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3위` SK 회장이 은행 대출 못받은 까닭

by김현아 기자
2012.05.30 08:48:32

2008년 5월 800억 대출 무산‥저축은행 대출 횡령으로 이어졌나 공방
서범석 증인 신뢰성 공방‥다른 사건 구속위기로 허위진술 제안?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재계 순위 3위인 SK(003600)그룹 최태원 회장이 지난 2008년 5월 본인명의로 신한은행에서 800억원의 대출을 추진했다가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검찰은 "대출신청서에 해외신규사업 추진을 위한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용도로 기재했지만 실제 용도는 달랐기 때문"이라면서 "이처럼 제1 금융권에서 대출을 못받게 되자 베넥스를 통해 저축은행에서 최 회장 소유의 SK C&C(034730)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은 뒤 이를 최재원 부회장 등이 받아가는 횡령 사건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호인측은 "대출신청서에 기재된 자금용도대로 대출금을 사용할 의무는 법적으로 없다"면서 "당시 상황은 제 1금융권에서 대출을 못받게 되는 상황이 아니었으며, 2008년 당시 수백억 대출이 최 회장 지시로 추진됐다는 서범석 증인의 증언도 신빙성이 없다"고 맞받았다. 서범석 증인은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공동대표다. 



최 회장을 '차주(借主)'로 하는 신한은행 대출건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검찰의 공소 내용 중 ▲ 당시 신한은행 등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못받게 돼 저축은행까지 가서 (개인적인 펀드 투자를 위해) 횡령까지 하게 됐는가 ▲결국 각종 횡령 사건이 자금사정이 급했던 최 회장 지시로 이뤄졌는가 등을 가리는 `정황 증거`가 될 수 있다.
 
지난 29일 열린 최 회장 회삿돈 횡령혐의 6번째 속행 공판에선 이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이 격돌했다.  
 


최 회장의 신한은행 대출 의뢰는 2008년 5월 28일 500억원, 5월 29일 300억원이 이뤄졌고, 같은해 6월 2일 150억원으로 변경신청됐다. 이중 실제 대출이 이뤄진 것은 150억원 뿐이다.
 
신한은행에서 당시 대출 업무에 관여했던 이모씨는 "SK C&C 주식을 담보로 한 500억 대출은 대출승인이 났지만 (최 회장을 차주로 대출을 의뢰했던)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갑자기 취소해 와서 결국 나만 바보 되고 한직인 로데오지점으로 밀려났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김 대표와는 사돈관계이며, 이씨 부인이 최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그는 "300억 대출은 제 아버지 등 우리 가족의 외화예금을 담보로 추진됐으며, 결국 아버지 외화예금을 담보로 한 150억 대출만 승인됐다"고 말했다.
 
이에 검찰은 당시 800억 대출이 무산된 것은 보증 선 게 많아 최 회장의 신용상태가 좋지 않았고, 특히 대출용도를 증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스프린트 지분인수 등 해외신규사업투자를 위한 전담회사(SPC) 설립 목적으로 대출받았지만, 은행측 승인조건인 주금납입증명서 및 주주명부를  제출하기 어려웠다는 것. 아울러 150억 예금 담보 대출 역시 (당초 기재됐던) SK케미칼(006120) 양도소득세 납부용이 아닌, 최 회장 형제의 선물투자에 쓰였다고 밝혔다.
 
이씨는 "150억 대출 당시 선물투자용으로 이야기했다면 대출이 어려웠을 것"이라면서도 800억 대출의 무산 경위는 "김준홍 전 베넥스 대표(구속)가 갑자기 취소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또 한가지 쟁점은 2008년 추진된 신한은행 500억 대출의뢰가 최 회장 지시로 이뤄졌는가 하는 부분이다. 이 대출은 SK C&C 주식을 담보로 추진됐으며 이씨는 "SK가 대출금으로 특수목적법인을 만든 뒤 스프린트나 정유사와 계약하고 볼륨이 커지면 SK C&C가 IPO간 뒤 합병하는 방안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대출 의뢰는 김준홍 전 베넥스 대표가 했으며, 최 회장 지시라고 들은 바 없다"고 밝혔다. 특히 이씨는 '2008년 10월 최 회장 지시로 SK C&C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추진했다'는 서범석 전 베넥스 공동대표의 증언에 대해서도 "2008년 10월은 로데오지점으로 발령받은 때여서 이 업무를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에 변호인측은 서씨가 구속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허위 증언을 제안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변호인측은 "서씨는 이씨의 검찰 조사 2차 검찰 조사 전날인 2011년 12월 15일 갑자기 찾아와 '2008년 10월 대출의뢰했다'고 상기시켰다"면서 "당시 서씨는 다른 사건으로 법정 구속 위기에 몰려 이씨에게 10억 이상의 대출을 의뢰하는 등 다급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서씨가 검찰측 핵심증인으로 나선 것은 다른 사건에 대한 개인적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