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알못 가이드]대리사과부터 특검까지, 본예산보다 어려운 추경?

by유태환 기자
2020.03.14 11:00:00

文정권, 매년 추경 제출…협상 항상 진통
일자리 추경, 추미애 설화에 靑 대리사과
''18년엔 드루킹 특검 합의에 지지층 반발
작년엔 헌정史 두번째로 긴 계류 불명예
코로나 추경, 여론 의식 제출前 통과 합의

김재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추경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이데일리 유태환 기자] ‘본예산보다 어려운 추가경정예산안.’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조정소위원회가 13일 가동되면서 정부가 제출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추경에 대한 심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지난 5일 추경이 국회에 접수된 지 8일만으로 그동안 문재인 정권의 추경과 비교하면 유례없는 속도입니다.

여야는 2월 임시국회 회기(3월 17일까지) 내에 추경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는데 이 역시 문 정권에서 추경 편성도 전에 처리를 합의한 유일한 사례입니다. 문 정권은 지난 2017년 5월 출범한 이래 올해까지 4년 동안 한 차례도 빠짐없이 매년 추경을 편성해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3년간의 추경 협상과정을 돌아보면 매번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습니다.

당정이 추경 편성에 합의하는 순간 집권여당 원내사령탑의 최우선 목표이자 과제는 단연 추경 통과가 됩니다. 실제로 문 정권의 우원식·홍영표·이인영 1~3기 여당 원내대표 모두 예외 없이 야당과 추경 협상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문 정권은 지난 2017년 6월 7일 ‘일자리 추경’을 국회에 제출합니다. 첫 추경의 최대악재는 약 한 달 뒤인 7월 6일 터집니다.

민주당 대표였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박지원 전 대표, (대선) 후보였던 안철수 전 의원께서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인 문준용씨 특혜취업 의혹 증거 조작을) 몰랐다 하는 것은 머리 자르기”라고 국민의당(현재의 국민의당과 달리 민생당 의원까지 모두 소속됐던 당)에 직격탄을 날렸기 때문입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의 추경 반대 속에 우군확보가 절실했던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그야말로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국민의당에서는 당초 협조하기로 했던 추경에 대해 “‘추’자 들어가는 건 다 안된다”며 보이콧을 선언합니다. 추 장관이 이후에도 국민의당의 사과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고자세로 일관하자 민주당 내부에서는 “추경이 엎어지면 이건 다 추미애 때문”이라는 격앙된 반응들이 쏟아졌던 게 기억납니다.

급기야 당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전병헌 정무수석비서관이 국회를 찾아와 국민의당 지도부에 대리사과를 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인사문제가 또 발목을 잡습니다.

결국 우원식 원내대표가 직접 청와대에 송영무 국방부·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 시기를 늦춰달라고 요청하는 모양새를 취한 뒤 조 후보자가 자진사퇴하는 것으로 정리가 됩니다. 다만 민주당 의원 수십 명이 자리를 비워 추경에 끝까지 반대했던 한국당이 본회의 정족수를 채워주는 등 7월 22일 통과되는 날까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던 게 문 정권 첫 번째 추경입니다.

2018년 4월 6일 제출된 추경 역시 통과까지 어려움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 시기 정국의 최대 화두는 단연 친문(문재인) 핵심 김경수 경남지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드루킹 대선 댓글조작 사건’이었습니다.



급기야 당시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청 앞에서 노상 단식에 들어갔고 민주당은 눈물을 머금고 ‘드루킹 특별검사’에 합의해 줍니다. 친문 지지층에 반발이 거셌지만 여당은 ‘우리 경수가 불법을 저질렀을 리 없다’는 기본적인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법적 문제가 없을 것이라 보고 특검을 내줬습니다.

특검 규모·시기에 대한 이견과 추경 감액규모에 대한 갈등 등으로 당초 합의했던 본회의가 무산되기도 했지만 여야는 5월 21일 특검과 동시에 추경을 처리합니다.

일본경제보복 대응 예산이 심사과정에서 추가된 지난해 추경은 최초로 무산 가능성이 나왔을 만큼 문 정권 추경 중에서도 가장 난항을 겪었다는 평가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25일 국회에 접수된 지 99일 만인 8월 2일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서 헌정 사상 두 번째로 긴 계류기간이라는 불명예를 남겼습니다.

추경이 난항에 봉착한 가장 큰 이유는 공직선거법·검찰개혁법에 대한 범여권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대상안건) 지정 때문이었습니다. 한국당은 거세게 저항했고 신임 이인영 원내지도부가 들어설 때까지 그야말로 모든 여야 간 대화와 협상이 중단됐습니다.

당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새로 취임한 이 원내대표에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되겠다”는 말까지 했지만 좀처럼 감정의 골을 해소하지 못하면서 국회는 공전을 거듭했습니다.

여야가 극적으로 6월 임시국회에 합의하면서 추경 처리 접점을 찾았지만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 처리에 대한 이견으로 합의는 다시 없던 일이 됐습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정경두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고집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안보국회를 요구했고 민주당이 이를 수용하면서 다시 추경처리에 물꼬가 트였습니다.

추경이 이처럼 본예산보다 처리가 쉽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는 자동부의제도가 없다는 게 꼽힙니다. 본예산은 여야 간 심사가 늦어지면 12월 1일을 기점으로 본회의에 자동부의되기 때문에 야당이 무조건 반대를 하는 게 오히려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추경은 예결위를 통과하지 않으면 직권상정 카드를 꺼내 들어야 하기 때문에 여당으로서는 야당의 협조 없이 밀어붙이기가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20대 국회 하반기 예결위원장은 제1야당인 통합당의 몫입니다.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관례적으로 주고받기식 추경 협상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배경입니다.

반면 이번만큼은 코로나 사태에 대한 심각성과 여론의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통합당은 추경 통과의 전제조건으로 다른 안건을 연계시키고 있지는 않습니다. 심사도 큰 차질 없이 당초 합의한 일정대로 진행 중입니다.

다만 11조 7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최소 18조원 이상으로 확대하려는 여당과 증액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총선용 선심성 퍼붓기’에 대해서는 대폭 칼질하겠다는 야당의 이견이 있어 예정대로 17일 통과가 가능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