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용익의 록코노믹스]재결합한 건스앤로지스 '추억을 팔아요'

by피용익 기자
2018.04.21 08:00:10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추억의 록 밴드가 재결성 공연 소식을 알린다. 이름값 때문에 티켓 가격은 높고, 기다렸던 신곡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반가울 따름이다. 일회성으로 이뤄지는 깜짝 공연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무대를 보기 위해서다. 밴드의 ‘추억 팔이’에 팬들이 ‘낚이는’ 공식이다.

물론 추억 팔이 쇼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성기 때 스타디움을 꽉 메우던 밴드가 해야 관객이 모이고, 돈벌이가 된다. 1980년대 말 등장해 1990년대 초까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건스앤로지스(GNR)라면 가능한 얘기다.

GNR의 보컬리스트 액슬 로즈는 지난 2016년 기타리스트 슬래쉬, 베이시스트 더프 매케이건과의 순회공연 계획을 발표했다. 밴드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멤버들과의 재결합이었다. 그러면서 공연 타이틀을 ‘이 생애에 다신 없을 투어(Not in This Lifetime Tour)’라고 붙였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테니 꼭 보러 오라고 노골적으로 얘기한 셈이다.

이 공연이 놀라웠던 것은 액슬과 슬래쉬가 재결합하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슬래쉬가 1996년 밴드를 떠난 이후 20년 동안 말도 섞지 않았다. 액슬은 2009년 스피너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난 슬래쉬가 암적인 존재이며 제거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는 슬래쉬의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사망한 직후였다. 액슬이 슬래쉬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일부러 ‘암’이란 표현을 쓴 것이란 해석이 많다. 액슬은 같은해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선 “재결합 이전에 둘 중 하나는 죽을 것”이라며 GNR 재결성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슬래쉬의 공백은 컸다. 그의 기타 연주가 없는 GNR은 인기가 없었다. 10년 동안 1300만달러를 쏟아부어 만든 앨범 ‘Chinese Democracy’(2008)는 저조한 판매고를 올렸고, 앨범 발매 직후 순회공연 수입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GNR에서 탈퇴한 슬래쉬의 솔로 활동도 돈벌이가 시원찮았다. 앙숙이던 두 사람이 재결합한 배경에는 ‘돈’이 작용했을 것이란 추측은 그래서 나온다.

실제로 GNR의 키보디스트인 크리스 피트먼은 재결성 투어 계획이 발표되자 트위터에 “향수를 자극하는 공연”, “돈을 쓸어담는 사람들” 등의 표현을 썼다가 논란이 일자 삭제하기도 했다.

누가 뭐라고 하든 GNR은 목적을 달성했다. 2016년 4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공연에서만 4억8000만달러의 공연 수입을 기록했다. 이는 순회공연 기준으로 U2(2009~2011년, 360° 투어), 롤링스톤스(2005~2007년, 비거 뱅 투어), 콜드플레이(2016~2017년, 헤드 풀 오브 드림스 투어)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액수다.



건스앤로지스의 액슬 로즈(왼쪽)와 슬래쉬가 2017년 10월 30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건스앤로지스 오피셜 홈페이지)
사실 과거의 인기 밴드가 돈 때문에 재결합하는 것은 음악 업계에선 흔한 일이다.

영국 록 밴드 오아시스의 기타리스트 출신 가수 노엘 갤러거는 2015년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재결성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만약 한다면 오직 돈을 위해서 할 것”이라며 “우리(오아시스)가 어느날 다시 합칠 가능성은 늘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돈을 위해서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스래쉬메탈 밴드 앤스랙스의 기타리스트 스코트 이언은 2016년 블래버마우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신들도 알다시피 돈이면 다 된다”며 “솔직하게 말하면, 밴드들이 다시 모이는 이유는 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를 돌면서 스타디움을 매진시킬 수 있고, 인생 중 1년이 걸리는 일이라면 왜 (재결성을)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모든 밴드가 재결성을 통한 돈벌이에 열을 올리진 않는다.

비틀스는 1970년 해체한 후 단 한 번도 함께 무대에 서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 공연기획자인 빌 사전트가 1회 공연에 1000만달러를 제안했지만, 비틀스는 거절했다. 제안 금액이 5000만달러, 1억달러 등으로 점차 높아졌어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이 사망하면서 비틀스 재결성은 불가능해졌다.

지난 2000년 영화 “맘마 미아!”로 다시 유명세를 탄 아바에게도 당시 한 공연기획자가 접근했지만, 아바는 100회 공연에 10억달러를 준다는 제안을 거절했다. 보컬리스트인 프리다는 2014년 아일랜드 국영방송 RTE와의 인터뷰에서 “얼마 만큼의 돈을 줘도 우리 생각을 바꾸진 못할 것”이라며 “언젠가 함께 노래를 한 곡 녹음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물론 추억을 파는 재결성 깜짝쇼를 비난할 수는 없다. 사실 팬들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지금도 레드제플린을 비롯한 전설의 밴드들의 무대를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