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식로드]굼벵이는 안되고, 번데기는 되고<3>
by전재욱 기자
2020.08.01 11:00:00
코로나 19로 치솟은 소돼기 가격…인류 식량자급 고민
미래식량으로 각광받는 유충…90개 국가서 즐겨
동의보감, 굼벵이 효능 인정…슈퍼에서 팔리는 `번데기`
음식은 문화입니다. 문화는 상대적입니다. 평가 대상이 아니죠. 이런 터에 괴상한 음식(괴식·怪食)은 단어 자체로서 모순일 겁니다. 모순이 비롯한 배경을 함께 짚어보시지요. 모순에 빠지지 않도록요. <편집자주>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로 인류는 식량 자급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단백질원에만 의존해서 수급을 균등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소·돼지·닭 고깃값이 치솟은 것은 단적인 예다. 공급이 불안해지자, 수요는 떨어야 했다. 필수 영양소 단백질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은, 나아가 인류의 번영이 달린 문제였다.
이런 맥락에서 곤충은 그간 대체재로 거론돼 왔다. 기르는 게 가축보다 손이 덜 가고, 그래서 비용도 낮은 편이다. 더구나 자라는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도 않으니, 기후 걱정도 던다. 곤충의 유충(애벌레)은 성충보다 주목받는다. 영양이 집약돼 있고, 외피가 부드러워 섭취가 쉬운 측면이 있어서다. 이미 애벌레는 전 세계인이 즐기는 기호식품이다. FAO(세계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중남미·아시아 등 90여 개 국가에서 먹는 곤충과 연충의 종류는 1400여종에 이른다.
문제는 `벌레는 벌레`라는 인식이다. 사실 한국에서 곤충을 낮잡아서 부르는 `버러지`가 아주 심한 욕이라는 걸 고려하면, 과언도 아니다. 조선의 왕 정조가 아비 세도세자의 능을 뒤덮은 송충이를 삼킨 행위를, 역사는 효심으로 기록한다. 그만큼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벌레를 식용으로 쓰려면 이런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거리감을 좁히려면 `생김과 호칭`을 희석하는 것도 방법이다. 농촌진흥청은 `유충의 형태를 드러나지 않는 분말이나 육수, 다짐 등으로 가공해 섭취`하는 걸 요령으로 제시한다. 명칭도 친근하게 바꿔서, 갈색저거리 유충은 `고소애`, 흰점박이꽃무지 유충은 ‘꽃벵이’, 장수풍뎅이 유충은 ‘장수애’ 식으로 바꿔서 쓴다.
그런데 사실 알보고면, 한국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충을 먹어온 민족이다. 배를 채우기 궁하던 시절, 굼벵이는 요긴한 단백질 섭취원이었다는 기록과 전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식용을 넘어 약용으로까지 널리 쓰였다. 동의보감은 누에나 굼벵이의 효능을 검증하고 있다. 앞서 2010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일부 곤충을 식품 원료로 인정했다. 개중에 포함된 거저리과 갈색거저리(Tenebrio molitor)의 유충은 칼슘과 마그네슘과 같은 무기질과 불포화지방산의 함량이 풍부한 것으로 연구결과 밝혀졌다.
멀리 갈 것 없이 번데기가 있다. 번데기는 곤충의 유충이 성충으로 변태하기 직전, 발육이 정지한 단계다. 애벌레도 아니고, 곤충도 아닌 상태다. 슈퍼에 가면 흔하게 찾을 수 있는 게 번데기 통조림이고, 술집에서 번데기 요리는 인기 안주로 팔린다. 매콤짭쪼름하게 조려 종이컵에 담아 길거리에서 팔리는 식재료 번데기는, 굼벵이와 다를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