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화 폭락에 놀란 러시아 '달러 강제매각'까지 만지작

by박종화 기자
2023.08.16 09:09:54

내년 대선 앞두고 인플레發 민심 악화 우려
국제사회 제재에 중앙은행 개입에 한계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루블화 가치가 급전직하하면서 러시아가 외화 수익 강제 매각 등 자본통제 강화를 고심하고 있다. 화폐가치 하락이 물가 상승과 민심 악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모스크바 조폐공장에서 직원이 루블화를 옮기고 있다.(사진=AFP)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전날 수출기업과 외화 수익 강제 매각 조치 재개 등을 논의했다. 외화 수익 강제 매각은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 수익의 일정 비율을 루블화로 환전하도록 의무화하는 조치다. 달러 등 외화를 강제로 환전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달러 공급은 늘고 루블화 수요는 늘어 루블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는 효과가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루블화 가치가 급락했을 때도 한동안 외화 수익 강제 매각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러시아가 외화 수익 강제 매각 재도입을 고민하고 있는 건 다시 루블화 가치가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연초만 해도 1달러에 65루블이던 달러·루블 환율은 지난 15일 102루블을 넘어섰다. 수출 감소와 재정 적자, 외국의 루블화 기피 현상 심화 등이 통화 가치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지던 1달러당 100루블선까지 무너지자 전날 러시아 중앙은행은 예정에 없던 통화정책회의를 긴급 소집해 기준금리를 8.5%에서 12.0%로 인상했다.



소식통은 루블화 가치가 진정되지 않으면 이번 주 러시아 정부가 다시 회의를 소집해 외화 수익 강제 매각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금융정보 회사 피남도 러시아 정부가 개인의 달러 인출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소피아 도네츠 르네상스캐피털 이코노미스트는 금리 인상 외에 중앙은행의 직접 개입이나 자본 통제가 없으면 루블화 약세가 몇 달간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러시아 중앙은행은 미국·유럽연합(EU) 등의 제재를 받고 있어 외환시장 직접 개입에 한계가 있다.

이처럼 러시아 정부가 통화 가치 하락에 자본 통제 같은 강수까지 검토하는 건 하락 폭 자체도 문제지만 통화 가치 하락이 인플레이션과 경제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내년 대선을 치러야 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선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다만 알렉스 이사코프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자본 통제는 러시아가 국제 사회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구축하려는 공급망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