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이슈) UAL, 미국판 "대마불사"

by김홍기 기자
2003.03.31 09:56:29

UAL, 청산 카드로 채권단 등 압박

[edaily 김홍기기자] 이라크 전쟁과 고유가, 달러화 약세 등의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의 항공업계가 만성적인 골칫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위기를 기회로 이용, 노조와의 단체협약에서 보다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미국 경제계는 현재 파산보호(Chapter 11) 절차에 들어가 있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지주회사 UAL)의 경영진과 노조와의 협상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협상이 어떻게 결말나느냐에 따라서 기업 경영 악화를 노조와의 협상에 이용할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업계에서는 UAL의 협상 결과가 다른 업체의 협상에 하나의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과도한 연금 펀드(pension fund)로 경영상 압박을 받고 있는 자동차 업체에도 협상 결과가 향후 협상에서 주요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인 UAL은 현재 노조를 상대로 대규모 임금삭감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하고 있는 중이다. 임금 삭감 규모는 대략 30%선이 될 것으로 알려졌는데, 상황이 안좋아질 경우, 추가로 임금이 깎이는 것도 받아들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의 회사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회사의 주장에 합리적인 면이 꽤 있기에 그렇다. UAL이 노조를 상대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회사의 경영사정이 극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항공업체와 마찬가지로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UAL 경영진은 “만약에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구계획을 달성할 수가 없게 돼 결국은 법원 결정에 따라서 회사가 청산절차를 밟을 수 밖에 없으며, 그렇게 되면 당신들은 직장도 잃을 뿐 아니라 회사로 부터 부여받았던 모든 혜택도 사라지게 된다”며 노조를 ‘협박’하고 있는 중이다. 함께 공멸하는 길을 택하기 보다는 회사의 방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다. 경영진이 파산보호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는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일단 미국에서는 조종사를 중심으로 한 노조가 지금까지 너무 많은 혜택을 누려왔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작년 통계를 보면 유나이티드의 조종사들은 평균 20만6000달러의 연봉을 받으면서 한 달에 9일 밖에 일을 하지 않은 것으로 돼 있다. 능력있는 사람이 많이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 조차도 납득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그리고 항공사 직원들의 병가나 근무일정 조정이 다른 산업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손쉬웠던 것도 사실. 노조의 입김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항공사 노조는 광범위한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가 회사로부터 이처럼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은 회사의 실질적 대주주가 종업원이기 때문이다. 유나이티드의 경우, 종업원들의 지분이 1994년 이래로 55% 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나이티드는 실질적으로 종업원들이 주주이자 직원인 회사가 됐다.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명제는 종업원=주주가치 극대화로 바뀌었다. 그러나 종업원을 뺀 여타 주주는 가치 배분에서 제외됐고, 주주와 이해가 상충할 수 밖에 없는 채권단의 이해를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채권단의 이해를 별로 고려하지 않았던 UAL은 현재 ‘청산 가능성’이라는 카드를 항공기 리스를 제공했던 금융기관에도 사용하고 있다. 이자나 리스료를 깎아주지 않으면 회사가 청산절차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 UAL과 채권단은 지난 주부터 협상에 들어갔는데 UAL이 요구하는 삭감 규모는 연간 5억달러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이 항공기를 담보로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울며겨자 먹기로 따라갈 확률이 높은 이유는 현재 전 세계 항공업계 사정이 극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애리조나 사막의 격납고에 2000대에 이르는 항공기가 있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이런 와중에 담보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섰다가는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만 한다. 청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회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동의할 것이라는 견해가 높은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청산을 무기화하고 있는 UAL의 경영진에 대해 여론은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파산을 협상의 지렛대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이 그것이다. 대마불사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 UBS워버그의 애널리스트인 샘 버트릭은 “유나이티드의 파산 가능성이 너무 과장돼 있다”고 지적한다. 경영진이 일부러 청산 가능성이 높다고 흘리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실항공사의 존재 때문에 건강한 항공사까지 피해를 입고 있다. 경쟁업체들은 청산에 들어가지 않은 부실한 항공업체들이 항공료 덤핑에 나서기 때문에 가뜩이나 나쁜 항공업계 전체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항공업계의 경우, 특성상 가변비용(variable cost)이 고정비용(fixed cost)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청 적기 때문에 정상요금 1000달러 짜리를 100달러에도 팔 수가 있는데, 바로 이러한 출혈 경쟁을 부실 항공사가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UAL의 경영진 입장에서는 청산 카드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법원이 요구하는 현금흐름을 맞출 수가 없고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UAL을 제외한, 아직 파산보호를 신청하지 않은 항공업체도 이를 협박카드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를 향해서는 ‘만약에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파산보호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채권단에는 “리스료나 이자를 깎아주는 것이 유리한 지 아니면 파산보호에 들어가서 채권 행사가 상당기간 묶이는 것이 나은 지 선택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또 미국 의회를 상대로는 새로운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협박하고 있는 중이다. 사족 :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의 지주회사인 UAL의 시가총액은 지난 주말 현재 5620만달러에 불과하다. US에어웨이는 440만 달러면 주식 전체를 살 수가 있다. 대형항공사중 10억달러가 넘는 것은 델타에어라인이 유일하다. 반면에 저가항공사로 유명한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은 시가총액이 111억달러다. 소형 저가항공사인 제트블루도 18억달러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