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사과는 몸에 좋고 햄버거는 나쁠까
by조선일보 기자
2008.10.15 09:28:44
건강을 해치는 음식에 대한 편견
"과일·채소가 무조건 좋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
육류 속 포화지방 90% 이상은 콜레스테롤과 무관
설탕이 비만·당뇨병 일으킨다는 과학적 근거 없어
[조선일보 제공] 식품에 대한 편견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식품은 사과일까요? 맥도날드의 빅맥일까요?’ 사과는 긍정적인 평판을, 빅맥은 부정적인 평판을 얻고 있다. 그러나 실상 사과에는 단지 비타민C 한 종류밖에 없고, 맥도날드의 빅맥에는 13종의 핵심 비타민과 미네랄이 들어 있다.
‘사과에 든 당분은 몸에 좋고 도넛에 든 설탕은 해롭다’는 주장은 당연한 것 같지만 실제로 사과에는 도넛의 두 배가 넘는 당질이 들어있고 비타민과 미네랄 함량에서는 도넛에 미치지 못한다.
최근에 출간된 ‘불량음식’(열대림)이란 책에 소개된 내용이다. 우리가 식품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을 정면으로 뒤집는 주장들이 이밖에도 적지 않다. 식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상식을 곰곰이 따져보면 과학적 근거가 불분명한 것이 많고, 일부 근거가 있는 것들도 지나치게 부풀려진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대개 원래 메시지보다 더 확대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E.오크스는 심리학자. 의사나 영양학자도 아닌 심리학자의 주장은 얼마나 타당한 것일까. 그의 저서를 바탕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식품의 ‘평판’과 ‘편견’에 대해 국내 식품·영양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 ▲ 사과는 좋고 햄버거는 나쁘다는 고정관념이 지나치면 오히려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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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간 1인당 육류소비량(2005년 기준)은 약 31.4㎏. 미국(약 116.7㎏)의 약 4분의 1이고, EU(71.8㎏)나 일본(약 43.6㎏)에도 훨씬 못 미친다.
경상대 축산학과 주선태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육류 섭취를 하면 곧바로 비만, 심장병, 뇌졸중 등을 일으킨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이미 과체중이나 비만이 60% 이상인 미국인에게나 해당된다. 육류 섭취량이 적은 한국인들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과일과 채소의 섭취를 늘리라고 말하지만 육류 섭취 중요성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고 주 교수는 설명했다.
육류 섭취를 반대하는 이유는 '육류=지방'이라는 인식 때문. 특히 포화지방에 대한 공포가 심한데, 육류에 함유된 포화지방의 90% 이상이 혈중 콜레스테롤과 관련이 없는 스테아르산, 팔미트산, 라우르산이다. 또한 식이 콜레스테롤은 실질적으로 혈중 콜레스테롤의 수치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영양관리센터 이금주 팀장은 "최근 채식주의가 유행인데, 육류를 섭취하지 않으면 양질의 단백질은 물론 비타민B12, 리보플라빈, 비타민D, 아연, 철분 등이 부족할 수 있어 임신기나 수유기, 성장기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노인들은 단백질 급원 식품인 육류 섭취가 충분치 않아 근육 및 혈관 벽이 약해져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과일과 채소가 무조건 건강에 좋다는 인식도 잘못된 것. 고대안암병원 통합의학센터 김정하 교수는 "과일에 함유된 과당은 오히려 포도당보다 혈중 지질을 증가시켜 고지혈증 등 만성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요산 수치를 높여 통풍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채소를 먹어도 드레싱을 듬뿍 뿌려먹거나 잠자기 전 칼로리가 높은 과일을 먹는 등 과일과 채소를 어떻게 먹느냐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저지방(low fat)', '무지방(nonfat)', '지방제로(fat free)'. 요즘 식품 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영양 성분 중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지방'이란 얘기다.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김현숙 교수는 "특히 젊은 여성들이 다른 영양소보다 지방에 관심이 높은 것 같다. 그러나 지방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며, 한 식품에 한 종류의 지방만 함유된 것도 아니므로 지방산의 비율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포화지방산은 나쁘고 불포화지방산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포화지방산은 주로 에너지원으로 쓰이며 불포화지방산은 주로 세포막, 호르몬 등을 구성하는 필수 성분이므로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포화지방산 대 단일 불포화지방산 대 다가 불포화지방산의 비율을 1 대 1.5 대 1로 정도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한국식품영양재단 김주현 박사는 "지방은 섭취 자체의 문제보다 칼로리가 9㎉/g로 다른 영양소보다 상대적으로 높아 비만 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하지만 지방은 세포막, 호르몬 등을 구성하는 필수 성분이므로, 지방을 완전히 제거한 식품보다는 지방이 첨가돼 있되 칼로리가 낮은 식품 섭취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프랑스인들이 미국인보다 포화지방 등 지방 섭취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질환이 상대적으로 훨씬 적게 발생한다는 것을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라고 한다. 이는 지방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지방과 와인, 올리브 등 항산화 영양소가 풍부한 식품을 적절하게 잘 섞어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김정하 교수는 "저지방 식품을 먹은 그룹과 불포화지방이 풍부한 견과류를 섭취하게 한 그룹의 나쁜 콜레스테롤(LDL)수치를 비교한 한 연구결과를 보면 견과류 그룹에서 LDL콜레스테롤 수치가 더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유는 견과류에 함유된 항산화 성분인 비타민E가 지방이 산화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쇠고기는 돼지고기보다 고급 식품으로 취급된다. 또 민간에서 어떤 때는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금기도 많다. 예를 들면 '여름철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냉장, 냉동 시설이 없던 옛날에 지방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돼지고기가 상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김진영 박사는 "돼지고기에 대한 금기 중에는 고려시대 불교의 영향으로 고기를 멀리하던 풍습에서 기인된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의 영양학자들은 돼지고기와 쇠고기의 영양학적 구성은 별 차이가 없으며, 각각 장단점이 있다고 말한다.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단백질 함량은 비슷하다. 따라서 쇠고기보다 값이 싼 돼지고기는 경제적인 단백질 급원(給源)이다.
특히 돼지고기에는 탄수화물의 체내 대사에 필요한 비타민B1이 많이 함유돼 있어 곡류가 주식인 한국인의 식생활에 꼭 필요하다. 혈액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타민B12도 풍부하다.
주선태 교수는 "돼지고기냐 쇠고기냐를 따지기보다 어느 부위를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 칼로리가 걱정된다면 지방 함량이 높은 삼겹살보다 목살을 먹는 것이 바람직하며, 수육으로 먹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2003년 국제설탕협회(ISO)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설탕소비량은 23.7㎏으로 세계 평균(22.1㎏)과 비슷하다. 미국은 30.3㎏, 싱가포르는 75.1㎏. 2006년 세계 각국의 식품수급표에 따르면 지난 20~30년간 설탕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설탕소비량이 증가하자, 설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요지는 설탕이 비만의 원인이 되므로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설탕이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신뢰할 만한 연구로는 설탕이 충치를 일으키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즉 설탕이 비만이나 당뇨병을 일으킨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학원(IOM)도 지난 2002년 "설탕 섭취와 비만과의 관계에 대한 분명하고 일관된 결론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첨가당(설탕)의 상한(上限) 섭취량을 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미국 당뇨병협회(ADA)에서도 당뇨병 환자를 위한 식사 지침을 마련했지만, 당뇨병의 위험 요인으로 첨가당은 포함돼 있지 않다.
청운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최미경 교수는 "설탕이 여타 탄수화물 식품과 구별되는 특별한 작용을 한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최근에는 총 탄수화물의 섭취량이 지나칠 때 나타날 수 있는 '고 탄수화물 저지방 식이'의 잠재적 위험을 경고하는 연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최 교수는 말했다.
김정하 교수는 "청량음료처럼 액상형태의 당분은 쉽게 많은 양을 섭취할 수 있어 비만을 초래할 수 있다. 또 설탕이나 단 음식을 많이 섭취하면 영양소가 풍부한 다른 식품의 섭취가 줄어 영양 불균형 상태를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설탕 그 자체가 병을 불러온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설탕 섭취를 줄이라고 권하지만 그들이 권장하는 식품에는 설탕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상당수의 과일은 단당류와 이당류 등 상당히 높은 당질 함유량을 자랑한다. 일부 과일은 케이크나 아이스크림보다 설탕 함량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 또 꿀 속 당분은 대부분 단당류 형태로 꿀이 설탕보다 건강에 더 좋다는 과학적 근거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통밀이 들어간 빵에 유기농 채소와 품질이 검증된 패티(햄버거에 들어가는 다진 고기)로 만들어진 햄버거가 있다면 이 햄버거는 건강에 좋을까 나쁠까?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가 비만의 주범이란 인식이 팽배해지자 미국의 일부 햄버거 업체들은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직원들의 유니폼과 매장의 내외부 장식을 흰색으로 바꾸고, 고기도 고급으로 바꿨다. 또 쇠고기를 갈고 빵을 굽는 조리실을 카운터 바로 뒤에 두어 고객들이 조리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하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햄버거 자체가 나쁜 음식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시판 중인 햄버거는 사이즈가 너무 큰 경우가 많고, 함께 먹는 프렌치 프라이, 청량음료 등의 칼로리가 높은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또 햄버거는 간편하고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패티 등이 제대로 만들어지는지도 확인하기가 어렵다. 패스트푸드의 특성상 빨리 먹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