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배진솔 기자
2018.10.23 08:00:59
“학내에는 아직도 성폭력, 성차별이 존재하고 차별받는 소수자도 많아 이들을 위한 보호 장치가 필요합니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없어진 것이 아니고 차별은 늘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미 기존에 있던 차별을 너무 쉽게 지워버리고 하는 소리일 뿐입니다. 앞으로 총여는 사라지지만 학내 소수자를 위한 활동을 더 활발히 해나갈 것입니다.”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성성어디가)의 노서영(22·국문과 4학년)씨는 22일 스냅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성대 총여학생회를 두고 학교와 총학생회가 민주적 정당성을 잃은 채 강행한 부당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성성어디가는 지난 9월 ‘우리에게는 여학생회가 필요합니다’란 슬로건으로 성대 총여학생회를 재건하기 위해 나선 이 학교 재학생들의 모임이다.
2009년 이후 입후보자 부재 등으로 꾸려지지 않았던 성대 총여학생회가 지난 15일 학생 총투표 결과에 따라 폐지수순을 밟게 됐다.
성대 서울 인문사회과학캠퍼스 학생총투표 투표관리위원회는 학생 총투표를 통해 총여학생회 폐지 안건이 가결됐다고 밝혔다. 지난 10일부터 15일까지 총유권자 9242명 중 52.39%에 해당하는 4842명이 투표했고 유효표 4747표 중 83.04%(4031표)가 총여학생회 폐지에 찬성했다. 반대는 14.75%(716표), 무효 2.2%(107표)다.
9년 동안 잠들어 있던 성대 총여학생의 부활 움직임이 일어난 건 ‘스쿨미투’ 때문이었다. 남정숙 전 성균관대 문화융합대학원 교수는 2011년4월부터 당시 소속 대학원장이었던 이모 교수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
남 전 교수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했으나 학교에서는 대학원장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만을 내렸다. 이모 교수는 올해 초 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이 이모 교수에 대한 경징계에 항의하며 면담을 요청했지만 학교에서 돌아온 답은 ‘선출직이 아니면 나서지 말라’였다.
노씨는 “총여 부활 움직임이 일어난 계기는 남 전 교수의 미투운동으로 시작됐다”며 “피해자, 특히 여성을 대변해주고 목소리를 내줄 사람이 학내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교내에서 이런 여성의 문제에 대해 대응해 줄 수 있는 단체가 ‘문과대 여학생 위원회’다. 실제로 문과대 여학생 위원회를 통해 많은 신고가 들어오지만 신고인과 피신고인 모두 단과대 소속 학생일 때만 사건처리가 가능하다. 이 조차도 징계를 강제할 수 없다.
노씨는 총투표 결과에 수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학내에서 이런 기구나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총투표의 발의부터 시행까지 이 모든 절차가 비민주적이었다고 다시금 주장했다.
노씨는 “과거 여대생 수가 현저히 적고 인권인식도 낮았을 때 존재하던 총여학생회가 21세기에서 굳이 필요하냐고 일부 학생대표자 등을 중심으로 폐지 주장이 일었다”며 “남녀가 같은 학생회비를 내고 쓰는데 여학우만 투표할 수 있는 총여학생회의 존재는 총학 등에서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학생회비 분담도 현재 총여학생회가 총졸업준비위원회와 동아리연합회와 같은 위상의 독립기구로 인정받고 있어 5% 정도를 할당받고 있다”고 일축했다.
학생 투표로 총여학생회가 없어지게 됐지만 성성어디가는 성과가 없진 않다고 평가했다. 성성어디가는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총여 폐지 안건이 가결됐지만 그것이 곧 우리의 패배와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캠퍼스 안에서 우리가 싸워온 역사를 되돌아보고 이제 시작임을 알리는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를 두고 학생 간의 시각도 엇갈린다. 김수현(경제학과 3학년)씨는 “총여학생회가 10년 동안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은 유명무실한 단체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며 “총여가 폐지되면 여학생, 장애학우, 사회약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다른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민아 (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씨는 “총여학생회 후보가 나온 상태에서 실질적인 운영을 해보지도 않고 존폐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총여학생회를 개편하려는 시도도 없이 폐지한 것은 부당하다”고 언급했다. 한편, 스냅타임은 성대 총학생회 측의 생각을 듣기 위해 접촉했으나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