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수익 기자
2017.01.25 07:01:00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삼성전자(005930)가 지난 2015년에 이어 또한번 대규모 자사주 매입·소각계획을 발표했다. 자사주 매입·소각은 일반적으로 강력한 주주가치 제고 정책으로 받아들여진다. 상장회사가 매입하는 자사주는 시장 유통물량을 사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유통물량이 아닌 대주주 지분은 매입대상이 아니다. 대주주 지분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소액주주나 기관투자자들이 보유한 시장유통 물량을 회사가 사들여서 태워버리는 것이 자사주 매입·소각의 기본원리다. 따라서 회사 여유자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 대주주는 앉은자리에서 지분율이 상승한다. 물론 소각 전·후 지분을 가진 다른 주주들도 마찬가지지만 그 효과는 대주주가 더 크다.
삼성전자가 만약 주주환원정책으로 배당만 선택했다면 배당받은 대주주는 세금(배당소득세)을 내야 하고 자사주 소각에 따른 지분율 상승효과도 없다. 현금은 많고 대주주 지분율은 낮은 회사가 자사주 매입·소각을 병행하면 주주가치 제고와 함께 지분율 안정화라는 이중 효과를 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3조8500억원을 배당금에 쓰고 9조3000억원을 소각목적의 자사주 매입에 쓰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3~4회에 걸쳐 자사주 매입·소각을 완료하면 현재 4.25%인 삼성물산 지분율은 4.4%(24일 종가 기준으로 매입 가정) 수준으로 높아진다. 자사주 매입·소각의 가장 큰 수혜는 기존 자사주다. 현재 단일주주 기준 삼성전자 최대주주는 자사주(12.78%)이고, 이 자사주는 유지한 채 새로운 자사주를 사들여 태워버리기 때문에 기존 자사주 지분율은 13.23% 수준으로 상승한다. 이렇게 상승한 자사주 지분율은 삼성전자 인적분할때 지배력 강화에 적지않은 도움이 된다.
삼성전자가 소각목적의 자사주를 취득하는 예정기간(1차 매입 4월24일) 동안 삼성전자 인적분할의 열쇠를 쥔 상법 개정안(박용진 의원 대표발의)도 논의된다. 인적분할 방식의 지주회사 전환 시 자사주에 분할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법인이다. 이 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을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자회사 지분을 20% 이상 갖춰야한다. 현 시가총액 268조원의 삼성전자를 1대3 비율로 지주회사·자회사로 인적분할한다고 가정하면 자회사 지분 20%확보에 약 35조원이 든다. 분할 후 가치상승을 고려하면 이 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할 수도 있다.
여기서 삼성전자가 현재 보유중인 30조 원대 자사주(12.78%)가 이러한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역할을 맡는다. 분할 후 지주회사는 자사주를 그대로 보유하는 동시에 이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받아 12.78%의 자회사 지분을 확보한다. 나머지 부족한 지분만 공개매수로 사들이면 된다. 지주회사 주식을 새로 발행해 자회사 지분을 가진 주주들로부터 현물출자 받는 방식이어서 자금 부담이 없다. 그러나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방법이 불가능해진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들여야한다는 의미다.
상법 개정안은 1월 임시국회 폐회를 이틀 앞둔 지난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에서 논의됐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공은 2월 임시국회로 넘어갔다. 조기대선 정국 변수를 고려하면 2월 국회는 사실상 이 법을 포함해 기업지배구조와 밀접한 법안 통과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된다. 2월국회를 넘어가면 법안논의 속도는 더뎌지고 대선 시계는 가까워진다.
지난 18일 법안심사1소위에서 나온 주요 발언은 이렇다.
“자사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법 규정이 있기 때문에 인적분할때 신주 배정을 막거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현행 상법의 일관성 측면에서 가능하다.”(박범계 법안심사1소위원장)
“(자사주에 신주배정하면) 분명히 지배력이 강화되는 것은 맞지만 부작용도 있다. 그래서 굉장히 고민이 많다.”(윤상직 새누리당 의원)
“자사주에 분할회사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이 조항 하나를 개정하면 재벌그룹들이 돈 안들이고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주주의 부당한 지배력 강화를 방지하려는 입법 취지는 타당하다. 그러나 신주발행 자체를 금지할 경우에 부작용 있기 때문에 신주배정 허용하되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법은 어떤가”(오신환 바른정당 의원)
“근본적으로 제도 취지에 가깝게 가려면 (자사주에) 신주배정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보다 근원적인 방법이다. 조금 강도를 낮추면 배정은 하되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도 있다”(강병훈 법사위 전문위원)
법안 자체의 법리적 문제를 따지는 발언은 찾기 어렵다. 법안심사1소위의 여당의원 중 1명인 김진태 의원은 이 논의가 한창 진행될 때 퇴장한 상태였다.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하는 것은 분할 전후 주주구성이 동일해야한다는 인적분할 원칙을 훼손하고 자사주에 의결권 금지하는 상법의 기본원칙에도 어긋나는 게 대체적 해석이다. 자사주에 신주배정을 금지하면 회사 자산 증가 기회를 박탈해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논란이 지적되지만 반대로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 다른 주주의 재산권 침해를 용인하는 것이라는 점도 있다.
지난 18일 법안심사소위에서 나온 `신중론`도 법안 자체의 문제점보다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이 법을 바꿨을때의 부작용을 우려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하는 현행 인적분할 방식이 누구에게 좀 더 유리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지배주주에 더 유리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법은 논리자체보다는 파급력 때문에 논쟁이 나타나는 것이다. 적어도 10대그룹 중 삼성을 제외하고 이 법의 직접적 영향권에 놓여있는 대기업은 없다.
물론 논란이 부담스러운 삼성전자가 이 법 통과 전에 인적분할을 단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국회의 판단은 남아있다. 2월 임시국회에서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는 이 법안과 관련 소규모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 법안심사1소위와 전체회의는 각각 재적의원의 과반(각 5명, 9명)으로 법안을 의결해 다음 단계로 넘길 수 있고 야당이 과반을 넘어선다. 그러나 관례상 표결에 부친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