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천승현 기자
2011.12.28 12:10:00
숫자로 보는 2011 핫이슈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올해 제약업계의 최대 이슈는 약가인하였다. 정부가 건강보험재정 절감을 위해 내놓은 새 약가제도는 제약사들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왔다. 강력한 리베이트 규제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사상 최대 인하율의 새 약가제도가 예고되자 매출 손실을 우려하는 제약사들의 고민은 가중되고 있다. 그럼에도 제약업계는 줄기세포치료제, 천연물신약 등 새로운 영역에서 활발한 연구개발 성과를 내놓으며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제약사들의 실적 부진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리베이트 규제에 영업활동이 위축되면서 전문의약품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상당수 제약사들의 매출이 전년대비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 한미약품의 경우 지난 3분기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16.9%나 감소하는 심각한 부진에 빠진 상태다. 엎친데덮친격으로 내년에 큰 폭의 약가인하 정책도 예고된 상태다. 제약사들이 아직까지도 내년 사업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이유다.
지난 7월 세계 최초의 줄기세포치료제가 시판허가를 받았다. 파미셀이 개발한 '하티셀그램-AMI'는 심근경색 환자의 골수를 채취한 후 중간엽줄기세포를 분리·배양한 후 환자에게 다시 투여하는 방식의 줄기세포치료제다. 우리나라가 세계 첫 줄기세포치료제를 배출했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가격도 비싸고 효능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줄기세포치료제의 가치는 여전히 논란이다.
올해는 유난히 국내제약사와 다국적제약사와의 제휴가 많았다. 동아제약, 유한양행, 동화약품, 대웅제약 등 상위제약사들을 중심으로 다국적제약사의 수입신약 뿐만 아니라 일반의약품 판매권을 가져오는 계약이 이어졌다. 실적 부진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외형을 늘리려는 제약사들의 전략이다. 하지만 신약·개량신약 등의 개발에 소홀히 하면서 수입약 의존도만 높인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올해 굵직한 천연물신약이 2개 품목 허가를 받았다. 녹십자의 골관절치료제 '신바로'와 동아제약의 소화불량치료제 '모티리톤'이 새롭게 등장한 천연물신약이다. 천연물신약은 기존에 환자들이 복용해왔던 생약이나 한방제제를 이용, 개발했기 때문에 부작용 우려가 적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또 다른 천연물신약인 동아제약의 '스티렌'은 국내사가 개발한 전문의약품중 가장 큰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해외시장에 진출한 천연물신약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보건복지부가 내년부터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의약품의 약가를 평균 14% 인하하는 새 약가제도를 시행한다. 새 약가제도의 도입으로 연간 1조7000억원의 약값이 절감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약가인하로 내년 건강보험료의 인상률은 올해 5.9%보다 훨씬 낮은 2.8%로 책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약가인하는 제약사들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왔다. 매출의 10% 이상이 날리게 된 제약사들은 생존권을 위한 투쟁을 펼치고 있다. 제약업계 종사자 1만여명이 모인 결의대회도 열렸다. 또 제약사들이 약가인하를 반대하는 소송을 준비중에 있어 내년에는 정부와 제약사들간의 대규모 법적 다툼도 불가피하다.
국산신약 15호인 보령제약의 고혈압치료제 '카나브'가 지난 3월부터 발매에 돌입했다. 처방의약품 분야에서 가장 큰 시장을 두드린다는 점에서 카나브의 성패 여부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또 최근 월 처방액 10억원을 돌파하면서 아직까지는 순조롭게 시장에 정착하고 있다. 다만 고혈압치료제 시장이 단일제보다는 여러 가지 약물을 섞어 만든 복합제가 선호되고 있다는 점이 고민거리다. 보령제약은 현재 카나브와 다른 약물을 섞은 복합제를 개발중이다.
지난 8월 신풍제약의 말라리아치료제 '피라맥스'와 JW중외제약의 발기부전치료제 '제피드'가 각각 신약으로 허가받으면서 국내제약사가 개발한 신약은 총 17개로 늘었다. 현재 국산 신약중 연 매출 100억원 이상을 기록중인 제품은 동아제약의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 1개 품목에 불과하다. 새롭게 등장한 신약이 '돈 되는 신약'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다.
의약사들에게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다 적발된 제약사들의 약가가 인하되는 첫 사례가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동아제약, 일동제약, 종근당, 한미약품 등 7개사 131개 품목의 약가를 최대 20%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2009년 '리베이트 적발 의약품 약가 최대 20% 인하제도'를 도입한 이후 첫 사례다. 하지만 제약사들이 제기한 약가인하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서울행정법원이 인용하면서 약가인하는 일단 보류됐다. "일부 거래처에서 발생한 리베이트를 근거로 약가를 일괄적으로 깎는 것은 부당하다"는 제약사의 주장과 "법적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복지부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치열한 법정 다툼을 예고하고 있다.
일반의약품의 슈퍼판매가 가시화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7월 박카스 등 48개의 일반의약품을 슈퍼에서 판매할 수 있는 의약외품을 전환했다. 또 감기약, 해열제 등의 슈퍼 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약사들의 반대에 약사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무산되는 분위기였지만 최근 약사회가 양보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국회 통과도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약사들은 여전히 슈퍼판매를 반대하고 있어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약사법 개정안이 순조롭게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제약사들의 복제약 시장 편중현상도 여전했다. 신약이나 개량신약과 같은 경쟁력을 갖춘 신제품 개발 능력이 부족해 복제약만 집중적으로 두드리는 현상이 반복되는 셈이다. 심지어 연 매출이 50억원에 불과한 시장에 75개의 복제약이 몰리는 기현상도 연출되고 있다. 한정된 시장에 수십개의 복제약 진입이 예고되면서 과열경쟁에 따른 불법 리베이트와 같은 부작용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5년전 데이터 조작 의혹을 받았던 복제약 576개 품목중 88개 품목이 시장에서 자진 철수했다. 지난 2006년 생동성 조작 파문 당시 자료가 없어 조작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576개 품목에 대한 재평가를 진행했지만 이중 88개 품목이 효능 검증을 포기하고 허가를 자진 취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 제품의 약효 검증, 데이터 조작 여부는 끝내 밝혀지지 않게 됐다. 정작 이들 복제약을 복용했던 환자들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고 있다.
적극적인 R&D 투자를 펼치는 제약사에 세금 감면 등 혜택을 제공하는 특별법인 '제약산업 육성법'이 지난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찬성 233명, 기권 3명. 이 법안에는 정부가 제약산업 육성을 위해 제약사의 신약연구개발, 연구·생산시설 개선 등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명시됐다. 제약산업을 육성하자는 최초의 법이지만 정작 제약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제약사들의 관심은 당장 수익 감소를 야기하는 약가인하에만 쏠려 있다.
국내제약사의 연 매출 1조원 시대가 또 다시 내년 이후로 미뤄지게 됐다. 부동의 업계 1위 동아제약이 매출 1조원을 두드리고 있지만 정부의 강력한 리베이트 규제로 영업활동이 위축되면서 더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최종 매출은 9000억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도 1조원을 넘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