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고규대 기자
2016.09.06 08:01:01
조대원 국제대학교 교수
[조대원 국제대학교 엔터테인먼트 계열 교수]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공전의 빅히트를 거듭하며 단숨에 글로벌 스타로 떠올랐을 때의 일이다. 당시 외교관 1만여명이 해도 못할 일을 싸이 혼자 해냈다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우스갯 소리처럼 시중에 나돈 적이 있다.
그 즈음에 한 기획사 대표가 여행 차 아프리카를 다녀온 후 전한 이야기는 더 감동적이다. 그가 아프리카의 한 지역을 방문했는데 동네 아이들이 생전 처음 보는 동양의 한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코리언”이라고 대답하자 그들은 다짜고짜 “싸이를 아느냐”고 확인하듯 되물었다. 마침 그는 핸드폰에 소장하고 있던 싸이와 함께 찍은 사진 한장을 보여주자 어떻게 그런 유명한 사람을 알고 있냐며 경계심을 푼 뒤 극진한 대접(?)을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가 가는 곳마다 전파되어 마치 국가원수급 환영을 받아 귀국했다는 이야기다. 싸이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바로 한류의 힘이자 문화의 힘이다.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일어난 현실이다. 영웅으로 칭할 만큼 싸이는 위대한 일을 해냈다. 대통령도, 외교관도 아닌 한 명의 가수가 해낸 성과다. 홍보나 광고비로 따지면 거의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도 불가능할 일이다. 이것이 사람들의 영혼을 소리 없이 파고드는 문화의 힘, 한류의 힘이다.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후폭풍으로 중국의 한류 열풍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한류 위기를 우려하면서도 중국의 한류 콘텐츠 제재가 오래가지 않을 거란 낙관론을 펴고 있는 듯하다. 정부기관조차 희망적 리포트를 작성하여 상부에 보고했다는 언론보도도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반대로 대중문화계 현장의 시각은 비관론을 넘어 절망적인 분위기다. 중국 영화에 한국 배우 12명을 출연시키기로 하고 캐스팅 작업을 했던 한 업체는 하룻밤 사이에 물거품이 됐다며 가슴을 쳤다. 또 다른 영상업체는 중국의 대형기획사와 영상제작 협력서를 체결하고 심혈을 기울여 만든 사업이 착수 직전 무기한 연기된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기획사도 아이돌 그룹의 중국 공연을 기획하다 졸지에 백지화됐다. 피해사례가 나날이 늘어나면서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업계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려되는 부분은 한류가 일본의 전철을 되밟지 않을까 위기감이다. 일본의 한류열풍은 지난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아베 정권의 묵인 하에 험한 시위가 잇따르며 사그라 졌다. 한국 스타들의 MD상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며 한류의 메카로 떠올랐던 신오쿠부 타운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해졌다. 한국을 옆집 드나들 듯 하던 일본 팬들의 발길도 험한 분위기, 엔고 현상과 맞물리며 뜸해졌다. 한·일간 정치적 냉각기의 한류 대체시장으로 떠올랐던 곳이 중국이다. 최근 중국의 한류제재는 일본과 비슷한 우경화 바람을 타고 민간인 중심의 험한류 분위기가 싹트고 있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일본 사례처럼 적절한 대응 타이밍을 놓친다면 중국 역시 혐한류 기류가 강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는 게 업계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정부가 재빠른 대응에 나서야 할 때라는 업계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문화는 트렌드이고, 트렌드는 한번 가라앉으면 복원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이 싸이의 사진 한 장에 열광하듯 문화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소리없이 파고들고, 마음 속에 자리잡은 문화는 행동으로 옮겨지며 경제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K팝을 좋아하다 한국을 알게 되고, 한국 자동차를 사게 되었다는 외국인들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문화가 행동을 지배하는 시대다.
“한류열풍에 정부가 도움 준 게 뭐가 있냐”는 성난 목소리부터 “어렵사리 만들어진 한류열풍이 정부의 안일한 대응으로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는 한류 현장의 목소리를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부 당국자들이 귀를 기울려야할 때다.
△조대원 국제대학교 엔터테인먼트 계열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