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스테인리스 덩어리…깊이 알 수 없는 블랙

by김용운 기자
2016.09.12 06:15:10

조각거장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
연작 ''트위스트'' ''군집된 구름들'' 등 신작 선봬
국제갤러리서 10월 31일까지

아니쉬 카푸어가 자신의 신작 ‘트위스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김용운 기자).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사람은 영혼이 있기에 단순히 물질적 존재가 아니다. 사물이나 재료에도 정신적이고 영적인 성질이 있다. 예술은 이런 사물과 재료의 정신성을 실현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조각작품에 재료나 물질이 가진 정신성을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한 아니쉬 카푸어(62)가 새로운 작품으로 한국을 찾았다. 카푸어는 오는 10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군집된 구름들’(Gathering Clouds)이란 제목의 개인전을 갖는다. 네 번째 한국전시다. 최근 방한한 카푸어는 “조각은 현실적이고 물질적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오브제”라며 “그런데 예술은 비현실적이고 정신적인 주제를 담아낸다. 두 가지가 흥미롭게 결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비정형과 비물질을 만드는 데 관심”

이번 전시에서 카푸어는 ‘트위스트’를 비롯해 ‘군집된 구름들’ 등 15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트위스트’ 시리즈는 카푸어의 대표적인 연작으로 한국전시를 위해 새로운 작품을 들여왔다. 스테인리스 강철을 불특정한 각도로 뒤틀어 기하학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입체성을 담은 조각품이다. 60㎝ 크기의 ‘트위스트’는 선반 위에 놨고 높이가 약 2.5m에 달하는 대형 ‘트위스트’는 전시장 바닥에 설치했다.

‘트위스트’ 연작에 대해 카푸어는 “물체에 적용한 물리적인 힘이 절제된 움직임으로 어떻게 전환하는지를 표현했다”며 “작품에 적용한 기하학적 곡선은 수학적인 계산으로 나왔지만 뒤틀림 자체가 신비롭게 보이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아니쉬 카푸어 ‘트위스트’(사진=국제갤러리).




역시 연작으로 제작한 ‘군집된 구름들’은 카푸어의 대표작인 ‘스카이 미러’와 마찬가지로 유리섬유로 제작한 오목한 형태의 원반 작품. 벽에 걸 수 있는 형태로 오목한 부분에 검은색 안료를 칠해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을 떠올리게 한다. 카푸어는 “구름은 비현실적인 요소를 담은 오브제”라며 “물성이 만들어내는 초월적·정신적 요소를 반영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카푸어는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해 “찰흙으로 항아리를 만들면 그 안에 빈공간이 생긴다. 손에 잡히는 물성(찰흙)으로 비현실적인 요소(빈공간)를 창조한 셈”이라며 “어두운 내부,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이 중요한 테마다. 비정형과 비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강조했다.

아니쉬 카푸어 ‘군집된 구름들 I, II, III, IV’(사진=국제갤러리)


◇ 블랙홀 다음으로 어두운 ‘반타 블랙’ 작품에 사용할 예정

카푸어는 올해 초 영국기업이 개발한 검은색 안료인 ‘반타 블랙’(Vanta Black)의 예술적 사용권한을 독점하기로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반타 블랙’은 빛의 99.96%를 흡수해 우주에서 블랙홀 다음으로 가장 어두운색으로 평가받는다. 카푸어는 “너무 검어서 존재하지 않거나 마치 꿈 같은 느낌을 주는 색”이라며 “수년 내 내 작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팀과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인도 뭄바이 태생의 카푸어는 10대에 영국으로 이주해 혼지예술대와 런던 첼시대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1990년 베니스비엔날레 영국 대표작가로 참여해 신인에게 주는 ‘프리미오 듀밀라’를 수상했고 이듬해에는 영국의 권위있는 예술상인 ‘터너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뉴욕현대미술관, 프라다재단,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등이 작품 소장하고 있다. 국내에선 삼성 리움미술관 정원에 73개의 스테인리스 스틸공을 15m 높이로 쌓아올린 ‘톨 트리&더 아이’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