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한 상속세 개편 필요…정부 지원 없이 반도체 어렵다"
by김정남 기자
2024.07.21 12:00:00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제주포럼 기자간담회
"각 기업에 선택지 주는 상속제도 진화 필요"
"반도체 미세화 한계…공장 하나에 20兆 투자"
"HBM 투자 너무 많이 들어…정부 지원 필요"
[서귀포=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한국의 상속 제도 개편의) 디테일에 대한 연구가 더 이뤄져야 합니다. 가능한 한 기업을 좋게 만들고 경제가 성장하는 방향으로 상속세가 진화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은 지난 19일 제주 서귀포의 한 식당에서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화두로 떠오른 상속세 개편을 두고 “그 디테일은 (각자 기업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갖고 ‘나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면 그것 받아주는 게 필요한데, 지금 한국의 법은 그것이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최 회장은 “지금은 일률적으로 ‘당신 몇 퍼센트야, 그러니 세금 내’라는 것이고, ‘세금을 어떻게 내’라는 것도 없다”며 “모든 사람이 동일하다고 생각해서 ‘상속 금액의 몇 %를 당장 내’ 혹은 ‘5년 동안 잘라서 낼 수 있도록 해’ 이 정도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상속 제도는 각자 기업들이 가진 사정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현재 정부와 국회가 상속세 개편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와중에 나온 경제단체 수장의 발언이어서 관심이 모아진다.
최 회장은 “(기업들이 능동적으로 가업승계에 나설 수 있도록) 여러 선택지를 만들어줄 필요성이 있다”며 “그게 지금 ‘몇 %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저는 (상속세를) 5년간 유예해 주고 5년 뒤에 주가를 많이 올려 주식 일부를 팔아서 이걸 내겠다’ 한다면, 이건 나쁜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어떻게든 회사를 잘 되게 만들어 주가를 올리는 게 좋은 것이라면 그것은 받아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지난 19일 제주 서귀포의 한 식당에서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한상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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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른 많은 나라들도 이런 고민이 항상 있었을 것”이라며 “일본은 지금 가업승계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맞이하고 있는데, 일본에는 중소기업 가업승계 해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기업이 약 60만개”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도 무엇인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디테일에 대한 연구가 더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제22대 국회에 바라는 점에 대해서는 “새로운 균형감각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번 제주포럼 개회사를 통해 “과거에는 (질서가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있었지만 지금은 정글에 들어온 것 같다”고 했는데, 국회 역시 입법 과정에서 이를 감안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 회장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전략을 만들 때 (과거와 비교해) 위험도가 달라졌으니 이에 대처하는 모습이 다 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정부의 반도체 지원 필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그는 “예전에는 (반도체 공정 미세화 과정에서 향상되는 정도가) 컸는데 지금은 2나노, 1나노 이러니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며 “테크놀로지 브레이크스루(breakthrough·돌파구)가 더는 안 일어나는데 시장에서는 업그레이드를 요구하니, 설비투자를 더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반도체 미세화 공정은 나노 단위로 칩 회로 선폭을 줄여 공정을 미세화하는 작업이다. 반도체 크기를 줄이면 한 웨이퍼에서 더 많은 칩을 생산할 수 있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미세화가 한계에 봉착하면 추가적인 생산성 향상은 어려워질 수 있다. 최 회장이 라인 증설에 대한 고민을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 회장은 “공장을 하나 지을 때 대강 계산해보면 20조원이 든다”며 “그러니 세제 혜택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것은 메모리뿐만 아니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도 비슷한 상황”이라며 “그래서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많이 하는 것이고, 다른 나라들이 설비투자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역시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이런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전망이다.
최 회장은 “지금 걱정은 (반도체를 통해) 아무리 돈을 벌어도 번 돈보다 더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정부에서 자꾸 무엇인가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특히나) SK하이닉스가 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비싼 투자인데, 이 역시 쉽지 않다”며 “잘 팔리니 행복한 고민일 수 있지만 투자가 너무 과격하게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다가 캐즘(일시적인 수요 정체)이 다시 일어나면 배터리와 같은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위기가 오는) 그럴 때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올해 미국 대선이 SK그룹의 대미 투자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AI 시장이 돌아가는 것에 저희(SK그룹)가 큰 리스크가 있는 것은 없다”며 “상대적으로 아직 미국 지역의 반도체 투자는 그렇게 크지 않다”고 했다. 그는 “(자세한 것은) 내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봄은 지나야 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