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냅타임] 돈 내는 독서 모임 '트레바리' 들어봤니?

by박새롬 기자
2018.07.21 08:00:51



트레바리 윤수영 대표(사진=스냅타임)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에 들어갔다. 1년 만에 퇴사 후 대학 시절부터 해온 독서모임으로 창업에 도전했다. 돈 내는 독서모임 '트레바리' 대표 윤수영(29)씨다.

그는 "팔리면 팔릴수록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트레바리는 한 달에 한 번 비슷한 독서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처음엔 주변 지인들 10명 남짓으로 시작한 트레바리는 3년 만에 회원 수 3000명의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지금은 서울 압구정과 안국에 아지트가 하나씩 있고 다음 달에는 성수에 하나가 더 생긴다.



'다음'이라는 대기업에 들어갔던 이유는 큰 회사에 가야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만 해도 작은 회사가 커진다는 건 한국에선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성격 상 양복보다는 사복을 입고 싶었다. 덥고 비오는 날은 샌들을 신고 싶었기 때문에 당시 내게 선택지는 다음밖에 없었다.

그런 '다음'을 나온 이유는 두 가지다. 한 가지 이유는 '딱 봐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입사한 후 세월호가 침몰했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으로 수 많은 20~30대 희생자가 나왔다. 내 또래였던 가자지구 희생자들을 보며 정서적인 타격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사회인이 된 내 자신이 남들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는 걸 느꼈다. 남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려면 내 영역에서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봐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결심이 굳었던 때였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다음에 입사한 지 9개월 만에 '다음카카오'로 합병됐다. PC에서 모바일로 중심이 바뀌는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지금 중심이라고 여기는 것을 계속 하고 있으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대응하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세상이라는 정글에서 많이 부딪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해보고 실패라도 해보자는 마인드였다. 시작할 당시 나이가 어린 편이라서 1년 정도 해보다가 안 되면 다시 대기업 공채를 지원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트레바리는 아직 성공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회원 수 3000명은 절대 많은 숫자가 아니다. 대한민국에만 5000만명이 살고 서울에만 1000만명이 산다. 현실 명확히 직시하면 고작해야 3000명 짜리 커뮤니티일뿐이다. 그래서 트레바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물론 그렇지 않도록 만들어야겠지만 1년 후에 트레바리가 없어질 확률이 남아있을 확률보다 크다. 연 매출 수 십억원 회사가 성공했다고 하긴 어렵다. 없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청년 창업가라서 창업을 추천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추천하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청년 창업을 예찬하는데 망하면 거기에 대해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경력과 경험이 부족한 청년이 성공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정말 뛰어난 케이스는 살아남는데 몇 없다. 청년이 창업했다고 하면 어른들이 창업한 것보다는 팬시(fancy)해 보이니까 주목하는 것일 뿐이라고 냉정하게 말하고 싶다.



대학생이었던 23살부터 친구들과 독서 모임을 했다. 독서모임은 다들 한 번씩은 해 보는 것 아닌가. 독서모임이라는 게 책을 읽고 서로 진지한 얘기도 나누고 독후감도 쓰고 술도 마시는 하나의 패키지 상품이라고 느꼈다. 이 과정 자체에 대한 애정과 재미가 생겨서 꽤 열심히 했다.

대학 때 했던 독서모임을 5년간 했으니 독서모임에 관해서 다른 20대 창업자들과는 다르게 나는 경력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 때 이것저것 실험도 해봐서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노하우가 생겼다. 게다가 독서모임은 재밌는데 독서모임 운영은 재미없기 때문에 재미없는 일을 돈을 받고 대신 해준다면 사람들이 돈을 낼 거라고 생각했다.

'돈 내는 독서모임'이라는 창업의 시작은 '사람들이 돈 내고 독서모임을 하러 올까'하는 가설 검증부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 10명에 한해서 "3만원을 내고 독서모임하러 올래" 검증했는데 성공했다. 그 다음 10명을 더 모아봤다. 이 사람들이 다음 달에도 또 돈을 내고 하겠다고 하더라. 그 다음에는 '4개월씩 시즌제로 묶으면 할까?' 이런 식으로. 가설을 하나씩 세워서 '이게 되나'하고 시도해보면서 검증을 거쳐 지금까지 키워왔다.

(사진=스냅타임)

사실 트레바리를 하기 전 창업 아이템은 망했다. '착한 의류' 사업이었는데 내가 몰랐던 것도 너무 많았고 경솔했다. 하지만 곧바로 트레바리를 시작했다. 남들보다 용기가 있는 것도, 돈이 많았던 것도 아니다. 실패하더라도 아직 20대니 어려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 달에 쓰는 돈도 30만원 정도밖에 안 됐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구할 수 있는 돈이라서 당장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 안되면 다시 기업 공채에 지원하면 된다는 일종의 안전장치가 있었다.

트레바리는 처음엔 건너 건너 아는 분이 사무실을 공짜로 빌려줘서 거기서 시작했다. 친구의 친구, 지인의 지인 이런 식으로. 아니면 그냥 카페에서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한테도 말을 막 걸었다. 처음 사람들 모는 과정에서 까인 적도 많았다. 대신 처음에는 친구들을 꼬드겨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독서 모임에 돈을 낼까'하는 생각부터 시작했다.

(사진=트레바리)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은 더 친하게'가 트레바리의 모토다. 아무리 다른 취향이 있는 사람도 무조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토론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도 이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장 욕심나는 건 나의 스토리를 갖고 싶은 거다. 만화책을 매우 좋아하는데, 내가 마음에 드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트레바리를 하면서 욕심이 많다는 걸 점점 깨닫는다.

'Think Big, Start Small'이란 말을 좋아한다. 지금은 3000명에 불과하지만 전 국민이 트레바리라는 독서 모임으로 연결되고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꿈을 꾼다.

(사진=트레바리)

[한정선 기자, 박새롬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