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문주용 기자
2001.02.23 10:20:07
LG전자와 브리티쉬텔레콤(BT)이 2세대 통신사업자인 LG텔레콤의 유상증자를 전격 결의, 국내 통신산업 구도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차세대 무선통신사업인 IMT-2000서비스사업에 탈락함으로써 사업 지속여부가 불투명해진 LG텔레콤이 LG전자와 BT를 끌어들여 증자키로함에 따라 "계속 사업"으로 가닥을 잡아가게 된 셈이다.
게다가 텔레콤은 3000억원이라는 증자자금을 IS-95c 분야 투자용으로 쓰겠다고 밝혀 2.5세대형으로 사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마저 드러냈다.
하지만 이에 대해 LG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이같은 의도가 실제화할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LG전자 등 실무자 대부분은 이같은 텔레콤의 증자에 "누구의 결정이냐"며 당황해하는 분위기다. LG 관계자는 "적어도 실무자의 뜻과는 확실히 배치되는 게 분명하다"며 "그룹과 BT의 톱 경영진간 합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라고 말했다.
◇제3 IMT사업권을 노리나=LG와 BT가 증자를 결의한데 대해 크게 서너가지 가능성을 유추해볼 수 있다.
우선은 대정부 압박카드다. 이번 증자에 대해 텔레콤의 대주주인 LG전자는 계속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했었다. 이사회에서 LG측에선 남용 사장, 이문호 캐피탈부회장만 참석했고 변규칠 텔레콤회장, 강유식 구조본사장, 서평원 사장은 불참했다. 반면 BT측에서는 2명의 상근이사가 모두 참여, 이사회결의를 주도했다. 특히 최근 BT측 아시아담당 사장이 내한, 국내 언론을 만나 "정통부가 제3의 비동기사업자를 선정하도록 건의하겠다"며 사실상 사업권을 요구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결의는 정부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LG 대신 BT가 증자를 주도, 향후 사업 운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임으로써 정부를 압박, 새로운 사업권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LG고위관계자는 "그러나 동기식 사업은 이번에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LG텔레콤의 기업가치를 높여라=또다른 가능성은 LG텔레콤의 활용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볼수 있다. 당초 LG는 IMT사업권 획득에 실패한 만큼 텔레콤 처리에 골몰했던 것이 주지의 사실.
하지만 하나로통신 주도의 "그랜드 컨소시엄"이 LG텔레콤 망을 이용하겠다는 뜻을 드러내면서 텔레콤에 대해 가치평가가 새롭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우선 LG가 먼저 접촉한 한국통신은 "가격이 맞지 않다"며 무관심한 척했지만 LG측에선 매각 협상의 여지를 충분히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여기다가 그랜드컨소시엄측이 투자비 절감을 위해 LG텔레콤망 활용을 적극 검토함으로써 LG는 한통이 아닌 그랜드컨소시엄에도 텔레콤을 넘길 수 있는 또다른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LG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사견임을 전제, "LG입장에선 그랜드컨소시엄이 제대로 구성되기를 바란다"고까지 밝힌 것은 이같은 LG의 협상력 상승을 염두해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입장은 이달초 "정통부가 동기식 사업자를 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던 입장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더욱이 정통부는 최근 정보통신사업 개편과 관련, "국내에 3개의 유·무선 사업자가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는 정책방향과 함께 "동기식 사업자는 LG텔레콤망을 활용하도록 하겠다"며 LG텔레콤의 활용방안을 정책적 과제로 수용하기까지 해 LG입장을 한층 고무시키기도 했다.
따라서 증자를 통해 텔레콤의 운영자금 조달과 함께 2.5세대인 IS-95c사업 등에 계속 투자를 선언함으로써 텔레콤의 가치를 높인 다음, 한통이나 그랜드컨소시엄에 합류시키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BT입장에선 현재 주당 6500원선인 텔레콤을 그냥 매각할 경우 주당 2만원선으로 총 4억달러에 달했던 투자자금의 3분2를 날리는 꼴이 돼 수용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독자생존의 길을 간다=이같은 전략적 측면과는 달리 순수하게 사업적 측면에서 증자를 결의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LG의 공식입장도 이쪽이다.
LG측은 IMT사업자로 선정된 SK텔레콤와 한통도 현재 2.5세대인 IS-95c 투자를 시작한 만큼 LG텔레콤도 이같은 기술 진화를 따르기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 달라졌다면 올해 초에는 LG텔레콤이 운영자금, 투자자금을 자체 조달토록 했지만 이번 증자결의를 통해 LG전자와 BT의 지원이 이뤄지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SK와 한통이 2세대 사업에 대한 투자비 회수를 위해 3세대인 IMT-2000사업에 대해 서비스 연기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결정에 한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바로 IMT를 뛰어넘고 4세대로 가거나, PDA로 넘어갈 것이라는 등 향후 통신서비스사업의 진화방향에 대한 갖가지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는 만큼 이같은 2.5세대 투자로 사업을 계속한 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자는 입장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LG전자 등 LG측 입장보다는 BT가 나름대로 자신들의 통신사업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독자생존의 길"을 이끌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이같은 시나리오중 여러가지 가능성을 동시 검토한 결과 향후 통신산업 환경의 변화에 따른 행보를 가볍게 하기 위해선 텔레콤을 탄탄하게 꾸려가는게 바람직하다는 LG와 BT의 판단에 따라 증자 결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LG텔레콤의 1대주주는 28.1%의 지분을 보유한 LG전자이며 BT는 24.1%의 지분으로 2대주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