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반 사라지는 지하철…"무거운 백팩은 어디에 두나요"

by김보겸 기자
2019.07.28 13:19:03

2호선 선반없는 열차 200개 설치…"안전·미관 위해"
이틀에 한 번 꼴 민원…가방 둘 곳 없고 통행 불편
전문가 "선반 없애는 명분 부족…전형적 탁상행정"
서울교통공사 측 "홍보 부족 인정…재설치도 고려"

안전·미관상 이유로 선반을 없앤 지하철(위)과 객실 내 선반에 백팩을 올려둔 모습(아래) (사진=김보겸 기자)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지하철 내 선반이 줄어들면서 백팩을 메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 지하철을 관리하는 서울교통공사 측은 안전과 미관상의 이유를 들어 선반을 줄이고 있지만 정작 승객 편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하철에 선반이 없어지고 있다. 노후 전동차를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서울교통공사는 앞으로 선반 없는 열차로만 지하철을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실제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017~2018년 새로 들여온 2호선 200칸에도 선반을 설치하지 않았다. 또 2020년까지 도입하기로 한 214칸 역시 선반 없이 제작 중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서울 지하철 1호선부터 8호선까지 관리한다.

9호선 사정도 마찬가지. 해당 호선을 관리하는 서울메트로 9호선도 교통약자석 등 일부에만 선반을 설치해 운영 중이다. 9호선도 열차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지만, 여기에도 선반은 일부만 만들어질 예정이다.

지하철 측은 선반을 없애는 이유로 안전과 미관을 꼽는다. 화재 등 재난이 발생할 시 시민 대피를 쉽게 하겠다는 취지다. 또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해 지하철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지난 2002년 대구지하철 화재사건 당시 선반 때문에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아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지하철 관계자도 “지하철 테러와 유실물 방지를 예방하고 선반을 없앰으로써 탁 트인 객실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막상 선반이 없어지자 시민 불편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폭염과 폭우에 짐 둘 곳을 찾지 못한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전동차 내 선반 미설치 불편 민원은 14건 접수됐다. 이틀에 한 번 꼴이다. 서울 여의도로 출근하는 직장인 권지민(26)씨는 “폭염에 무거운 백팩을 메고 지옥철로 출근하다 보면 에어컨을 틀어도 등줄기에 땀이 나 마르지가 않는다”라며 “최근에는 선반 없는 9호선 대신 선반이 있는 5호선으로 출퇴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 2호선에 도입된 선반 없는 열차를 이용한 정모(28)씨도 “요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바닥이 축축해 가방을 놓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부피가 크고 무거운 백팩을 멘 채 지하철을 타야 할 때면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한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탁상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지하철을 타는 시민들의 불편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전문가들조차 지하철 선반을 없애는 명분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하철 화재 같은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는 통로를 가로 막는다면 모를까 선반이 피난에 크게 지장을 주지는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비상상황 시 시야 확보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선반을 없앴다는 지하철 측의 설명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교통공사 측은 선반 재설치도 고려해 보겠다며 한발 물러난 상황이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시민들의 객실 선반 이용실태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할 예정이며 이용률이 높아진다면 설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메트로 9호선 관계자도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분들은 선반이 없으면 불편할 수 있다”면서 “잠깐의 편의를 위해 안전을 양보할 수 없어 선반을 없앴지만 그 이유에 대해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