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언어·문화를 넘어선 공감…'어쩌면 해피엔딩'의 저력

by이윤정 기자
2025.12.01 05:30:00

韓 창작뮤지컬 최초 토니상 6관왕
'이데일리 문화대상' 대상 수상 이력
"문화 초월한 보편적 메시지 공감얻어"
내년 1월 2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안녕하세요, 531호인데요. 혹시 충전기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2060년 서울의 한 아파트. 충전기가 고장나서 난처해진 헬퍼봇(인간 보조 로봇) 클레어가 올리버 집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휴대폰도 노트북도 아닌, 바로 그녀를 다시 움직이게 할 충전기였다. 충전기 연결 후 배터리가 서서히 차오르자 마음이 놓인 클레어는 그제야 올리버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넨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10주년 기념 공연이 내년 1월 2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관객을 만난다(사진=NHN링크).
한국 창작뮤지컬 사상 최초로 토니상 6관왕을 차지한 ‘어쩌면 해피엔딩’이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돌아왔다. 내년 1월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진행하는 이번 공연은 3차 티켓 오픈까지 77회차가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토니상 수상에 앞서 국내에서도 2021년 ‘제8회 이데일리 문화대상’에서 뮤지컬부문 최우수상과 대상을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공연이다. 한경숙 프로듀서는 “사랑은 인간이 가진 가장 보편적이고도 중요한 가치”라며 “두 로봇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관계와 감정의 힘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10주년 공연에서는 초연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따뜻한 정서는 그대로 유지하되, 두 로봇의 감정선과 관계가 변화하는 순간들에 더욱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작곡가 윌 애런슨과 극본·가사를 맡은 박천휴, 이른바 ‘윌휴 콤비’의 대표작으로 두터운 팬층을 가진 창작뮤지컬이다. 5시즌 동안 평균 관객 평점 9.8점, 유료 객석 점유율 90% 이상을 기록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피아노·바이올린·비올라·첼로·드럼으로 구성된 6인조 라이브 챔버 오케스트라의 어쿠스틱 사운드가 작품의 감성을 한층 끌어올린다.

초연보다 무대는 커졌지만,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은 그대로다. 올리버는 아끼던 LP판을 꺼내 음악을 듣고, 작은 화분 하나에도 정성을 쏟는다. 옛 주인 제임스를 다시 만날 날을 꿈꾸며 빈 병을 모으고, 종이컵 전화기로 클레어와 이야기를 나누며 서서히 서로를 알아간다. 손지은 연출은 “로봇이 사랑을 깨닫는 장면에서 조명의 변화를 활용해 감정이 깊어지는 순간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자 했다”면서 “미래라는 설정 속에서도 관객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LP플레이어 등 현대적 소품을 함께 배치해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사진=NHN링크).
특히 두 사람이 제주도 여행에서 ‘반딧불이’를 마주하는 장면은 사랑이 깊어지는 순간을 보여주는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초록빛 반딧불이가 두 인물을 중심으로 사방에 흩어지며, 별빛이 흩내리는 것처럼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고동욱 영상 디자이너는 “클레어가 옛 주인을 떠올리는 순간부터 마지막에 기억을 지우는 장면까지 ‘기억’이라는 소재를 반딧불이와 연결해 보고 싶었다”며 “입체적 이미지를 수많은 점으로 표현하는 ‘포인트 클라우드’ 기법을 활용해 로봇들의 기억이 반딧불이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것처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 작품은 화려한 홍보 없이 오롯이 입소문만으로 성장해왔다. 관객들의 꾸준한 지지를 바탕으로 10년이라는 시간을 단단하게 이어왔다. 한 프로듀서는 “작품을 본 관객들이 ‘누군가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라고 느꼈기에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며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지금의 10주년을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로봇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지만, 사랑과 기억, 이별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라며 “세대, 언어, 문화를 넘어선 보편적 메시지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고 부연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사진=NHN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