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바이오人]'미국판 황우석' 엘리자베스 홈즈 전 테라노스 CEO
by김새미 기자
2022.11.26 17:01:54
징역 11.3년 선고…'실리콘밸리의 신데렐라'가 범죄자로 전락
혈액 몇 방울로 250종 질병 진단키트 개발했다며 스타덤 올라
10여 개 질병만 진단 가능한 게 밝혀져 기업가치 '0'으로 추락
실리콘밸리 특유의 폐쇄적 문화·성공지상주의가 사기극 촉발
| 엘리자베스 홈즈 테라노스 설립자 겸 전 최고경영자(CEO).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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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새미 기자]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대 사기극 혐의로 기소된 엘리자베스 홈즈(Elizabeth Anne Holmes) 테라노스 설립자 겸 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8일(현지시간) 징역 11년 3개월을 선고받으면서 국내 바이오업계에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연방 지방법원 에드워드 다빌라 판사는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홈즈가 현재 임신 중인 점을 참작해 내년 4월 수감을 명했다. 앞서 홈즈는 재판 중인 상황에서 2020년 캘리포니아 에반스 호텔 창업자의 아들인 빌 에반스(Bill Evans)와 결혼하고 지난해 7월에는 아들을 출산했다. 홈즈는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홈즈는 혈액 몇 방울로 250여 종의 질병을 진단하는 키트 ‘에디슨’을 개발했다며 실리콘밸리의 일약 스타로 떠올랐던 인물이다. 홈즈는 2003년 스탠퍼드 대학을 중퇴하고 19세의 나이로 바이오 스타트업 테라노스를 창립해 ‘여자 스티브 잡스’로 불렸다. 그는 미디어재벌 루퍼트 머독 등으로부터 9억4500만 달러(약 1조2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까지 이사진에 합류시키는 등 성공가도를 달렸다.
실리콘밸리의 신데렐라로 급부상했던 홈즈는 자사의 기술이 사기라는 게 폭로되면서 ‘미국판 황우석’으로 전락했다. 홈즈가 개발한 키트는 10여 개의 질병만 진단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게 밝혀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2015년 90억달러(약 12조800억원)에 달했던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는 2016년 0달러로 추락하고 2018년 9월에는 청산 절차를 밟았다.
실리콘밸리에서 이 같은 거대한 사기극이 펼쳐질 수 있던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홈즈가 이미지 메이킹에 능한 인물이었다는 점이 1차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그는 자신을 ‘제2의 잡스’로 포장하기 위해 공식석상에서 늘 검은색 터틀넥 셔츠를 입고, 특정 식단을 고집했다. 연설할 때 목소리도 바리톤 톤으로 낮춰서 발성했지만 실제 목소리는 전형적인 젊은 여성의 목소리라는 게 동료들의 증언이다.
해당 사기극에는 홈즈뿐 아니라 수많은 공범들도 존재했다. 외신들은 실리콘밸리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와 성공지상주의가 이러한 사태를 촉발시킨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홈즈는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실리콘밸리의 특성상 종종 쓰이는 비밀유지 의무조항을 악용했다. 홈즈는 테라노스의 기술력에 대한 의학적 의구심이 제기될 때마다 사업상 비밀이라는 점을 내세워 해명을 피해왔다.
재판부는 홈즈의 사기로 10명의 투자자가 1억2100만달러(약 1625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판단했다. 재판에 참여하지 않은 투자자들의 손해까지 포함하면 천문학적인 손실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가장 큰 손실은 바이오헬스 사업에 대한 신뢰가 추락했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 사업가에 대한 편견이 더욱 심해졌다. 한 여성 사업가는 홈즈와 비슷해 보이니 원래 금발인 머리카락을 다른 색으로 염색할 것으로 권유받았다는 얘기가 떠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국내 바이오업계에서도 홈즈가 징역형을 받은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바이오산업의 특성상 기술력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고, 검증이 쉽지 않다 보니 ‘묻지마 투자’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자들이 자체적으로 옥석가리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바이오기업들도 투명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엘리자베스 홈즈 테라노스 전 CEO 약력
△1984년 워싱턴DC 출생
△2001년 스탠퍼드 대학 화학공학과 입학
△2003년 스탠퍼드 대학 중퇴
△2003년 바이오 스타트업 ‘리얼타임큐어스(Real-Time Cures, 현 테라노스)’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