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연호 기자
2016.01.03 12:01:00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글로벌 인수·합병(M&A)시장에서 왕성한 식욕을 뽐내온 차이나머니가 한국시장 공략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 2014년을 분기점으로 중국자본은 특정한 업종과 영역만 고집하지 않는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국경간 거래를 뜻하는 ‘크로스보더(Cross-border) 딜’를 뛰어 넘어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의 M&A, 즉 ‘보더리스(borderless) 딜’(국경없는 거래)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최근 들어 게임, 정보통신(IT), 반도체, 영화·엔터테인먼트, 화장품·쇼핑, 육아용품까지 중국 `왕서방`의 먹성은 놀라울 정도다. 이렇다보니 국내 주식시장은 그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차이나 디스카운트`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가 됐고 그 자리를 `차이나 프리미엄`이 대체했다.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중국 기업들이 코스닥 상장사 위주의 국내 쉘컴퍼니(shell company·기존 회사 외형은 그대로 둔 채 기업 성격을 완전히 탈바꿈시킨 업체)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주주가 바뀔 때 공개 매수를 강제하지 않는 등 유연한 한국 자본시장과 외환 규제로 인해 국내 유망 쉘컴퍼니들은 중국의 좋은 투자처가 되고 있는 것.
중국 게임사인 룽투게임즈가 지난해 4월 국내 온라인 교육업체인 아이넷스쿨(현 룽투코리아(060240))을 인수한데 이어 중국 모바일게임 개발회사인 로코조이가 5월 코스닥 무선통신업체 이너스텍(현 로코조이(109960)인터내셔널)을 인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중국 기업이 그들 제품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테스트베드 플랫폼으로서 국내 쉘컴퍼니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투자에 따른 자본이득을 노릴 수 있다는 점도 메리트로 꼽히고 있다.
인구소득 측면에서 소비의 주축이 되는 중산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하나의 변수가 되고 있다. 늘어나는 중산층은 가격보다는 제품의 질이나 안전을 중요시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재의 경우 품질 개선과 소비자의 인식 변화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적절치 않은 만큼 질 좋고 깨끗한 이미지의 한국 소비재 브랜드를 직접 사들이는데 주력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 온라인쇼핑몰업체인 주메이와 홍콩 유통업체 뉴월드그룹은 국내 화장품업체 잇츠스킨(226320)에, 중국 의류기업 썬마는 온라인쇼핑 전문업체 아이에스이커머스(069920)에 각각 투자했다.
중국정부의 정책 변화도 M&A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일PwC 회계법인 중국팀에서 중국 인수·합병(M&A)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중국인 양판씨는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 아래에서 중국 기업들은 해외 투자에 있어 큰 동기부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대일로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일대)와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일로)를 뜻하는 21세기 신(新)실크로드 프로젝트다.
양판씨는 이어 “지난해 중국 몇몇 기업들에서 신물질, 신기술 관련한 한국 기업들에 투자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았는데 이는 중국의 제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2011~2015년)에서 신에너지, 신물질 산업들이 장려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 영화산업촉진법(초안)’을 발표하는 등 중앙정부 차원에서 영화산업을 적극 키우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중국 박스오피스는 오는 2017년 11조원 규모로 세계 1위인 미국 박스오피스를 제치고 새롭게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맞춰 중국의 막대한 자본이 한류 열풍을 타고 국내 영화·엔터테인먼트 회사들에 대한 투자 행렬에 가담하고 있다.
유명 포털사이트 소후닷컴 운영사인 소후닷컴은 자회사인 폭스비디오를 통해 지난 2014년 8월 배우 배용준씨가 대표로 있는 연예기획사 키이스트(054780)에 150억원을 투자하며 배씨에 이어 단숨에 이 회사 2대 주주(6.23%·2015년 9월 30일 기준)가 됐다.
중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그룹인 화책미디어는 국내 영화배급사인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160550))에 투자했고 중국 미디어 그룹인 DMG는 TV방송용 드라마를 주로 제작하는 콘텐츠 전문 업체인 초록뱀(047820)미디어를 품었다. 완다그룹과 레전드홀딩스그룹은 시각특수효과(VFX) 전문업체 덱스터(206560)에, 쑤닝유니버설은 ‘뽀로로’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오콘과 3D 애니메이션 콘텐츠 제작업체 레드로버(060300)에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했다.
`1가구 1자녀` 정책 폐기, 자동차 블랙박스 의무장착 추세 확산에 따른 유아관련 업종 및 블랙박스 업체 등도 중국의 투자 수혜를 입고 있다. 브랜드 ‘블루독’ 등을 보유한 유아복업체 서양네트웍스가 홍콩 리앤펑에 팔렸고 국내 최대 육아용품업체 아가방컴퍼니(013990)는 중국 랑즈그룹에 팔렸다. ‘또봇’으로 이름난 완구 제조업체 영실업은 홍콩계 사모펀드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PAG)에 매각됐고 블랙박스 전문업체 미동전자통신(161570)도 중국계 신세기그룹 산하 펀드에 팔렸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헬스&바이오, 반도체, O2O(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한 형태의 서비스), 통신 등 분야로도 중국발 M&A 트렌드가 옮겨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 O2O 커머스 플랫폼업체 얍(YAP)이 홍콩 뉴월드그룹으로부터 220억원 투자를 유치하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중국 O2O시장의 급속한 확대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