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통계 개편했더니..`체감 괴리 더 커졌다`

by최정희 기자
2014.05.18 12:00:00

R&D 착시효과..가계 살림살이와 상관없이 GDP증가
GDP 통계지표 숫자 그대로 해석하기 어려워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한국은행이 올해초 개편한 국내총생산(GDP) 지표가 체감경기를 오히려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선 GDP증가율을 토대로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기준인 2008 SNA(국제기준)가 연구개발(R&D) 비용을 투자로 계상함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가계살림과는 무관하게 움직일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구미가 속해 있는 대경권(대구경북권)은 삼성전자(005930), LG디스플레이(034220) 등 국내 굴지 기업들이 집중돼 있다. 한은의 지역경제보고서(일명 골든북)에 따르면 이 지역의 경기회복세가 3분기 연속 주춤하다. 여타 지역들이 완만한 경기회복세를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왜 그럴까. 구미엔 삼성전자 휴대폰 공장과 LG디스플레이가 있지만, 삼성전자 휴대폰 생산은 대부분 인건비가 저렴한 베트남, 중국 등에서 이뤄진다. 구미에선 핵심기술 개발이 중심이다. LG디스플레이 또한 TV수요가 둔화되면서 생산이 부진하다. 국내 굴지 기업들이 있어도 고용창출이나 경기 활성화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반면 통계개편으로 이 지역 GDP증가율은 오히려 더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R&D지출 등이 투자에 반영되면서 GDP규모가 커지고, 경제성장률도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통계 개편으로 2001~2012년 평균 경제성장률이 0.3%포인트 증가한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예컨대 삼성전자 구미 공장의 R&D지출이 늘어나면 GDP규모가 증가하고, 경제성장률도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다만 삼성전자의 휴대폰 수출이 늘어난다고 해도 해외생산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구미 공장 가동률은 거의 변화가 없다. 삼성전자 수출 증가가 국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줄었단 얘기다. 그런데도 R&D지출로 인해 GDP증가율이 커지면서 마치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새 통계로 작성된 1분기 GDP 숫자도 의아함을 자아낸다. 부문별로 보면 나아진 게 없는데 총량은 개선됐기 때문이다. 1분기 GDP는 전기대비 0.9% 증가했고, 전년동기대비 3.9% 증가해 3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 그러나 전기대비 성장률 중 내수성장기여도는 -0.2%포인트로 5분기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민간소비, 설비투자가 모두 저조했던 탓이다. 수출은 1.7% 증가했지만 미약한 회복세다. 비밀은 지식재산생산물투자, 즉 R&D투자에 있다. 전기대비 7.5%나 증가하면서 전체 성장기여도의 0.4%포인트를 차지했다.



한은도 이런 부분을 인정한다. 한은은 지난달 10일 금통위 본회의에서 “R&D지출이 투자로 계상되면서 GDP성장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으나 이 지출이 주로 기업과 관련된 항목이라 국민들의 체감 경기와 지표 간 괴리가 더 확대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더구나 우리나라 R&D지출액은 경기변동과 상관없이 증가한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2012년 GDP대비 R&D지출액 비율은 4.0%로 이스라엘 다음으로 세계 2위 수준이다.

GDP지표가 현실과 동떨어지다보니 이를 토대로 경기를 진단할 경우 오류가 커질 수 있단 지적도 나온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R&D가 투자로 잡히면서 가계 소비활동이 줄었는데도 경기가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GDP지표를 보고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가계소득이 증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봐야 하는데 평균(GDP)을 갖고 얘기하는 것은 아래쪽 집단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금통위원도 “독일은 2002년, 2006년 국민계정을 개편한 이후 명목 GDP 증가, 기업 및 재산소득 변동성 감소 등의 특징이 나타나 국민계정이 경기변동 분석을 위한 자료로서 위상이 약화됐다”며 후속조치를 당부했다.

다만 통계 개편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단 분석도 있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통계 개편으로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0.2%포인트 오른 것에 불과해 기본적인 뷰가 바뀐 것이 아니다”며 “전에 보던 것과 숫자와 움직임이 다르니 (새 통계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3일(현지시각)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제기준에 맞춰 편제한 것인데 숫자놀음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것을 다 감안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거시지표와 체감경기가 다르지만, 금리는 일단 거시지표를 놓고 봐야 한다”며 “거시지표상으론 완만한 회복세”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