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냅타임] "그 ‘충’ 소리 이제 그만"

by강의령 기자
2018.08.14 08:00:52



맘충부터 급식충, 한남충, 틀딱충까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기사 댓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다. ‘충’은 벌레를 의미하는 말로 명사에 붙여 특정 대상과 집단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신조어다.

맘충은 본인의 아이만 챙기며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몰지각한 엄마를, 급식충은 학교를 다니면서 급식을 먹는 학생을, 틀딱충은 꼰대 마인드를 가진 노인을, 한남충은 남성우월주의사상을 가진 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표현이다. 이제 ‘충’이라는 표현 없이는 특정 집단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충’은 온라인 상에서 암암리에 사용해오던 비하 표현이지만 지난 2011년 ‘일베충’이라는 표현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널리 퍼졌다. 일베충은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의 사용자들을 비하하는 말이다.

해당 사이트는 여성 혐오, 특정 지역 및 정치 성향 혐오, 외국인 혐오 등을 일삼으며 비난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이 사이트 사용자들은 일베충이라는 표현에 모종의 자부심을 느끼며 사이트 내부에서 스스로 사용하기도 하고 이를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이후 나타난 한남충과 맘충은 이전에 사용하던 OO녀, OO남 등의 표현에서 파생돼 나온 것으로 남녀가 서로를 헐뜯고 깎아내리는 용도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표현이 단순히 남녀 간의 갈등에 국한하지 않는다. 학생과 노인을 비하하는데 사용하고 진지한 사람, 재미가 없는 사람 등을 진지충, 노잼충이라고 표현하며 조롱 거리로 만든다. 이제 일상 속 비하 표현으로 벌레로 칭하는 시대가 됐다.

OO녀, OO남 등의 표현이 사용될 때는 특정 행동을 한 개인만 비난하고 집단 전체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급식충, 틀딱충 등 학교를 다니는 학생, 노인 등 집단 전체를 묶은 표현으로 비난을 하다 보니 해당 집단에 속해있다는 이유 만으로 함께 비난을 받는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누군가가 내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려 나도 모르게 OO충으로 불릴지 모르는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는 김씨(35)는 아이들과 함께 외출할 때면 혹시나 실수해 맘충으로 불릴까 전전긍긍한다.

“항상 아이들과 함께 외출할 때면 주변에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그래도 가끔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있잖아요. 한번은 음식점에서 작은 아이를 돌보는 사이 저도 모르게 큰 아이가 음식점에서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운 적이 있었어요. 그 순간 어디서 저와 우리 아이 사진이 찍혀 온라인 커뮤니티에 음식점 맘충이라고 글이 올라올까 두려웠어요.”

뿐만 아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진지충, 설명충이라고 낙인 찍힐까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2월 1014명을 대상으로 ‘혐오표현 실태와 규제방안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혐오표현을 들은 사람은 자존심 손상으로 자살 충동, 우울증, 공황 발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에 시달린다고 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혐오표현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건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이라고 강조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혐오 표현이 극으로 치닫는 것은 그만큼 사회 내부에 갈등이 널리 퍼져있음을 의미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갈등이 극대화하다 보니 사람들이 더 이상 귀찮은 존재, 꼴 보기 싫은 모습을 관용적으로 봐주지 못하고 공격적으로 대응하게 된 것”이라며 “아무 생각 없이 혐오의 낙인을 찍는 현상이 인터넷을 통해 유행처럼 번지고 특히 어린 학생들은 유희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혐오 표현의 더 큰 문제는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데다 무분별하게 사용된다는 것이다. 특히 SNS의 접근성이 높은 10대는 이를 단순히 재미로 혹은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사용한다.

중학생 권군(14)은 “친구들이 다 사용하니 함께 사용한다"며 "욕하는 것도 아닌데 이게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 평론가는 “이런 표현이 굉장히 심한 인권침해"라며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학교에서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