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세뱃돈까지 펀드에 몰아넣었는데…" 엄마들의 눈물

by조선일보 기자
2008.10.27 09:37:00

● 남편이 밉다, 아니 고맙다
재테크 부추기던 남편, 왜 이렇게 미운지 이젠 믿을 건 남편 월급뿐… 바가지도 못긁어
● 배웠다, 하지만 아프다
땀으로 돈 벌어야 하는데, 돈으로 돈 벌려고 했으니…
펀드가 이렇게 무서운지 예전에는 몰랐어요

▲ 채소 하나 살 때도 가슴 철렁 추락하는 펀드 수익률과 반대로 장바구니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겁 없이 뛰어 주부들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한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마트 계량대. 블룸버그주부 3人의 추운 안방 경제
[조선일보 제공]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 1000 밑으로 푹 꺼져가는 주가와 치솟는 환율에 기업·자영업자는 물론 가계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공포와 좌절의 분위기는 10년 전 IMF환란 때를 방불케 한다. 당장 주식을 팔고 펀드를 깨야 하는 것인지, 이대로 앉아있으면 언젠가 희망의 빛줄기가 나타날지 앞이 컴컴하기만 하다. 서울에서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주부 지연수(40)·안혜용(38)·장선애(34)씨가 26일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걱정과 고민, 그리고 각오를 주고받았다.

지연수·장선애씨는 남편이 회사원이고, 안혜용씨 남편은 자영업을 하고 있다. 이들의 방담(放談) 내용을 소개한다.


―작년만 해도 펀드 투자를 안 하면 제대로 된 엄마가 아니라고 모는 분위기였다. 아이들 세뱃돈과 용돈 받은 것까지 박박 모아 펀드에 넣었다. 지금 수익률이 반 토막 났다. 코흘리개 돈을 내가 이렇게 날리는구나. 밤잠이 안 온다.

―작년 말에 은행 갔더니 형광펜으로 '○○펀드, 수익률 40%' 부분을 밑줄 그어주면서 권하더라. '아이의 미래를 위해 투자할 배짱도 없냐'는 핀잔까지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가입한 펀드 수익률이 지금 마이너스 60%다.

―펀드런(fundrun·펀드환매사태)이 터져서 다들 돈 빼가고 나만 혼자 달랑 남는 악몽까지 꾼다. 애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자며 남편과 서로 위로한다.

―착실히 적금만 붓던 나에게, 다른 주부들처럼 돈 좀 크게 불려보라며 펀드 사라고 부추긴 남편이 지금은 너무 밉게만 느껴진다.

―위험 관리하려면 분산 투자하라는 말에 중국·한국·브릭스에 돈을 쪼개 넣었다. 그런데 세계적인 위기가 닥치니 분산투자고 뭐고 아무 의미가 없다. 배신감까지 느껴진다.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이 이렇게 속절없이 반 토막 나니까 더 속이 탄다. 펀드가 이렇게 무서운 건지 몰랐다. 너무 겁 없이 투자했고, 호된 공부했다.

―투자는 망했는데 물가는 오르니 채소 하나, 과일 하나도 맘대로 못 사겠다. 계산대에 찍히는 숫자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먹고사는 데 써야 하는 노후 자금으로 투자한 사람들이 가장 큰 문제다. 친구 시아버지는 아내 몰래 숨겨둔 비자금 1억원으로 주식에 투자했다가 홀라당 까먹고 빚까지 져서 이혼하네 마네 난리가 났다.

―은행 예적금에 대한 불안감은 그리 크지 않다. (은행들은) IMF 위기에서 살아남은 곳들인데, 이런 곳들마저 무너진다면 대한민국 자체가 무너지는 거란 생각 때문이다.





―요즘 주택 투매 없는 이유가 바로 IMF 학습효과 때문이다. 집은 무조건 그냥 잡고만 있으면 다시 오른다는 기억 때문에 내던지지 않는다.

―IMF위기 때 집값, 주가 다 폭락했는데 2~3년 뒤에 몇 배로 튀겨지는 걸 보면서 'IMF야! 한번만 더 와라, 내가 몽땅 사주마' 했었다. 지금 막상 타이밍이 온 것 같은데 돈이 없다.

―IMF위기 때도 큰 회사가 여러 곳 무너졌는데 또 그러지 말란 법 있냐? 나라 상황을 못 믿게 되니 추운 겨울에 대비해 자꾸 비축하게 된다. 의류비·외식비 같은 안 써도 되는 소비부터 줄이고 있다.

―집값은 떨어지지, 주식은 폭락하지, 앞으로 돈 벌 구멍은 월급밖에 없는 것 같다. 남편이 늦게 퇴근해도 바가지도 못 긁겠다. 회사에 착실히 다녀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

―은행에서 1억원 빚내 여의도에서 전셋집 구하려고 했다. 그런데 대출 받아 갚아 나가는 게 걱정되어 대출을 안 받고도 살 수 있는 지역으로 이사 가기로 했다.




반 토막 난 펀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주부들의 방담에 함께 참석한 이재경 삼성증권 펀드리서치파트장은 "손실폭을 만회할 만한 대안이 마땅히 없다면 좀 더 기다려보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단기간 동요하지 말고 두려움을 이겨내면서 기다리는 것이 차라리 손실을 줄이는 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입한 중국 펀드에 대해선 "최근 중국 정부가 내놓는 각종 증시 부양책은 주로 본토 증시(A주)에 해당되는 것이어서 우리가 많이 투자한 홍콩 증시(H주)와는 다소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안정기로 접어들 때까진 홍콩 증시가 출렁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또 "최근 적립식 펀드 투자자들마저 납입을 중단하거나 해지하는 경우가 있다"며 "주가가 쌀 때 사들여 매입 단가를 낮추는 것이 적립식 펀드의 장점인데 요즘 같은 하락기에 중단한다면 적립식 펀드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신규 투자자라면 최근 정부가 내놓은 펀드 소득공제 혜택을 꼭 챙기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