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로 가는 터키]①`술탄의 꿈` 꾸는 에르도안
by이정훈 기자
2017.04.15 09:03:20
16일 개헌 국민투표…의회민주주의냐 제왕적 대통령제냐
NATO-IS와의 전쟁 등에 중요한 정치적 역할
非민주적 정치-과도한 이슬람化에 우려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술탄의 꿈`은 이뤄질 것인가.
이슬람교 종교적 최고 권위자인 칼리프로부터 부여받는 칭호로 세속 이슬람 국가에서 정치와 행정, 군사상 실권을 모두 장악한 지배자를 뜻하는 술탄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3·) 터키 대통령의 최종적인 꿈이다. 그 꿈이 실현될 것인가가 바로 이틀 뒤인 16일(현지시간) 치러지는 터키 국민투표에서 결정된다. 터키 국민들은 의회 민주주의를 고수하느냐 아니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새로운 체제를 받아들이느냐 하는 근대 터키공화국 수립 이후 가장 큰 정치체제 변화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사실 터키는 글로벌 정치지형에서는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나라 중 하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 가운데 단 둘 뿐인 이슬람 국가라는 상징성이 큰데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시리아, 이라크와 인접해 있어 이슬람국가(IS)와 서방 연합군간의 전쟁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럽에서의 이민 위기 문제에도 직접 관련돼 있다. 이런 점에서 터키는 민주주의가 정치적 이슬람주의와 화해하고 공존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국가로 꼽힌다. 아울러 과거 여러 세기동안 대(大)제국의 권좌를 누렸던 영화를 가진 국가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번에 국민투표에 부의된 개헌안 자체가 비(非)민주적인데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나친 이슬람화(化)를 추진하고 있다는 대목에서 발생한다. 이번 개헌안은 총리직을 폐지하는 대신 부통령직을 신설해 대통령과 부통령에게 그 권한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재 4년마다 치러지는 총선을 5년으로 고쳐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치르도록 한다. 대통령은 장관을 비롯한 공직자 임면권과 의회 해산권, 의회 동의없는 국가비상사태 선포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며 정당 참여도 가능해진다. 개헌안이 통과되면 2019년 발효되는데 만약 개헌이 성공한다면 지난 2003년부터 터키를 통치해온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론적으로 2029년까지 장기 집권이 가능하다.
이렇게 막강한 권력을 노리고 있는 에르도안은 터키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케말 파샤(케말 아타튀르크) 이후 지켜온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 전통에서 벗어나 이슬람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있다. 그는 공공장소와 대학에서 히잡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지난 2008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등 역사의 수레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군부가 지난해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 중 하나도 에르도안의 지나친 이슬람화에 대한 경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대로 에르도안은 쿠데타로 인해 피폐해진 관광산업과 둔화되고 있는 경제성장을 되돌기 위해 정치적 안정이 급선무이며 이 때문에 개헌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터키는 이같은 승자독식(winner-takes-all)과 같은 정치체제가 적합하지 않은 나라다. 세속적, 종교적, 민족주의적 시민들이 나눠져 있고 인종적으로도 터키와 쿠르드, 알레비스를 비롯해 소수 그리스와 아르메니아, 유대인들이 뒤섞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보수세력이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다른 세력을 배책하려 할 경우 안정될 수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아메트 다부토글루 전 총리 수석 보좌관으로 집권 정의개발(AP)당 핵심인사 중 한 명인 에트웬 마흐쿠프얀은 “개헌안은 에르도안 1인체제로 가겠다는 것이며 이는 중장기적으로 AK당은 물론 터키에도 큰 해가 될 것”이라며 “모두가 개헌을 막아내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에르도안은 집권 이후 지금까지 정부에 반대하는 5만여명의 시민을 체포 구금했고 10만명 이상의 공무원들이 해고됐다. 이들중 쿠데타에 가담하거나 관련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많은 서방국가들은 개헌이 성공할 경우 터키내 민주주의는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