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 김영나 관장 "내년에 오르세미술관 온다"
by김인구 기자
2013.12.10 09:06:08
2014년 5월…세잔·고흐·고갱 등 후기인상주의 계획
뉴욕 메트와 샌프란시스코에 ''박물관'' 한류 이끌어
"메트 아니라면 반가사유상 안 보냈을 것"
[이데일리 김인구 기자] “지구 반 바퀴나 떨어진 곳으로 순간이동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월스트리트저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입이 떡 벌어지게 아름답고, 전염성 강한 청명함을 자아낸다”(뉴욕타임스).
지난 10월 29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하 메트)의 ‘황금의 나라, 신라’ 전 사전 공개행사를 찾은 김영나(62)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지 언론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기 때문이다. 호평도 쏟아졌다. 관람객들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83호)과 황남대총 금관(국보 191호)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지난 5월 변영섭 전 문화재청장의 반대로 반가사유상의 해외반출 불허 결정이 내려졌다가 끈질긴 설득 끝에 번복된 일이 머리를 스쳤다. 뉴요커들에게 ‘천년왕국’ 신라를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뉴욕·샌프란시스코에 부는 ‘박물관’ 한류
내년 2월 23일까지 이어지는 ‘황금의 나라, 신라’ 전의 시작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메트 아시아미술부의 드니스 라이디 큐레이터가 국립경주박물관을 방문해 강연하던 중에 한 청중에게서 나온 ‘신라박물관’ 얘기가 단초가 됐다. 아주 우연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아주 매력적인 아이디어였다. 내친김에 국립경주박물관과 메트가 ‘신라’ 전 협력 방안을 협의했다. 신라의 화려한 예술품에 반한 메트는 메인 전시관인 1층 전시실을 내주기로 했다. 규모가 커지면서 아예 국립중앙박물관이 나서게 됐다. 김 관장을 비롯해 메트의 라이디와 이소영 큐레이터, 토마스 캠벨 관장이 힘을 모았다.
“얼마 전 메트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뉴욕 맨해튼 심장부인 5번가에 ‘신라’ 전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더라. 가슴이 뿌듯했다. 전시장은 더욱 감동이었다. 바로 옆에 그리스·로마전이 열리고 있는데 ‘신라’ 전이 그에 못지않았다. 원래 테크놀로지 기법을 잘 안 쓰는 메트가 입구 한 벽면에 황남대총 발굴 과정과 석굴암을 3D 영상으로 보여주는 등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을 줬다. 반가사유상 옆에 24시간 보안요원까지 배치해 관리하는 모습에서 더욱 믿음이 갔다.”
하지만 5개월 전 변 전 청장이 반가사유상 해외 반출을 불허할 때만 해도 눈앞이 까마득했다. 잦은 해외 전시로 인해 국보급 유물이 훼손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김 관장은 신라를 전 세계에 적극적으로 알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문화재청이 반대했던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만약에 메트가 아닌 다른 박물관이었다면 나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신라’ 전 유물의 보험평가액은 500억원이 넘었다. 전시는 첫날부터 현지의 이목을 끌었고 예상 누적 관람객 100만명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메트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아트뮤지엄에서도 ‘조선 왕실, 잔치를 열다’ 전을 열고 있다. 역시 반응이 뜨겁다. 내년 1월 12일까지다. 미국의 대표 박물관 2곳에 우리 유물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감개무량하다.”
▷자율 중시 리더십 “여성이라고 특별할 건 없어”
김 관장은 2011년 2월에 취임해 올해로 3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과 함께 국내 ‘빅3’ 문화예술기관의 여성 리더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김 관장은 ‘여성 리더십’을 구별짓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다르다.
“영국의 대처 총리,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독일의 메르켈 총리에게 여성 리더십이 뭐냐는 질문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여성이기 때문에 리더십이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물론 여성적인 특징은 있을 거다. 남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기에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러나 여성 리더십의 스테레오 타입에는 반대한다.”
김 관장은 취임 이래 박물관 운영에서 한 가지 원칙을 고수했다. 상명하복의 시스템이 아니라 각 담당자의 자율적인 업무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리더는 모름지기 큰 방향을 제시하면 됐다. 나머지는 담당자들의 몫이었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나부터도 일부 공무원들이 수직적 관계 속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이래라저래라 그런 게 싫었다. 직원들에게 지시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운영방침이 직원들에게 잘 전달된 것 같아 다행이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진행한 기획전과 특별전은 적지 않은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 내년 1월 19일까지 여는 ‘콩고강-중앙아프리카 예술’ 전은 개관 한 달만에 약 2만 5000명이 관람했다. 관람 후기를 올린 블로그도 10만여개로 늘어났다. 2011년의 ‘조선의궤’ 전, 2012년의 ‘터키 문명’ 전 등은 전시마다 20만명이 넘는 관람객을 기록했다. 지난달엔 국립중앙박물관 산하의 12번째 지방박물관인 국립나주박물관을 개관해 지방박물관 시스템을 완성했다.
▷2014년 ‘오르세’ 특별전, ‘르네상스’ ‘폼페이’도 잇따라
올해의 마지막 전시 주제는 도교다. 10일부터 내년 3월 2일까지 ‘한국의 도교문화-행복으로 가는 길’ 전을 연다. 세시풍속 등 우리 생활 곳곳에 전해지는 도교 문화를 통해 우리 정신문화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알리기 위함이다.
내년 전시의 굵직한 테마 기획도 끝났다. 특히 주목할 것은 ‘오르세미미관’ 특별전. 내년 5월쯤에는 루브르·퐁피두센터와 함께 프랑스 3대 미술관으로 불리는 오르세미술관의 명작들이 국내로 들어온다.
“이미 협의를 마쳤다. 세잔·고흐·고갱 등 후기 인상주의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돼 있다. 회화는 물론 스케치·조각·사진 등이 전시된다. 프랑스 최고 미술관의 걸작들을 우리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이후에도 전시 라인업은 2016년까지 꽉 차 있다. 오르세에 이어 ‘르네상스’ 전, ‘폼페이’ 전, ‘이집트’ 전 등을 기획하고 있다.
“우리 박물관의 한 해 미술품 구입비가 28억원이다. 이걸로는 고대 유물 한 점도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 미술관과의 교류와 기부 문화의 확산이 절실하다. 관람객들에게 다양하고 풍성한 문화를 제공하는 게 우리 임무 아닐까. 그런 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김영나 관장은…
1951년 서울서 출생. 서울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미국 켄터키주 뮬렌버그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오하이오주 오하이오주립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박사과정을 마친 후 1980년부터 덕성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95년부터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를 지냈고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위원도 겸임하고 있다. 관장으로서는 조용한 리더십을 보여준다. 국내 예술품의 해외전시, 비서구 해외 문화예술품의 국내전시 기획에 적극적이며 자율을 중시하는 운영원칙을 세우고 있다. 저서로 ‘서양현대미술의 기원’ ‘조형과 시대정신’ ‘20세기 한국미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