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닮은듯 다른` 한화의 두 풍운아, 주진형과 김성근
by이명철 기자
2015.10.09 11:30:58
파격 선임부터 파격·돌출 행보, 거침없는 발언까지 닮아
조직 성과 내기에는 성공… 업계 논란 잠재울 수 있을까
|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왼쪽)과 김성근 한화이글스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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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주진형 한화투자증권(003530) 사장은 프로야구단 한화이글스의 김성근 감독과 닮은 점이 많다. 활동 분야가 전혀 다른 이들이지만 한화그룹에 속한 조직의 수장이라는 가장 큰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선임 이후 독특한 전략과 거침없는 독설, 안팎의 환호·비판까지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각자의 홈그라운드에서 ‘풍운아, 이단아’로 불렸던 이들의 종착지까지 같은 모습일까.
한화증권과 한화이글스 수장에 선정된 주 사장과 김 감독은 구원투수의 성격이 짙었다. 실적·성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그룹 고위층의 결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2013년 9월 주 사장 취임 때만 해도 한화증권은 2012~2013년 700억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였다. 금융 전략기획 전문가로 회사 재무구조 개선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취임 이후 350여명에 대한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구조조정 전문가’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프랜차이즈 구단’,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렸던 한화이글스는 최근 5년(2010~2014년) 동안 4차례나 꼴찌에 머무르며 체면을 구겼다. 이를 두고만 볼 수 없던 그룹은 올 시즌을 앞두고 ‘우승 청부사’ 김 감독을 전격 영입했다. 코칭스태프를 물갈이하고 자유계약(FA) 선수들을 영입하며 체질 바꾸기에 나섰다. 예측불허인 김 감독의 전략은 이미 야구계에서 유명하다. 한점차 리드를 지키기 위해 변칙 선수 운용을 서슴지 않는다. 홈런타자의 기습 번트나 마운드에 선 야수, 야구방망이를 든 투수를 심심찮게 본다. ‘펑고’로 대표되는 강도 높은 훈련도 전매특허다.
주 사장의 경영 방식도 화제성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사장 자리에 오르자마자 기업 분석 보고서 중 10% 이상은 투자의견 ‘매도(Sell)’로 쓰라고 지시했다. 고위험등급의 주식을 제시하는가 하면 ‘잘 아는 펀드만 판다’며 코어펀드를 도입했다. 읽기 쉬운 보고서를 쓰겠다고 회사 안에 편집국을 세워 전직 기자, 소설가를 앉혔다. 구조조정에 이어 성과·연봉체계 개편을 통한 직원 담금질도 마다하지 않았다.
발언에도 거침이 없다. ‘Mr. 쓴소리’ 주 사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통해 소통을 즐긴다. 회사 정책을 소개하는 용도로도 쓰이지만 이는 증권업계의 관행 비판으로 귀결된다. 주로 과당매매를 통한 수수료로 수익을 올리는 주식영업 행태를 지적했다. 쓴소리의 대상은 현직 장관부터 광복절 기념행사, 언론까지 다양했다. 김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구단·프런트 중심의 운영체제 등 프로야구 환경에 대해 언급하는 많았다. 지난해 프로야구에 복귀한 후에는 겨울 자율훈련과 공인구 등을 놓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행동이 소위 ‘삐딱선’을 탔을지는 몰라도 성과는 확실했다. 아깝게 가을행 티켓을 놓치긴 했지만 김 감독은 만년 꼴찌 팀을 6위까지 올려놨다. 경기마다 손에 땀을 쥐는 승부를 펼치면서 ‘마리한화(마약처럼 중독성 있는 플레이를 펼친다는 뜻)’로 불렸다. 경기장은 연일 매진됐다. 야구에서 성과가 순위라면 기업은 실적으로 말한다. 만년 적자이던 한화증권은 주 사장 체제에 흑자 기업으로 거듭났다. 회사 상반기 영업이익은 481억원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12배가 넘었다. 주식시장 회복세와 맞물려 수익성 개선과 비용절감 노력이 효과를 본 것이다.
정해진 길을 거부하고 내부를 채찍질하는 행보는 논란을 이끌었다. 한 경기, 한 경기를 마치 한국시리즈처럼 운영하던 김 감독은 투수 혹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즌 내내 발목을 잡았다. LG트윈스와 불거진 빈볼 시비는 상대팀 감독과 야구계에서 강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다른 증권사를 비판하던 주 사장은 업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여기에 성과급 폐지, 다이렉트 계좌 수수료의 실적 배제, 직무별 연봉제 도입 등에 상처 받은 직원들이 집단으로 반발하기에 이르렀다.
비판이 많은 만큼 지지자의 환호도 적지 않았다. 마리한화의 팬들은 ‘나는 행복합니다’라며 김 감독을 치켜세웠다. 페이스북 스타인 주 사장이 올리는 글에는 ‘페친’들의 ‘좋아요’ 버튼과 지지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리기 일쑤다.
화려한 등장과 돌출 행보까지 비슷했지만 최근 상황은 다소 다르다. 단 한가지 달랐던 그룹과의 관계가 이들의 말년을 다르게 했다. SK와이번스 감독 시절 구단과 불화를 빚었던 김 감독은 한화이글스 구단으로부터는 사실상 전권을 위임 받았다. 전폭 지원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 그는 더 이상 ‘윗층’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
주 사장은 달랐다. 그룹과 돈독한 삼성물산의 합병 무산 보고서를 두차례나 내더니 회장님의 아들이 지분을 가진 계열사와의 거래를 돌연 끊기도 했다. 이에 따른 압력을 시사하며 ‘내부 고발자’의 위치에 서기도 했다. 조용히 새 시즌 구상에 들어간 김 감독과는 달리 주 사장은 임기 반년을 남기고 격랑에 휩싸였다. 돌파구는 있을까. 김 감독이 논란을 딛고 끈질긴 경기로 ‘관중’을 사로잡았다면 주 사장은 그동안 주창한대로 ‘고객’의 마음을 얻으면 될 것이다. 그 시험대가 이달부터 시작한 서비스 선택제라고 그는 자평했다. 주 사장이 과연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을지 증권업계의 이목이 몰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