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 기여 삼표레미콘 성수공장, 45년 만에 뒤안길로
by함지현 기자
2022.08.15 11:49:51
1977년 가동 시작한 '서울 근대화의 상징'…16일 완전 철거
88올림픽 대비 SOC부터 DDP까지 굵직한 현장 납품
"공장 이전" 여론에 결국 문 닫아…대체부지 마련은 '아직'
[이데일리 함지현 기자] ‘한강의 기적’, ‘주거복지 안정’, ‘도시 현대화’에 기여해 온 삼표레미콘 성수공장이 오는 16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성수공장은 지난 1977년 가동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수출이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돌파하고 국민 소득이 1000달러를 기록하면서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던 때였다. 이후 서울의 주요 공사 현장에 레미콘을 공급하면서 산업화 시대 도시 개발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하지만 인근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서고 서울숲 공원이 조성되는 등의 주변 환경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45년 만에 완전 철거를 맞게 됐다.
| 삼표레미콘 공장의 1970년대 모습(왼쪽)과 1980년대 모습(사진=삼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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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표레미콘 성수공장은 ‘서울 근대화의 상징’으로 꼽힌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강원산업그룹(삼표그룹의 전신)이 지난 1966년 12월 설립한 삼강운수는 연탄수송을 위해 700여대의 트럭을 보유하고 있었다. 연탄 비수기인 봄부터 가을까지는 이를 활용해 건설 현장에 골재를 공급하는 골재사업을 진행했다. 삼강운수는 골재사업 추진 과정에서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성수동 한강변 골재기지에서 레미콘 사업을 하기로 계획했다.
당시 성수공장 부지는 과거 여름철이면 홍수로 인해 물이 잠기는 곳이었다. 이에 강원산업그룹은 1969년 홍수방지 등을 위한 한강 개발에 참여하기로 하고 공유수면 매립 허가를 받았다. 강 중심 부분의 골재를 퍼 올려 수심을 확보한 후 한강변에 모래, 자갈 등을 채워 토지를 조성하는 형태였다. 이후 1972년 이 입지에 성동구 성수동 한강변에 골재공급을 위한 전진기지, 즉 현재의 삼표레미콘 성수공장을 건설했다.
강원산업은 공유수면 매립 지역 13만2231㎡(4만평) 중 5만9500㎡(1만8000평)은 서울시에 기부 채납했다. 나머지 7만2727㎡(2만2000평)는 골재채취 기지로 활용했다. 이후 2000년 3월 강원산업이 현대제철에 흡수 합병되며 부지를 매각했고 삼표산업이 토지소유주인 현대제철로부터 성수공장 부지를 임대해 사용했다.
성수공장은 가동 이후 굵직한 현장에 레미콘을 납품했다. 1988서울올림픽 대비 SOC(사회기반시설) 사업, 김포공항 활주로, 여의도 63빌딩, 롯데월드타워, 과천 정부종합청사, 강북 뉴타운 조성공사, 청계천 복원공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이다.
단일공장 기준 아시아 최대 레미콘 생산량을 기록했던 만큼 규모도 상당했다. 3만6000여㎡의 넓은 부지에 레미콘 배합설비(배치플랜트)를 5대 설치했고 믹서트럭도 1200여대 수용이 가능했다.
성수공장의 하루 최대 레미콘 생산량은 7000㎥다. 연간 최대 175만㎥인 셈이다. 통상적으로 아파트 3.3㎡(1평)당 레미콘 1㎥가 소요됨을 감안하면 79.3㎡(24평) 아파트 7만3000여 가구, 잠실 롯데월드타워 8개를 지을 수 있는 물량 공급이 가능했다. 지난 45년간 연평균 100만여㎥ 생산량을 가정한다면 79.3㎡(24평)아파트 200만호 수준의 건설 물량을 공급한 성과를 낸 셈이다.
성수공장은 성수동 지역 일대 환경 개선에도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유수면 매립공사 후 물난리에서 자유로워졌고, 도로와 공원이 조성됨에 따라 지역 주민 편의 향상에 기여한 것이다.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지리적 특성에 따라 수변 거점으로 활용도도 높아졌다.
성수공장은 1977년부터 이 자리를 지켰지만 주변의 환경 변화로 인해 많은 부침을 겪었다. 서울 내 노른자 땅인 이 부지를 활용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진 것이다. 지난 1998년에는 서울시 신청사 후보지로 검토됐고, 2004년은 서울숲과 연계 개발 방안, 2010년은 현대자동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 등이 추진됐다. 다만 2013년 한강변 초고층 건축 제한 등의 정책으로 백지화됐다.
이후 2015년에는 인근 주민들이 삼표레미콘 공장 이전 추진위원회를 구성, 이전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결국 서울시와 성동구, 삼표산업, 부지 소유주인 현대제철은 2017년 10월 18일 ‘성수동 삼표레미콘 공장 이전 협약’을 체결하고 대체 부지를 찾아 올해 6월까지 공장을 이전키로 합의했다. 이 부지 향후 용처에 대해 여러 얘기가 나오지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
이후 5년간 논의 끝에 삼표산업이 현대제철로부터 공장 부지를 매입한 뒤 자체 개발하기로 합의했고, 지난 3월 28일 ‘삼표레미콘 공장 해체공사 착공식’을 개최했다.
숙제는 남아 있다. 바로 대체부지 확보 등 후속 대책이다. 성수공장은 서울지역 레미콘 수요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어, 공장 철거로 발생할 레미콘 부족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레미콘의 특성상 90분 내 건설 현장에 공급해야 하는 데 반해, 서울 도심지역은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운송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다. 서울 사대문 안이나 도심지 공사에서의 레미콘 공급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성수공장 철거에 따른 서울 일대의 레미콘 공급 차질은 건설 현장의 공기 지연과 자재 조달비용 증가, 궁극적으로 분양가 및 인프라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