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부동산공화국]③도시..신기루, 잔치는 끝났다

by박철응 기자
2010.08.06 09:31:58

용산 판교 인천 등 줄줄이 위기
도시계획 틀 다시 짜야할 판

[이데일리 박철응 기자] 굴렁쇠는 멈추면 쓰러진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부동산 불패 신화가 `일단 멈춤`하면서 한국 사회도 흔들리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거래가 중단되면서 부동산시장은 공황 상태다. 빚을 내 `막차`를 탄 가계는 불어나는 손실에 휘청거리고, 건설업체들은 쌓여가는 미분양과 입주 거부에 몸살을 앓는다. 매머드급 도시계획들은 좌초 위기를 맞았고 정부는 대책 마련에 갈팡질팡하고 있다. 흔들리는 부동산공화국의 실태를 각 부문별로 진단해 본다. [편집자]
 
1931년 미국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381m)→대공황
1970년대 중반 뉴욕 세계무역센터(417m)→오일쇼크로 인한 스테그플레이션
1997년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타워(451.9m)→아시아 경제위기
 
이른바 `마천루의 저주`를 뒷받침하는 사례들이다. 1999년 도이체방크의 분석가 앤드루 로런스가 내놓은 이 가설은 초고층 빌딩이 경제위기를 예고하는 신호 역할을 해 왔다는 게 골자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초고층 빌딩은 경기가 좋고 돈이 많이 풀리는 시기에 계획되지만, 막상 완공 시점에는 경기가 정점을 지나 불황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부동산시장만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이 가설이 현실화하고 있다. 다르다면 착공도 하기 전에 위기가 닥쳤다는 점이다.
 




그동안 도시계획 차원의 초고층 매머드급 프로젝트들은 부동산 경기가 계속 유지될 것이란 막연한 전제 위에서 추진돼 왔다. 송영길 인천시장이 당선자 시절 안상수 전 시장을 만나 부채 급증 이유를 묻자, 안 전 시장의 답은 "부동산 경기가 계속 좋을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국내에서 계획됐던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은 무려 12개에 달한다. 야심찬 도시계획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이었다. 세계적으로 100층 이상 빌딩이 6개라는 점을 감안할 때, 만약 계획대로 다 지어진다면 한국은 그야말로 초고층의 메카가 되고 도시의 지도도 달라진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성이 불투명해지면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일부 사업은 이미 좌초 위기에 놓였다.

 
총 사업비가 31조원에 이르는 단군 이래 최대 도심개발 사업,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대표적이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려 했으나 건설투자자들이 지급보증을 거부하면서 땅값을 내지 못하고 있다.
 
재무적투자자들이 건설사 지급보증 규모를 2조원에서 9500억원으로 줄이고 출자지분별로 3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하는 중재안을 내놓았으나, 성사될 지는 미지수다. 건설투자자 중 지분이 가장 많은 삼성물산은 여전히 지급보증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용산 사업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업성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라며 "수익이 발생한다고 확신이 있다면 출자사들이 지급보증을 못 설 이유는 없겠지만 지금은 사업 리스크를 짊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때 수도권 최대 알짜상권으로 꼽혔던 판교 알파돔시티 개발도 중단 위기다.
 
사업권자인 알파돔시티PFV는 이미 지난해 7월부터 중도금 납부를 연체하고 있는데, 다음달 말까지도 중도금을 내지 못하면 토지매매 계약이 취소된다. 이 역시 출자사들의 지급보증을 통해 금융권에서 자금을 끌어와야 하는데, 나서는 건설사들이 없다.
 
인천시가 옛 인천대 부지 88만㎡를 개발하려던 도화구역 도시개발사업도 SK건설 컨소시엄이 PF 자금조달에 실패하면서 계약이 해지된 바 있다. 최근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성남 구시가지 재개발 사업을 중단한다고 밝혀 진통을 겪고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경우 지난해 6월 기공식을 가진 151층 규모 인천타워를 비롯해 각종 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하다. 
  
이처럼 수도권 곳곳에서 주요 개발 사업들이 휘청거리며 파열음을 내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빚어진 개발사업의 차질은 다시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잔뜩 부풀었던 기대가 불안으로 바뀌면서 실제로 용산과 판교 일대의 아파트값은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도시계획의 틀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경우 서울시가 추진하는 한강르네상스의 핵심적인 프로젝트인데 만약 좌초될 경우 도시계획을 새로 짜야할 판이다. 소모되는 비용과 혼란은 막대할 수밖에 없다. 
 
또 판교 같은 신도시 입주자들은 당초 예정됐던 기반 시설의 부족으로 불편을 겪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초고층 위주의 이같은 도시계획은 애초부터 불안을 안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은 건축비가 많이 들고 임차인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큰 메리트가 없다.
 
서울에서 한 초고층 빌딩 시공을 맡고 있는 건설사 관계자는 "사실 돈이 남기 때문에 하는 건 아니다"면서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을 건설했다는 실적과 상징성 때문에 뛰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우후죽순으로 추진된 메가 프로젝트들이 전반적으로 조정될 것"이라며 "그동안 부동산 실패를 경험해 보지 않아서 경제적, 경관적 검토 없이 과도하게 추진됐는데, 개발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자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프랑스 파리가 초고층이 있어서 세계적인 도시가 된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