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걱정마… 정보·인맥 내가 책임질게"
by조선일보 기자
2009.04.22 10:16:00
남편 경쟁력 챙기는 ''신(新)내조''
''수퍼우먼 콤플렉스'' 지적도
| ▲ “당신이 있어 든든해”. 내조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내조의 여왕’/MBC 제공 |
|
[조선일보 제공] 전직 기업 사장실 비서였던 주부 정해연(가명·36)씨는 지난해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수입 자동차회사 영업사원인 남편을 위해서다.
"남편이 시험 공부할 시간이 없어 제가 땄어요. 차 한대라도 더 팔려면 고객에게 전문가로 인식돼야잖아요. 자동차에 관한 세부 지식, 최신 정보, 시장 현황을 그때그때 업데이트해 남편에게 제공해줍니다."
'내조'(內助)가 진화하고 있다. '바깥일' 하는 남편이 '집안일' 신경 쓰지 않게 살림과 양육을 완벽히 한다는 의미의 고전적인 내조를 넘어서는 또 다른 내조의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남편의 승진과 성공을 위해 온몸을 던지는 드라마 '내조의 여왕'처럼은 아니어도 남편의 '스펙'을 높이기 위해 발벗고 나선 아내들이 많다는 얘기다.
'내조의 여왕' 작가 박지은씨는 "공군 장교와 결혼한 후배가 상관 부인들 모시는 모습을 보고 드라마를 쓰게 됐다"면서도 "군대뿐 아니라 내 주변만 봐도 그냥 살림만 하는 주부는 없고 어떤 식으로든 남편의 스펙을 높이기 위해 한두 가지씩은 노력하더라"고 말했다.
'외조'(外助)도 마찬가지. 맞벌이가 전체 부부의 절반을 넘어선 데다 불황까지 겹쳐 남성들의 외조도 적극 변모하고 있다. 최윤식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연구원은 "요즘 남성들은 불황기에 맞벌이 아내가 회사에서 잘릴까 두려워한다"면서 "아내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정보를 모으고 상담을 해주는가 하면 부부 동반 모임에도 적극 참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선일보가 30·40대 부부 20쌍(맞벌이 10쌍+홑벌이 10쌍)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내조와 외조의 조건'을 물었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우선 맞벌이 부부는 남편 아내 공히 내·외조의 첫째 조건으로 '서로의 일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뒷바라지'를 꼽았다.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맞벌이 아내들은 ▲남편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정보 공유 및 조언 ▲남편 일에 대한 전폭적 지지와 신뢰 ▲남편의 패션과 외모 가꾸기에 신경 써주기 ▲조직생활에 대한 고민 상담 등을 꼽았다. '아침밥 등 건강 챙겨 주기' '시댁과 원만하게 지내기' 등은 그 다음 순위.
맞벌이 남편들의 아내 뒷바라지는 더욱 구체적이다. ▲아내의 일과 포부를 존중하기 ▲업무와 관련된 아내의 고민을 듣고 조언하기 ▲아내가 집안 대소사에 신경 쓰지 않고 일하게 도와주기 ▲부모님께 아내의 일을 적극 지지하는 태도 보이기 ▲아내가 야근할 땐 일찍 귀가해 아이들 돌보기 등등. 그 다음이 '가사 분담' '처가 식구들 잘 챙기기'였다.
대신 홑벌이 남편이 생각하는 외조는 여전히 고전적이었다. 1순위가 '돈 잘 벌어다 주기'. 다음이 '가족과 함께 주말여행 자주 하기', '가사·육아 돕기' 순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내가 생각하는 내조의 내용이 맞벌이 아내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1순위가 '남편 일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뒷바라지'. 구체적으로는 ▲공적·사적인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힘닿는 대로 돕기 ▲야근과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므로 귀가시간 다그치지 않기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받아주고 위로하기 ▲남편 업무에 관한 정보 수집과 신문 경제면 스크랩하기 등이다. 그 다음 순위가 '아침밥 등 건강 챙겨주기' '올바른 자녀양육'.
본지가 취업 포털 스카우트(www.scout.co.kr)에 의뢰, 기혼 남녀 직장인 345명(남성 217명, 여성 12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결과도 재미있다.
'남편(또는 아내)의 사회적 성공을 돕기 위해 배우자가 정치적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44.6%의 응답자가 '매우 필요하다', 30.4%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답해 남녀 공히 사회적 역량이 추가된 내조와 외조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변화순 선임연구위원은 "부부전략, 가족전략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어려운 현실이 부부 사이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게 했다"면서도 "여성 입장에서는 아이도 좋은 대학 보내야 하고, 남편의 백그라운드를 위해 사회적 역할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수퍼우먼 콤플렉스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