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민의 사과나무]'식물국회vs선진국회' 제도 탓인가
by정태선 기자
2016.01.30 09:00:00
[조승민 글로벌입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새누리당이 이른바 선진화법이라고 불리는 국회법 선진화 규정의 개정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때마침 지난 1월 28일에는 헌법재판소에서 이 규정을 둘러싼 공개변론도 열렸다. 여기에 참석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선진화 규정을 두고 ‘위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음은 물론이다. 여당 대표는 이미 ‘망국법’이라고까지 규정한 바 있다.
| 조승민 객원 칼럼니스트.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정치학 박사. 글로벌입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현),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객원교수, 국민대 정치대학원 겸임교수 역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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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개정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 자체가 상당히 첨예한 사안일 뿐만 아니라,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은 물론 쟁점법안 처리와도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이번 국회 회기 내에 개정을 강행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야당과의 협상과정에서, 야당의 협조를 전제로 다음 국회로 넘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경우, 20대 총선에서 여야가 공약으로 내걸고 그 결과에 따라 논의, 처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총선이 끝난 2012년 5월에 18대 국회가 선진화 규정을 처리했듯이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떤 처리 과정이 되더라도 ‘합의의 원칙’을 더욱 강화시키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입법부의 운영 원칙은 크게 ‘다수결의 원칙’과 ‘합의의 원칙’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원칙을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국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다수결의 원칙보다는 합의의 원칙에 의해 운영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시행된 1988년 13대 총선에서 우리 국민은 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국회를 탄생시켰고, 이를 계기로 ‘합의에 의한 국회운영’의 관행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여야 합의에 의한 안건 처리, 상임위원장 자리를 승자독식이 아닌 의석수에 의해 배분하는 것 등이 구체적 사례이다.
하지만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안건의 경우, 강행처리와 물리적 저지로 충돌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해머와 전기톱 그리고 최루탄까지 등장했고, 의원들 간에 유혈상황까지 일어났었다. 이른바 ‘폭력국회’, ‘동물국회’라 불리던 18대 국회까지의 모습이 그러했다. 이런 모습에서 탈피하기 위해 지금의 선진화 규정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방향은 합의의 원칙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었다. 19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60% 의결정족수 조항에 동의한 것이다. 이것은 적어도 4년간, 여당이 안건을 단독처리하지 않겠다고 제도적으로 보장한 것이었다. 국회 회의 방해 금지 규정도 마련되었다. 물론 야당 입장에서는 이 규정이 없더라도 단상 점거나 회의장 출입 방해를 할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덕분에 ‘동물국회’와 ‘폭력국회’는 사라졌다. 예산안 통과를 둘러싸고 매년 벌어지던 여야의 볼썽사나운 충돌도 예산안 자동 상정 조항에 의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됐다. 대신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식물국회론’이 등장했다. 여당의 입장에서는, 합의의 원칙을 강화한 현재의 제도적 수준이 여당의 국정운영능력을 현저히 약화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여당으로써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선진화 규정을 소화할 수 없는 국회의 수준이 문제라는 일부의 지적도 있다. 하지만 19대 국회 4년간 시행해본 결과를 바탕으로, 좀 더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는 일이다. 크게 본다면, 이 모든 과정을 우리 국회가 ‘합의적 운영 원칙’을 더욱 강화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야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로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한다. 현행 선진화 조항에 대한 문제의식을 모두 꺼내서 논의하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야 모두 국정운영의 경험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늘 여당일 수도 없고, 계속 야당만 할 것도 아니다. 여소야대 현상 또한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일이다.
국회법 개정을 포함한 쟁점들을 잘 마무리하지 못하면, 19대 국회는 그야말로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그나마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고, 총선 때 투표장으로 가는 유권자의 발걸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것이다. 곧 다가올 총선에서 표를 달라고 할 여야가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