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경제정책]내년 목표는 '현상유지'…조기 추경 힘 실린다

by박종오 기자
2016.12.29 08:00:00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정부가 29일 발표한 ‘2017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제시한 내년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2.6%다. 지난 6월 말 내놓은 전망치보다 0.4%포인트 내려 잡은 것으로, 정부가 추정하는 올해 성장률과 같다.

작년 성장률 2.6%, 올해 2.6%, 내년 2.6%. 정부의 성장률 전망이 목표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내년 경제 정책은 올해 수준의 ‘현상 유지’를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뜻이다. 이호승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내년 성장률을 2.4%로 전망했지만, 정부는 정책 효과를 통해 이를 0.2%포인트 높여 2.6%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조차도 내년 경제 여건이 결코 녹록지 않다고 보고 있다. 당장 수출 부진을 만회했던 소비, 건설 투자 등 내수가 가라앉을 조짐이다. 구조조정 여파로 제조업 일자리가 급감하고 주력 산업은 후발 주자인 중국 등의 도전을 받고 있다. 경제 중추인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도 내년부터 준다. 밖도 불확실성 투성이다. 미국 금리 인상이 주택시장과 소비 침체로 이어지고 보호 무역주의가 수출마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내년 경제정책방향 보고서 첫머리를 ‘경기·리스크 관리’가 차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근혜 대통령 색깔은 빼고 탄핵 정국 경제 운용의 무게 중심을 경기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 두겠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이번 정책방향에는 부동산 침체 지역 미니 부양, 고용 창출 기업의 세금 혜택 확대 등 외에도 경기를 떠받치고 위험 요인에 대비하는 방안이 다수 담겼다. 예컨대 정부는 내년에 21조 3000억원 규모 재정 보강에 나서기로 했다. 올해 더 걷은 세금 중 지방자치단체에 내려보내야 할 3조원은 내년 4월 조기 정산 후 나눠줘 연내 집행하도록 독려하기로 했다. 통상 지자체로 가는 세계잉여금은 이듬해 12월 정산해 그 다음 해에 집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돈 풀리는 시기를 1년 앞당기는 것이다.

올해 정부 예산·기금·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주요 사업비 등 재정 집행률은 과거 5년간 평균인 95.5%에서 96.5%로 1%포인트 높여 연간 지출을 3조원 늘리는 효과를 내고, 전력기금을 3000억원 확대해 신재생 에너지 사업 등에 투입할 계획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33개 공공기관 투자액과 정책금융도 15조원 늘려 임대주택 공급, 중소기업 지원 등에 쓰기로 했다.

불황에 더 큰 타격을 받는 청년·저소득층 등 취약계층 지원도 확대한다. 취업난을 겪는 청년층을 위해 내년 청년고용증대세제 세액공제액을 지금보다 200만원(대기업은 100만원) 늘리기로 했다. 이 제도는 전년보다 청년 정규직 근로자가 늘어난 기업에 증가 인원 1명당 500만원(대기업은 200만원)씩을 소득세나 법인세에서 감면해주는 것이다.

구조조정 직격탄을 맞은 조선업 등 특별고용지원업종 근로자를 위해 무급휴직 지원금 이용 문턱도 낮추기로 했다. 유급휴업, 고용 유지 훈련 등 먼저 거쳐야 할 요건을 완화하고 무급휴업 기간도 기존 90일에서 30일만 넘으면 지원할 계획이다. 무급휴직으로 인정받으면 최장 180일간 하루 최대 6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아울러 정부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라 생계급여를 받는 저소득 1·2인 가구 지원액을 늘리는 방안을 마련해 내년 7월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반영키로 했다. 주택도시기금 버팀목전세자금 대출을 받는 신혼 가구에는 우대금리 0.7%포인트(현재는 0.5%포인트)를 적용하고, 외국인노동자 취업 규모와 허용 업종 등도 재검토해 저소득층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정책의 실현 가능성이다. 대표적인 예가 시간선택제 근로자에게 부분 실업급여를 제공한다는 방안이다. 직장이 2개 이상인 시간제 근로자가 한 직장만 관둬도 실업급여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담당부처인 고용노동부조차 내년 중 시행이 불가능한 정책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고용보험료 부과뿐 아니라 징수, 관리 체계 등 제도 전반을 바꿔야 하는 장기 추진 과제라는 이야기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재 고용보험은 한 사업 또는 한 사업장 단위로만 적용하고 이중 취득은 허용하지 않는데 부분 실업급여를 주려면 실업 개념 자체부터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기재부가 그림이 좋다고 독촉해 정책에 담긴 했지만, 대선에서나 다뤄질 법한 시스템 전반을 바꿔야 하는 과제”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에 담긴 4차 산업혁명 대응 대책, 노인 기준 재정립 등 중장기 과제들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새롭게 추진될 것인 만큼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있긴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부 정책은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테면 결혼하는 근로자 등에게 소득세에서 세금 100만원을 돌려주는 혼인비용 세액공제의 경우 별다른 유인책이 못 된다는 지적이 많다. 근로소득세 면세자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6.8%(작년 기준)나 되기 때문이다. 깎아줄 세금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취약 계층 지원 등 정치적 이견이 없는 방안을 제외하면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은 국회에서 발목이 잡힐 가능성도 크다.

이처럼 정책 약발이 들지 않고 경기 하락 양상이 뚜렷해지면 재정의 역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연초 조기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나랏돈을 풀자는 주장이다.

실제 정부는 내년 전체 예산 지출액을 올해보다 불과 0.5% 늘리는 긴축 재정을 편성했다. 정책과 예산이 따로 노는 엇박자를 낸 것이다. 게다가 내년 1분기(1~3월)에 배정한 예산은 한 해 동안 쓸 전체 세출 예산의 36.3%로, 1분기 기준으로는 2001년 1분기(36.2%) 이후 16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1분기 예산 배정률은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43.9%,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진 2012년과 2013년에는 각각 44.1%, 45.1%에 달했다. 정규철 KDI 거시경제연구부 연구위원은 “경기가 갑자기 나빠지면 실업 등 많은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며 “경기 급락 우려가 있다면 추경을 과감하게 편성하는 것을 고려할 만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