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 여럿이어도 '사용종속관계'…대법 '타다 판결' 의미는[노동TALK]
by서대웅 기자
2024.07.27 14:08:42
[이데일리 서대웅 기자] 지난 25일 대법원은 차량 호출 플랫폼 ‘타다’ 운전기사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국내에서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자로 인정한 첫 대법 판결입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전문가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첫째, 사업주(또는 사용자로 볼 수 있는 플랫폼)가 여럿이어도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가 성립된다고 본 점입니다.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26일 통화에서 “한국적 특수성을 고려하면 이번 판결의 의미는 남다르다”고 했습니다. 해외 주요국, 특히 유럽에선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단이 이미 많이 나왔지만 대부분 1개 회사가 사업 기능을 수행한 반면, 우리나라에선 대개 사용자로 볼 수 있는 당사자가 복수라는 점에서 유럽과 다르다는 설명입니다.
조금 더 풀어서 살펴볼까요.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를 둘러싼 대표적인 쟁점은 ‘노무제공자’(노동자)의 노동 혜택을 본 ‘노무이용자’(고객), 그리고 이 둘을 잇는 플랫폼 회사 가운데 사용자를 특정할 수 있느냐입니다. 현행 노동관계법은 일대일 종속관계를 전제로 하는데, 이처럼 3 당사자(노무제공자-플랫폼-노무이용자) 간에는 노동 혜택을 본 사람은 고객이고 돈도 고객이 내므로 플랫폼을 사용자로 볼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되는 겁니다.
한국적 특성이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플랫폼을 사용자라 보더라도 플랫폼이 여럿이라면 어느 플랫폼을 사용자로 볼 수 있느냐입니다. 타다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타다 운전기사가 계약을 체결한 회사는 ‘헤럴드HR’이라는 용업업체였습니다. 타다 애플리케이션(앱)을 운영한 곳은 VCNC였고요. 여기에 VCNC 모회사로 쏘카가 등장하죠. 노무제공자-플랫폼-노무이용자 관계에서 ‘플랫폼’에 해당하는 사업주가 3곳이 등장한 겁니다.
대법은원은 쏘카를 사용자로 봤습니다. 운전기사 임금과 업무 내용을 쏘카가 결정했고, 운전기사 근태관리와 제재 역시 사실상 쏘카가 지휘했다고 봤습니다.
“원고(쏘카)는 타다 서비스를 균질화하고 표준화할 필요에 따라 G(VCNC)로 하여금 운전업무의 수행절차와 방법 및 위반횟수별 제재조치에 관한 교육자료 등과 근태관리 자료를 제작하여 협력업체(헤럴드HR)에 배포하도록 하고 G는 협력업체로 하여금 교육과 제재조치 실행을 담당하게 하였다.”(판결문 일부)
둘째, 부당해고 등의 구제를 신청할 때 사용자가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더라도 구제신청을 한 것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한다고 판시한 점입니다.
이번 사건은 2019년 7월15일 쏘카가 타다 차량 대수를 조정하며 헤럴드HR이 타다 운전기사들에게 인원 감축 대상임을 통보하며 시작했습니다. 운전기사들은 그해 10월7일 인원 감축은 부당해고라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서울지노위)에 구제를 신청했는데요. 문제는 쏘카 자회사인 VCNC를 상대로 신청한 겁니다.
근로기준법 제28조 2항은 구제신청은 3개월 이내에 해야 합니다. 타다 운전기사는 3개월 이내에 신청은 했으나 쏘카가 아닌 쏘카 자회사를 대상으로 한 거죠. 운전기사는 3개월이 지난 후에야 구제 피신청인을 쏘카로 변경했습니다. 쏘카는 구제 신청이 가능한 ‘제척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현대의 고용형태가 점차 다변화됨에 따라 근로자로서는 자신의 사용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정확히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그러한 경우일수록 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크므로 노둥위원회 구제 절차를 이용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고 했습니다. 이어 “근로자 구제신청 이후 피신청인을 추가하거나 변경할 사정이 발생했는데도 제척기간이 이미 도과했다는 이유로 구제를 거부한다면 노동위원회 구제절차를 둔 취지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이번 대법 판결은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요. 한석호 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통화에서 “근로자성이 배제되는 노동자가 늘어나는 노동시장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그는 “플랫폼 생태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이는데, 플랫폼 사업이 소규모 사업으로 더 분산되는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습니다. 사용자를 특정하지 못하도록 플랫폼 내에서도 사용종속 관계를 교묘하게 잘게 쪼갤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서울지노위 사용자위원을 지낸 이준희 광운대 법학부 교수는 통화에서 “디지털 알고리즘을 통한 업무 배정과 평가를 사용자의 지시, 명령이라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향후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노동력 제공방식에 대해서도 법원이 근로자성을 인정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궁 위원은 이번 대법 판시에서 ‘균질화’와 ‘표준화’에도 주목했습니다. 비용을 아끼면서도 균질되고 표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프리랜서를 사용하는 기업들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이는 앱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대리점을 세우고 대리점은 용역업체에 업무위탁을 맡겨 영업판매원을 모집하는 형태는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죠. 그는 “플랫폼 노동은 아니지만 근로계약이 아닌 방식으로 타인의 노동력을 제공받아 자신의 사업을 운영하는 데 쓰는 형태와 방식에서도 충분히 응용 가능성이 있는 문구”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