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X파일]'변신의 귀재' 두산 "절박함이 운명 바꿨다"
by성문재 기자
2014.11.28 08:54:25
100주년 맞아 소비재 사업 재구성 결단
사업 매각으로 1조원 확보..외환위기 넘겨
ISB 분야서 잇단 M&A로 원천기술 확보
[이데일리 성문재 기자] 두산은 올해로 창립 118주년을 맞은 국내 최장수 기업이다. 두산이 이처럼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빠르고 과감한 변신에 있었다.
두산(000150)의 모태는 창업주 박승직 선생이 지난 1896년 서울 배오개 시장(종로 4가)에 차린 ‘박승직 상점’이다. 이후 1946년 박승직 상점이 두산상회(현 두산글로넷)로 바뀌면서 두산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이후 두산은 동양맥주, 두산산업, 동산토건(현 두산건설), 한양식품 등을 설립했다. 소비재, 무역, 건설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시기다.
| 1896년 8월1일 박승직상점 개점(왼쪽), 1952년 동양맥주(이후 OB맥주로 사명 변경) 설립. 두산그룹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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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산은 창업 100주년을 맞았던 1996년 소비재 위주의 사업포트폴리오를 전면 재구성한다는 결단을 내린다. 이대로는 새로운 100년을 열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당시 두산이 맞닥뜨린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사건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된데다 진로가 맥주시장에 진출하는 등 경쟁이 심화됐다. 주력회사인 OB맥주는 물론 두산 계열사들이 적자에 허덕이며 전반적인 기업 구조가 약화된 상황이었다. 많은 국내 기업들의 무리한 사업 확장에 정부는 산업간 구조조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두산은 당장 우량사업이던 한국네슬레, 한국3M, 한국코닥 지분은 물론 OB맥주 영등포 공장을 매각했다. 이듬해인 1997년에는 음료사업을, 1998년에는 주력사업인 OB맥주와 서울 을지로 본사 사옥을 처분했다.
이를 통해 두산은 1997년 당시 외환위기로 다른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1조 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하며 신성장 동력을 찾는 데 주력할 수 있었다. 재무구조와 신인도가 개선되면서 금융비용 절감 효과도 뒤따랐다.
이때 두산이 새롭게 눈을 돌린 분야가 바로 인프라 지원사업(ISB)이다. ISB 분야는 도로, 철도, 항만, 공항 등 기존의 사회 간접시설뿐만 아니라 에너지, 국방, 생산설비, 물류와 운송설비까지 망라하는 사업으로 세계 시장 규모가 연간 수천조 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라는 점에서 미래 먹거리가 분명했다.
|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왼쪽),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두산그룹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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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은 2001년 한국중공업 인수를 시작으로 2003년 고려산업개발, 2005년 대우종합기계 등을 인수하며 대표적인 중공업 그룹으로 도약했다. 두산은 단순히 주력사업 변경과 덩치 확장에만 매달린 것이 아니라 원천기술 확보에도 공을 들였다. 담수설비(두산하이드로테크놀러지),발전소 보일러(두산밥콕),친환경 엔진(미국 CTI사), 소형 건설장비(밥캣) 등의 원천기술을 갖춘 외국 회사들을 차례로 인수했다.
두산의 변신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구조조정을 진행하던 1998년 3조3000억 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22조 원을 기록하며 15년만에 6배 이상의 성장을 일궈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100주년을 맞은 당시 또 다른 100년을 내다보면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꼈다”며 “변신에 성공한 것은 경영진의 과감한 결단은 물론이고 이를 충실히 실행에 옮긴 직원들의 실력이 함께 어우러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