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사태에 쏟아진 `응원·규탄 화환`…法 사각지대 `애물단지`

by정윤지 기자
2024.12.22 13:03:46

대통령실·동부구치소 등 도로에 줄지어 선 화환
“치워라” vs “치우지마라” 양쪽서 민원 쏟아져
치울거나 방치할 근거 없어…관계자들 “순찰만 돌아”
전문가 “집회 문화된 만큼 관리 지침 만들어야”

[이데일리 정윤지 기자] 대통령실과 헌법재판소 등 주요 기관 곳곳에 놓인 윤석열 대통령 응원·규탄 화환이 애물단지가 됐다. 계엄과 탄핵 시국에서 의견을 담은 화환이 처리가 곤란할 정도로 많이 쌓이면서다. 길가가 화환으로 뒤덮인 주요 기관 관계자들은 이 같은 ‘화환 설치’의 법적 근거가 모호해 치우기도 방치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화환을 처리할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 윤석열 대통령을 응원하는 화환이 겹겹이 쌓인 채 놓여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지난 19일 오전 10시쯤 이데일리가 찾은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 앞에는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응원하는 화환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 구치소에는 김 전 장관이 내란 혐의로 수감돼 있다. 이날 ‘김용현 장관님 힘내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화환 배달 차량만 20분간 5대가 연달아 도착했다. 구치소 관계자는 밖으로 나와 배달 기사들에게 몇 개를 설치하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배달 기사는 “우리는 주문을 받고 배달만 하는 입장인데 구치소를 가든 헌재 앞을 가든 관계자들이 ‘왜 설치하느냐’고 따져 대응이 힘들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쯤 찾은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도 윤 대통령을 응원하는 화환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이 화환은 서울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 인근부터 6호선 녹사평역까지 1.5㎞가량 인도를 따라 설치돼 있다. 설치 공간이 부족해지자 일부 화환은 겹겹이 쌓여 사실상 벽에 기대 있었고 바닥에는 화환의 잔해가 너저분하게 깔렸다. 정부종합청사나 헌법재판소 앞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미관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화환이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대통령실 앞에서 화환과 맞은 편 사람을 요리조리 피해 걷던 직장인 김남우(29)씨는 “안 그래도 공사하는 곳이라 길이 좁은데 이 긴 길을 화환이 다 채우고 있으니 다니기 불편하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실제 화재 사고도 있었다. 지난 15일 오전 1시 33분쯤 녹사평역 인근 화환 10여 개가 불에 타거나 그을렸다. 경찰 관계자는 “방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피의자 특정은 안 됐다”며 “아직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19일 오전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응원하는 화환이 줄지어 놓인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 앞에서 배달 기사가 또다른 화환을 배달하고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환이 쌓이자 치우라는 민원과 치우지 말라는 민원도 쏟아진다. 용산구청과 송파구청에도 관련 민원이 다양한 경로로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화환을 치우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사람도 있다. 대통령실 인근에서 만난 한 경찰 관계자는 “가끔 이곳에서 화환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관리하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화환 배달 기사들도 주문자로부터 ‘제대로 설치돼 있는지 주기적으로 가서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고 전했다. 너무 많이 화환이 쌓여 화한의 내용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길거리까지 설치 장소가 늘어지기도 한다.

관계자들이 가장 골치를 앓는 대목은 이를 처리할 법적 근거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만약 이를 집회로 본다면 화환 주문자가 집회 신고를 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제 지난 8월 하이브 사옥 앞에서 열린 ‘BTS 슈가 탈퇴 요구·응원’ 화환은 집회신고 후 허가를 받고 진행됐다. 그런데 대통령실 바로 앞은 집회 허가가 안 나기도 할뿐더러 화환 주문자도 단체가 아닌 개인 여러 명이라 신고도 안 돼 있다는 게 구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화환을 치울 수도 없다. 구청 측은 화환을 주문한 사람에게 소유권이 있어 이를 치우면 점유물이탈횡령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또 화환에 의견이 담겨 옥외광고물법상 광고물에 해당한다는 해석도 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따로 법이 없이 자체적 해석한 결과 여러 법에 저촉된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부구치소 관계자도 “치울 근거가 없어 상황만 살피는 중”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인근은 관리 주체가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다. 대통령실은 군사보호시설이라 대통령실·경호처·경찰·용산구청이 이 지역을 담당하는데 화환 설치에 대한 업무 규정이나 관리 구역 규정도 없다는 것이다. 구청 관계자는 “민원은 구청에 쏟아지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우선은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순찰을 강화하는 것뿐이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혼란을 줄이기 위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 현상이 일종의 집회 문화가 된 만큼 관리 지침이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집회가 어려운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 화환을 보내는 것에 대한 법적 근거는 부족하다”며 “이럴 땐 갈등이 분출되는 만큼 모두가 합의한 법의 테두리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