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음의 노래, 희망의 노래

by경향닷컴 기자
2009.05.29 12:50:00

펜데레츠키 ‘교향곡 8번’

[경향닷컴 제공] ‘(1연) 사랑하는 나무들아, 내가 말해주랴?/ 참으로 아름다운 꿈들이/ 아침에 불그스레 내 주위에서 춤출 때/ 예감에 가득차 심었던 나무들아./ (2연) 아, 너희를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이처럼 아름답게 나를 다시 사랑하고/ 순수한 나의 생동력을/ 다시 나에게 불어넣어 주는 나무들아./ (3연) 내 가슴속에 자라나오듯/ 하늘 높이 솟아올라라/ 큰 기쁨과 아픔을 내가/ 너희의 뿌리 속에 묻어 두었으니/ 사랑하는 나무들아, 내가 말해주랴?’ 괴테의 시 ‘사랑하는 나무들아, 내가 말해주랴?’의 전문(全文)이다. 김광규 한양대 독문과 명예교수의 번역이다.

▲ 크시스토프 펜데레츠키
폴란드 출신의 거장 크시스토프 펜데레츠키(76·사진)가 2년 전 작곡했던 ‘교향곡 8번’에 바로 이 시가 등장한다. 이 곡에는 괴테 외에도 아이헨도르프, 헤세, 릴케, 카를 크라우스, 브레히트 같은 시인들의 작품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모두 12개 악장으로 이뤄진 칸타타 풍의 교향곡. 펜데레츠키는 이 곡에 ‘덧없음의 노래’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러나 다만 ‘허무’로 종결되진 않는다. 그가 늘 그래왔듯, 곳곳에서 부활과 희망을 암시한다.

펜데레츠키가 바로 이 곡을 한국에서 직접 지휘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다음날인 30일, 폴란드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국 초연한다. 지난 2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지금 한국인들이 느끼는 고통을 알고 있다”면서 “특히 유가족들의 비통함이 얼마나 크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해 더이상의 코멘트를 하지 못하는 걸 양해해달라”고 했다.



1933년 폴란드의 남부 도시 뎅비카에서 태어난 펜데레츠키는, 이미 20세기 중반에 세계적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고, ‘체제에 저항’하거나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음악가로 남다른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이에 대해 “폴란드의 비극적 역사가 나를 그렇게 키웠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목격했으며, 외삼촌 한 명은 나치에, 또 한 명은 소비에트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그는 당시의 기억과 상처를 ‘아우슈비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분노의 날’(1967)이나 ‘폴란드 진혼곡’(1980) 같은 음악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젊은’ 펜데레츠키는 아방가르드였다. 의미의 전달보다는 형식 파괴와 새로운 어법을 찾는 일에 몰두한 실험주의자였다. 특히 50년대와 60년대 초반의 그는 자신의 음악 속에서 갖가지 ‘음향 도발’을 감행했다. 이를 테면 현악기를 맨손으로 문지르고 두드렸으며, 웃음과 울음, 휘파람 소리를 음악 속에 섞었다. 악기와 인간의 목소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려고 했던 것일까? 당시 그가 썼던 음악속에서는 타자기 소리, 뱃고동 소리, 플라스틱 깨지는 소리를 비롯해 끌로 유리를 긁어대는 거북한 음향까지 들려온다. 그러다가 펜데레츠키는 70년대에 접어들면서 방향을 선회했다. 이후 그가 걸어간 길은, 약간 단순화시켜 표현하자면, 독일 풍의 신낭만주의였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 듣는 그의 음악은 주로 이 계통의 작품이다.

이제 노인이 된 그에게 “젊은날의 음악은 어떤 의도를 갖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것도 하나의 저항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폴란드의 음악학자인 토마제프스키도 그런 평가를 내린 적이 있다. 그는 펜데레츠키의 아방가르드에 대해 “(유일한 정답으로 주어졌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당시의 ‘거대한 거짓말’에 대한 반발. 어린 시절의 충동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압제로부터 예술가를 해방시키려 했던 열망”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