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찬 ‘여백의 미’… 그러나 아쉬운 감동
by조선일보 기자
2007.11.13 10:38:00
삼성미술관 리움 ‘한국미술_여백의 발견’ 展
한국미술사 명품 한 자리에… 수작 너무 많아 되레 숨막혀
 | ▲ 윤두서 "자화상" (18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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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제공] 이달 1일 문을 연 삼성미술관 리움의 기획전 ‘한국미술_여백의 발견’(내년 1월 27일까지·02-2014-6901)이 여러 면에서 화제다. 관람객이 하루 평균 400여명씩 들고, 미술계 사람들은 모이면 이 전시 얘기를 한다. 우선 시대별이나 작가별로 묶는 대부분의 전시와 달리, 이 전시는 가야 토기부터 오늘의 미술까지 넘나들어 입체적이고 새롭다. 또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윤두서의 ‘자화상’ 등 국보가 4점, 김홍도의 화첩 등 보물이 10점, 근현대미술로는 백남준, 박수근, 김환기, 장욱진, 이우환, 이종상, 서세옥, 이강소, 배병우, 김수자, 윤광조, 서도호 등 유명작가의 대표작이 망라된 명품전시다.
전시된 작품 61점은 시대와 장르가 뒤섞였지만, ‘비움의 미학’을 담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아무것도 없어서 멋있는 조선 백자와 선만 내려 긋는 최소한의 행위로 그림을 완성한 이우환의 ‘선에서’가 한 공간에 놓였다. 이 전시를 본 박래경 한국큐레이터협회장은 “과거에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여백의 의미를 추구해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전시를 기획한 리움의 이준 부관장은 ‘여백’이라는 큰 주제 아래에서 다시 ‘자연’ ‘자유’ ‘상상’이라는 작은 주제를 갈라 그에 맞게 작품을 걸었다.
배병우는 외롭게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 사진으로 ‘빈 부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김수자의 비디오 ‘빨래하는 여자’는 느리게 움직이는 강물을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으로 명상의 분위기를 만든다. 현실묘사보다는 뜻을 그려내는 ‘사의(寫意)’를 중시하는 점에서 우리의 고미술과 현대미술은 통한다.
 | ▲ 배병우 "소나무 시리즈"(200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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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빈 벽이 별로 없이 수작들이 꽉 들어차서, 정작 전시 공간에서 ‘여백’을 느끼기엔 어렵다는 평이다. 독립 전시기획자 김순주씨는 “구리선으로 만들어 여백의 미를 담은 정광호의 조각 ‘달항아리’ 맞은 편에 진짜 조선백자 달항아리가 놓여 있으니 숨이 막힌다. 뛰어난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다 보는 귀한 전시지만, 비움의 철학을 느끼기엔 다소 버겁다”고 했다.
국보 216호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현대 작가 황인기의 ‘방(倣)인왕제색도’가 마주 보고 걸려 있고, 그 옆으로 사진작가인 배병우의 ‘소나무 시리즈’, 권부문의 ‘낙산 시리즈’가 벽을 따라 이어진다. 모퉁이를 돌면 곧바로 장욱진과 박수근의 유화가 나란히 한 벽면에 걸려 있다. 이렇게 명품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점에 전문가들은 높은 점수를 주면서 동시에 아쉬움도 남는다고 말한다. 윤난지 이화여대 교수는 “전통과 현대를 아울러 수준 높은 작품을 소장한 리움 컬렉션의 특징을 살린 그야말로 명품전시다. 단지, 전시 공간 자체에서도 여백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이라도 시원하게 비워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