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자취 감춘 장영실, 조선 떠나 다빈치를 만났다면?

by손의연 기자
2025.12.15 05:35:00

창작뮤지컬 신작 '한복 입은 남자' 개막
수묵화 영상·대취타 등 전통 요소 볼거리
유럽 배경 2막, 스토리 '급전개' 아쉬워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조선시대 역사 속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장영실의 최후가 ‘K뮤지컬’로 재탄생했다. 공연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의 10번째 창작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가 지난 2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의 한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원작은 이상훈 작가의 동명 소설이다. 역사에서 장영실은 노비에서 정3품(오늘날 차관보급·1급에 해당하는 직책)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지만 그의 최후는 알 수 없다. 세종이 타던 가마를 허술하게 만들어 쫓겨났다는 기록을 끝으로 역사에서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한복 입은 남자’는 이를 과감한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바로크 시대에 활동한 독일 화가 루벤스가 그린 ‘한복 입은 남자’의 인물이 ‘장영실이 아닐까’라는 기발함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장영실이 죽지 않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어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고 르네상스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흥미로운 설정까지 덧붙인다.

과감한 설정만큼 관객을 흡입하기 위해 공들인 무대가 인상적이다. 또 역사적 인물을 다룬 만큼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도 녹여 다른 뮤지컬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조선시대가 주 무대인 1막에선 웅장하면서 곡선이 돋보이는 경복궁 근정전이 등장하는가 하면, 바닥엔 조명으로 기하학적인 전통 문양을 연출했다. 반면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2막은 높은 기둥과 거대하고 인위적인 조각상을 내세워 1막과는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의 한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특히 주인공 ‘영실’이 이탈리아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넘버 ‘그리웁다’는 조명·영상·의상의 조화로 한국적 전통의 미(美)를 살린 이번 작품의 백미다. 무대에 놓인 ‘호롱불’이 작은 지붕 아래 따뜻한 빛을 뿜어내며 영실이 그리워하는 대상인 조선을 표현하고, 무대 영상은 소나무와 정자 등을 수묵화처럼 연출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음악에서도 전통적 요소의 활용이 돋보인다. 이성준 음악감독은 ‘밀양 아리랑’ 등 익숙한 민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사용했다. 세종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대취타와 태평소를 사용하면서도 오케스트라를 더해 한국적이면서도 멋스러운 음악을 완성했다. ‘그리웁다’ 외에 ‘비차’, ‘너만의 별에’ 등 주요 넘버는 웅장한 분위기로 인물들의 호소력을 극대화해 관객의 마음을 파고든다.

출연 배우들이 600년의 시공간을 오가며 1인 2역 연기를 펼친다는 점도 ‘한복 입는 남자’의 재미다. 박은태·전동석·고은성은 조선의 천재 과학자 ‘영실’과 비망록의 진실을 추적하는 학자 ‘강배’ 역을, 카이·신성록·이규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과학 발전에 힘쓴 ‘세종’과 비망록 속 진실을 추적하는 방송국 PD ‘진석’ 역을 함께 연기한다.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의 한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창작뮤지컬에서 흔치 않은 한국 전통을 무대와 음악 등으로 활용한 점에서 또 하나의 ‘대표 K뮤지컬’의 탄생을 기해볼 만하다. 다만 2막에서의 스토리의 ‘급전개’는 아쉬운 대목이다. 2막부터 유럽에 온 장영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펼쳐내는데,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를 압축하다 보니 관객 입장에선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권은아 연출은 “장영실이 다빈치를 만났다는 설정은 기발하고 참신하지만 논란의 여지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원작소설이 방대해 배우와 스탭들과도 많이 논의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공연은 내년 3월 8일까지.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의 한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