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 인수 스토리)①"이 여자는 내 여자!"

by이학선 기자
2008.02.21 09:32:40

하나텔 계약부인 공시.."SKT는 알고 있었다"
'LG제안에 흔들릴라' 우려..계약사실 공시로 선수쳐

[이데일리 이학선기자] SK텔레콤(017670)이 하나로텔레콤(033630)을 품에 안게 됐다. SK텔레콤은 이번 인수작업에서 승부사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협상 상대방을 코너에 몰아넣는가 하면, 공략대상과 지점을 명확히 설정해 역량 낭비를 막았다. 한마디로 협상과 전략의 승리였다.


SK텔레콤이 하나로텔레콤 인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건 지난해 11월8일. 불과 보름 전만 해도 "하나로텔레콤에 관심없다"고 딱 잡아떼던 SK텔레콤은 이데일리를 통해 "하나로텔레콤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간 통신업계와 증권업계에 떠돌던 하나로텔레콤 인수설이 처음으로 공식확인된 순간이었다.

그 후 2주간 진행된 하나로텔레콤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SK텔레콤은 12월1일 하나로텔레콤 대주주인 AIG-뉴브리지 컨소시엄과 조건부 지분인수 계약을 맺는다. 정부 인가를 조건으로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의 보유지분 38.89%를 사겠다는 것으로 인수대금은 1조877억원에 달한다.

이 딜을 성사시키기 위해 SK텔레콤이 가장 먼저 내세운 무기는 '시간'이었다.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은 외국계 펀드자본이다. 당연히 펀드 만기가 있다. SK텔레콤은 협상에 나서기 전 AIG-뉴브리지 컨소시엄 펀드만기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파악,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 했다. 하지만 이 카드는 큰 힘이 되지 못했다. 당시 협상에 임했던 SK텔레콤 고위관계자는 "막상 협상장에 가니 전화 한통에 펀드만기가 연장되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조건부 인수계약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2주간 진행된 실사결과 '딜 브레이크' 요인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하나로텔레콤 가입자수가 허수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우리가 예상한 범위 안에 있었다"고 말했다.



무난하게 계약을 맺을 것으로 예상되던 상황에 변수가 생긴 것은 12월초. 정확하게는 SK텔레콤이 '타법인 주식 및 출자증권 취득결정'을 공시한 12월3일이다. 양측은 도박에 가까운 승부수를 던진다.

SK텔레콤이 하나로텔레콤 인수결정을 공시한 것은 3일 오전 7시경이다. 뒤따라 공시할 것으로 예상되던 하나로텔레콤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의외였다. 인수합병건의 경우 계약 상대방과 같은 시간에 공시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11시간이 지난 오후 6시경 설마했던 일이 현실화됐다. 하나로텔레콤은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고 공시했다. 한쪽은 계약이 체결됐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한 것이다. 당시 SK텔레콤은 "계약서까지 있는데, 하나로텔레콤이 왜 이런 공시를 했는지 모르겠다"며 책임을 하나로텔레콤에 돌렸다. 대다수 언론도 하나로텔레콤에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기업 인수합병 계약은 전셋집 계약처럼 단순하지 않다. 한 건의 계약에 여러 조건이 붙다보니 사안에 따라 해석상 차이가 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SK텔레콤이 하나로텔레콤이 부인할 가능성을 몰랐느냐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SK텔레콤은 알고 있었다. 계약체결 사실을 공시하기 하루 전(2일) 하나로텔레콤 대주주로부터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오전 일방적으로 '계약체결' 사실을 공시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우리가) 공시하기 하루 전 그쪽이 (계약체결을) 부인하겠다고 해서 우리는 '마이웨이'하겠다고 선언했다"며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상대방은 인정도 않는데 SK텔레콤이 계약체결을 기정사실로 한 것은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의 '변심(?)'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당시 LG는 SK텔레콤이 제시한 인수가격보다 5000억원 이상 높은 가격을 써내며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이 보도 역시 이데일리를 통해 나왔다.

이 때 SK텔레콤이 사용한 전략이 '이 여자는 내 여자'라는 식의 '커밍아웃'이다. 상대방이 좋든 싫든 '우리는 연인사이'라고 선언해버리면, 공식화된 관계를 깨는 쪽에 더 많은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SK텔레콤은 이를 노렸고 또 성공했다.

당시 SK텔레콤이 압박용 카드로 사용한 것은 또 있었다. 바로 '돈(위약금)'과 '시간(소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