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편지-현금없는 사회올까]①사용 줄어드는데…브렉시트가 관건

by함정선 기자
2018.04.16 08:01:10

영국중앙은행(사진=이민정)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지난 2013년 영국 런던을 찾았을 때 제 손에는 지난 2006년 여행 때 쓰고 남은 20파운드짜리 지폐 여러 장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영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생각에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빅토리아 스테이션 근처에서 하는 뮤지컬 ‘위키드’를 보기 위해 티켓 판매 직원에게 20파운드(약 3만원) 지폐 두 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사용할 수 없는 지폐라고 해서 깜짝 놀랐었죠. 알고 보니 지난 2007년 3월 20파운드 신권이 발행되기 시작했고, 구권은 2010년 6월 완전히 통용이 중단된 것이었죠.

뮤지컬 극장 근처에 있던 일반은행인 HSBC에 들렀지만 더 이상 구권을 신권으로 바꿔주지 않는다며 신권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뱅크역에 있는 영국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에 가서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뮤지컬 티켓은 카드로 결제하고 뮤지컬 시작 전까지 시간이 남아 신권으로 바꾸기 위해 영란은행으로 갔습니다.

뱅크역을 빠져나오면 바로 영란은행이 보입니다. 은행 입구에 서 있는 보안직원에게 구권을 신권으로 바꾸기 위해 왔다고 하면 중앙은행 1층에 있는 신권 교환소를 안내해 줍니다. 그곳에서 간단히 구권을 신권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17년 여름 다시 영국을 갔을 때는 가지고 있던 5파운드짜리 지폐가 문제였습니다. 슈퍼에서 5파운드 지폐를 사용하려고 하니 신권이 2016년 9월부터 나왔고 구권은 2017년 5월 완전히 통화로서의 법적 지위를 상실했다고 했습니다. 또 영국중안은행으로 가서 바꿔야만 했죠.

10파운드 지폐는 신권이 작년 여름에 도입됐고 구권은 올해 3월1일 법적 지위를 상실했습니다. 다행히 이 정보는 뉴스 등을 통해 미리 알게 돼 가지고 있던 10파운드 구권은 기한 내 다 써버렸죠.

영국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5파운드, 10파운드 지폐는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머 재질로 만들어졌습니다. 20파운드 지폐는 아직 종이 지폐인데 영란은행은 폴리머로 만든 신권을 2020년 선보일 예정이고, 2015년 새 종이지폐를 선보인 50파운드는 폴리머 신권으로 만들지 여부를 고려 중인 상태고요.

폴리머 지폐는 종이 지폐처럼 휘어지고 접히기는 하는데 방수 처리가 돼 있어 물에 닿아도 젖지 않고 내구성 뛰어나고 유통기한도 기존 종이 지폐보다 훨씬 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지폐 안에 최첨단 보안 기술을 넣어 위조도 더 어렵게 했고요.

영국중앙은행이 최첨단 기술을 집약한 화폐로 만들 위해 투자를 계속하고 장기적인 발권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결국 앞으로도 쭉 실물 화폐에 대한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영국인들은 소비와 지출에 현금을 얼마나 사용할까요. 영란은행에 따르면 가장 최신 통계인 2016년 기준 소비자 거래에서 약 44%가 현금 거래로 이뤄졌습니다. 전년 50%, 10년 전 68%인 것과 비교하면 감소하는 추세죠.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자체 분석을 통해 영국인들의 현금 사용과 현금인출기 사용은 점진적으로 줄고 있으며, 올해 말에 이르면 카드가 현금을 제치고 영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불수단으로 등극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2026년이 되면 거래의 약 5분의1 가량만이 현금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고요.

10파운드 폴리머 지폐(출처=영국중앙은행)
신용카드, 체크카드 등 현금이 아닌 결제수단이 늘어나고 있고 가상화폐까지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영란은행이 실물 화폐의 발행과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언뜻 생각해서는 시대를 거스르는 행위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물론 물가안정이나 금융시스템 안정 총괄과 같은 역할도 중요하지만 결국 중앙은행의 존재 이유와 위상이 화폐 발권력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혀 이해되지 않는 행위는 아닙니다.

또한 거래하는 은행이나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카드 등 신용거래가 갑자기 안 되는 상황에 대비하거나, 아직까지 해킹, 피싱 같은 신용거래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소가 여전히 존재하면서 사람들이 현금 소지에서 안정을 찾고 있는 것도 현금 존재의 필요성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고요. 빅토리아 클리랜드 영란은행 발권국장은 “개인적으로 신용거래 등에 쓰이는 기술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적은 금액의 사용에는 현금을 주로 쓴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특히 2016년 6월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기로 결정하면서 영국 경제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실질 임금 상승 정체로 살림이 팍팍해지면서 가계 소비를 관리하기 위해 카드 사용보다 현금 사용을 늘리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은행 간 현금거래 등에 관여하는 캐시서비스UK의데이비드 페글만 정책 및 연구 책임자는 “과거 경제가 불안한 시기 사람들이 현금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목격했다”며 “앞으로 수년간 또 다시 이런 상황을 보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파운드 가치가 떨어지자 영국으로 오려는 관광객이 급증한 것도 파운드 지폐의 수요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영국에 오기 전 경비 일부를 영국에서 쓰기 쉽도록 자국 은행에서 파운드로 환전하는데 이 때문에 외국은행들의 파운드화 수요가 커졌죠.

가디언에 따르면 인구 6600만명의 영국에서 2016년 기준 약 270만명이 소비와 지출에 전적으로 현금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년보다 약간 증가한 수치죠. 또한 영국인 5명 가운데 4명은 “현금 없는 사회는 상상할 수 없다”고 여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영국에서 현금 사용은 점진적으로 줄고 있지만 현금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현재로서는 먼 미래의 일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당분간 영란은행의 더 안전하고 오래가는 지폐에 대한 투자와 새 지폐 발권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