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동맹’ 손잡은 韓美…59억 달러 투자 유치 성과

by이지은 기자
2023.04.30 15:00:00

반도체 공급망 협력…‘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 신설
넷플릭스 ‘4년 25억’ 투자 약속…MOU 50건 체결
“IRA·칩스법, 양국 정상 의지 확인…우리 입장 반영될 것”

[세종=이데일리 이지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5박7일간의 미국 국빈 방미 공식 일정을 마쳤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양국이 경제외교 분야에서 ‘첨단기술동맹’으로 발돋움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추경호 부총리를 비롯해 4대 그룹 총수와 6대 경제단체장 등 122명의 경제사절단이 정상 외교를 후방 지원했고, 그 결과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산업에 대한 공급망 협력 강화와 총 59억 달러(7조8000억원) 규모의 첨단 기업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9일(현지시간)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서 귀국길에 오르며 환송객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2년 만에 한국 정상으로 미국을 국빈 방문했던 윤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과 함께 30일 귀국했다. 경제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는 이번 순방의 경제외교적 의미를 첨단기술동맹으로의 확장에서 찾았다. 주요 성과로는 △반도체·배터리 비롯 첨단산업 공급망 강화 △사이버·우주·퀀텀 등 첨단과학기술 동맹 구축 △59억 달러 규모 첨단기업 투자 유치 △아태지역·외환시장 협력 및 인적교류 확대 등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번 순방에 따른 경제 분야 후속조치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내달 7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양국의 첨단기술 관련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는 데 주력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핵심기술을 위한 상호 호혜적인 공급망의 중요성을 공유했다. 한미는 이를 통해 차세대 반도체·첨단 패키징·첨단 소부장 등 3대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개발 협력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25일 워싱턴 D.C.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반도체·배터리·바이오·방산 등 양국 첨단산업 기업인 33명이 모여 첨단산업 공급망 협력 의지를 확인했다. 27일 미국영화협회(MPA) 요청으로 개최된 ‘글로벌 영상콘텐츠 리더십 포럼’에서는 K-콘텐츠의 수출·투자 확대와 양국 콘텐츠 산업 협력에 관해 논의가 이뤄졌다.

기재부는 “자유시장경제 원칙과 가치를 공유하는 양국이 첨단산업 공급망에 있어서도 공고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한 것은 이번 방미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라며 “한국과 미국은 각각 메모리반도체, 반도체 장비에 지닌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반도체 공급망의 상호보완적 역할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양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주도하는 협의체인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 신설도 대표적인 결과물로 꼽힌다. 양국은 반도체·배터리·바이오·퀀텀·인공지능(AI) 등 분야에서 핵심·신흥기술에 관해 협력을 도모할 계획이다. 사이버 안보 협력 프레임워크를 통해 사이버 위협에 공동 대응하고, 한미 우주협력 공동 성명서를 체결해 우주산업에서도 손을 잡았다.

이번 순방을 통해 유치한 투자 금액은 총 59억 달러다. 기재부에 따르면 이는 지난해 미국이 우리나라에 직접투자한 금액의 75%에 해당하는 규모다. 24일 글로벌 OTT기업인 넷플릭스는 4년간 25억 달러(약 3억3000조원)를 약속했고, 이튿날 투자신고식에서는 첨단기술 분야의 6개 기업이 19억 달러(약 2억5000조원)를 결정했다. 소재과학 기업 코닝도 15억불(약 2조원)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은 27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도 만나 한국에 대한 투자를 재차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테슬라가 기가팩토리 투자국으로 한국을 선정하면 입지, 세제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힘을 실었다. 머스크는 “한국은 기가팩토리 투자지로 여전히 최우선 후보국 중 하나”라며 한국 방문 의사를 드러내기도 했다.

양국 기업 간 공동연구, 인증·표준 등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도 총 50건 체결됐다. △산업 분야 13건 △에너지 분야 13건 △바이오 분야 23건 △콘텐츠 분야 1건 등 역대 최다 규모다. 특히 미래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소형모듈원자로(SMR) 분야에서 미국의 주요 3사와 모두 MOU를 맺었다. 기재부는 “특히 SMR 분야에서는 미국의 설계 역량과 한국의 제작·운영·관리 역량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제3국 시장 진출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인근 영빈관에서 국제 정치 및 경제분야 저명인사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존 햄리 CSIS 회장, 윌리엄 코헨 전 국방장관, 척 헤이글 전 국방장관, 로버트 졸릭 전 USTR 대표·세계은행 총재, 크리스 도드 전 연방 상원의원, 토마스 도닐런 전 국가안보보좌관,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NATO 사무차장,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 등이 참석했다. (사진=공동취재)
일각에서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칩스법) 등 우리 기업에 대한 불이익이 예상되는 부분에 대한 구체적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기재부는 “양국 정상이 우호적인 비즈니스 환경과 예측 가능성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며 “IRA·칩스법 인센티브 집행 과정에서 우리 기업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상무당국 간 별도 회담을 통해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이행 과정에서도 기업 투자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데 합의한 만큼 우리 측 의견이 반영되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미 정상은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IRA와 반도체과학법에 관한 한국 기업들의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한미 양국이 기울여 온 최근의 노력을 평가했다”며 “양 정상은 동 법이 기업활동에 있어 예측 가능성 있는 여건을 조성, 상호 호혜적인 미국 내 기업 투자를 독려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약속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에서는 미국이 예상보다 완화된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내놓았지만 최종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부 규정에 대한 추가 협의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반도체법의 재정 인센티브 세부 지원계획(NOFO)에 대한 논의도 계속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