 것은 잘못된 행태”라면서 “최소한 이런 행위라도 막도록 규제가 생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밖에 최근 과열된 양상을 보이면서 대형화 되고 있는 발행 주관사단에 대해서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주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기는 문제인만큼 발행 규모에 따라 주관사단 선정 갯수를 제한하는 등의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SRE 자문위원은 “주관사단이나 인수단이 늘어나면 발행사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이 없다보니 1000억원 발행에도 5개 이상의 주관사가 붙어버린다”면서 “수요예측 제도가 도입된지 10년이 넘었으니 이런 폐해들을 감안해 전면적으로 고쳐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금융투자협회를 통해 시장의 의견을 수렴해 제도를 고치는 방향을 가야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지나친 규제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나왔다. 또 다른 SRE 자문위원은 “현재도 삼성생명에 일임을 받으면 삼성증권 회사채를 살 수 없는 등의 규제가 있다”면서 “좋은 채권을 살 기회를 규제때문에 놓치게 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