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클래식의 힘…김주택 팬텀 가창력[문화대상 이 작품]

by김미경 기자
2023.08.21 09:00:12

심사위원 리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13년 만에 韓 배우 출연 공연
40년전 감동 그대로, 성숙한 무대 눈길
4명의 팬텀 각자 개성 돋보여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지하 미궁 장면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 김주택, 손지수(사진=에스앤코 제공).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 ‘오페라의 유령’ 한국 배우 출연 공연이 13년 만에 올라갔다.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초연은 2001년 이루어졌다. 당시 시장 상황이나 제작력으로서는 무리한 기획이었지만 이 프로젝트는 멋지게 성공해 한국 뮤지컬 시장의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2001년 이후로 작품은 여섯 번 공연되었는데 반은 해외 투어 공연이었고 반은 한국 배우들의 출연하는 공연이었다. 놀라운 것은 2001년 한국 초연을 포함한 올해 공연까지 모든 공연이 한결같이 동일한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이 감동의 시작은 1986년 런던 초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의 40여 년이 지났지만 음악이나 무대, 드라마 무엇 하나 시간에 깎이지 않고 동일한 감동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오페라의 유령’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무대로 곤두박질하는 샹들리에와 파리 오페라하우스의 지하 호수를 재연한 촛불 장면, 또는 마스크레이드의 화려한 가면무도회 등 강렬하게 시선을 끄는 장면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웨버의 대중적이면서도 클래식한 음악이 무엇보다 많이 회자된다. 극이 거의 대사 없이 노래로 이루어진 성스루뮤지컬이다 보니 극적 인물과 드라마는 헐겁게 보는 시각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오페라의 유령’은 원작 소설의 미스터리함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오페라하우스에 숨어 사는 ‘팬텀’의 고독과 사랑을 가슴 아프게 전달한다.

언제 어디서 보더라도 동일한 감동을 주겠다는 오리지널 제작진의 의도대로 레플리카(복제) 방식으로 공연되고 있지만, 언어와 캐스팅에 따라 그 맛은 조금씩 다르다. 2001년 한국 초연이 풋풋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지난 20여 년의 발전을 반영하듯 한결 안정되고 성숙한 ‘오페라의 유령’을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역할인 팬텀 역에는 네 명의 배우가 캐스팅되었는데 각 배우의 개성이 강해, 각자의 팬텀을 보여준다. 필자는 김주택이 연기하는 팬텀을 보았다. 단언컨대 노래에 있어서는 세계 어느 무대의 팬텀에 뒤지지 않는 가창력을 보여주었다.



팬텀의 노래 중 ‘밤의 노래’는 자신의 은신처로 초대한 크리스틴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매력을 호소하는 넘버다. 바로 직전 이 작품의 대표곡이자 주제곡이기도 한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에 이어 부르는 곡인데 ‘밤의 노래’를 듣던 크리스틴은 기절한다. 갑작스러울 수 있지만 팬텀이 ‘밤의 노래’로 완전히 크리스틴의 호흡을 빼앗고 숨 막힐 듯한 고음으로 그녀의 음악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극적인 상황은 이렇게 설정되어 있지만 무대에서 크리스틴이 기절하는 것을 충분히 납득시키는 팬텀은 많지 않다. 그러나 김주택은 크리스틴뿐만 아니라 관객 모두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밤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안정된 기량을 선보인 칼로타 이지영과 한국 초연 팬텀이었던 윤영석의 앙드레 연기도 일품이다. 특히 윤영석은 작품의 이해가 깊어 대사 하나하나에 앙드레의 기분이 느껴질 정도로 완벽한 해석을 끌어냈다. 그 외 발레 장면이나 합창에서 안정적 기량을 보여준 앙상블이 극을 탄탄하게 받쳐 주었다. 드라마와 극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긴밀하게 장면을 전환하는 극적 짜임새와 무대 메커니즘도 뛰어나다. 팬텀 중심의 드라마로 대사 하나, 장면 하나가 밀도 있게 조직되어 있다. 40여 년 전 웨스트엔드 초연과 지금의 공연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이 작품은 오늘날의 관객들에게도 동일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것이 진정한 클래식의 힘이다. 오는 11월17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한다.

2023년 한국어 프로덕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무대 샹들리에(사진=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군무-하니발 장면(사진=에스앤코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