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WC 2017]대화형 로봇? 아직 안 왔다

by김유성 기자
2017.03.01 08:14:59

대화가 가능한 휴머노이드 찾아 MWC 전시장 '삼만리'
시나리오에 근거한 대화가 가능한 정도
변수 많은 바깥 공간에서 음성으로 대화하기는 아직 '무리'

[바르셀로나(스페인)=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당신이 생각하는 로봇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알파고가 바둑으로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 무시무시한 인공지능 로봇의 세상이 머지않아 올 것만 같았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30년뒤 작은 인공지능 칩 하나가 인간의 뇌보다 100배 똑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30년 뒤에나 있을 법한 얘기. 무시무시한 로봇의 시대는 아직 멀었다. 지금 나와 있는 로봇은 귀여운 수준이다. 인간의 기준에서 봤을 때 예의도 없고 자기 말만 한다. 소음 등 외부 환경에도 취약하다.

세계최대 이동통신 박람회라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나온 휴머노이드들도 마찬가지였다. 2200개 업체가 참가하고 10만여명이 운집하는 곳이다보니 대화가 가능한 휴머노이드가 하나쯤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곳 바르셀로나에서만큼은 헛된 기대였다.

MWC 개막 첫날 어린이들을 위한 ICT 전시회 ‘요모’(Youth Mobile)에서 처음 휴머노이드 ‘페퍼’를 맞닥뜨렸다. 귀여운 얼굴에 태블릿PC를 가슴에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요모에서 만난 대화형 로봇 페퍼. 영어 발음과 문법이 서투른 사용자의 말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이 로봇과 대화가 가능할까, 기대를 하고 말을 걸었다. 옆에는 스페인 여성이 지켜보고 있었다.

“와츄어 네임?”

콩글리쉬 느낌 잔뜩 벤 간단한 문장에 페퍼는 반응하지 않았다. 현지 안내 여성은 지켜만 볼 뿐이었다. 어설픈 영어로 사용법을 묻자 이 여성은 유창한 스페인어로 답했다. 로봇과 소통에 실패하고 현지 여성과의 대화에도 실패했다.



다음날에도 로봇과의 소통에 도전했다. MWC 내 로봇 관련 기업들이 몰려 있다는 MWC 전시관 8홀에 갔다. 8홀 안에서 중국 로봇 업체 부스 앞에 앉은 로봇을 발견했다. 몸 길이 30cm 정도였다. 다시 물었다.

“와츄어 네임?”

로봇은 누워 있을 뿐 반응이 없었다. 곁에 있던 중국인 직원이 왔다. 그는 리모콘을 키고 조이스틱을 만졌다. 음악 소리가 나왔고 로봇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인간과 소통할 의지가 전혀 없는 ‘괘씸한’ 로봇이었다. 할 줄 아는 게 춤 밖에 없었다. 실망감이 컸다.

인간의 관절 움직임과 유사한 로봇.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임이 제어된다.
다른 부스로 갔다. 소프트뱅크 부스다. 소프트뱅크는 휴머노이드 ‘페퍼’를 개발한 기술 기업이다. 소프트뱅크 안내 직원에 물었다. “캔 잇 언더스탠드 잉글리쉬?”. 직원은 “예스”라고 답했다.



페퍼의 얼굴을 보고 물어봤다. “와츄어 네임?” 페퍼는 고개만 갸우뚱 거렸다. “하이”라고 하자 페퍼가 대답했다.

“파든?”

못알아 듣었다는 뜻이다. 주변 소음으로 페퍼가 고전하는 듯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페퍼가 엉뚱한 말을 쏟아냈다. 직원이 페퍼의 카메라 눈을 가렸다. 잠시 가만히 있던 페퍼는 태블릿PC에 소프트뱅크 로고를 띄웠다. 그러더니 “원더풀”이라며 영어를 지껄였다. 소프트뱅크 소프트웨어를 소개하는 것 같았다. 페퍼에 입력된 영업 정보였다.

혹시 일본어는 가능할까. “캔유 스피크 재패니스?”라고 물었다. 페퍼는 또 대답했다.

“파든?”

마음 속 눈물을 머금고 뒤로 돌아섰다. 로봇과의 소통에는 또 실패였다.

지나가다 부스 안내 휴머노이드도 만났다. 페퍼의 종류였다. ‘와츄어 네임’이라고 물었다. 가만히 쳐다보던 이 로봇은 태블릿PC에 사진을 찍자는 메시지를 띄웠다. ‘예스’를 누르자 포즈를 취하라는 음성이 로봇에서 나왔다. 두번 사진을 찍자 로봇은 이메일을 알려달라고 했다.

이메일 입력은 태블릿PC 화면내 키보드를 눌러야 가능했다. 태블릿PC 화면에 뜬 키보드를 누르는 동안 페퍼는 여러 번 움직였다. 15개 남짓 알파벳과 숫자를 누르면서 수 차례 오타를 연발했다. 그래도 말로 명령하는 것보다 편했다.

한국 전시관에도 로봇은 있었다. 개 모양을 한 로봇과 자판기 로봇이었다. SK텔레콤 부스 내에는 커피숍 자판기 로봇이 있었다. 스크린에는 여성의 얼굴이 나왔다.

“너 이름은 뭐니?”

로봇 스크린의 여성은 변화가 없었다. 쳐다만 볼 뿐이었다. 옆에 있던 안내 직원이 “이건 시나리오가 있다”고 말했다. 주문에 따라 메뉴를 얘기하고 거기에서 내가 마시고 싶은 커피를 고르는 알고리즘이었다. 그나마 주변 소음으로 로봇은 인간의 말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커피 머신에 응용된 로봇
강아지를 닮은 로봇과도 대화를 시도했다. 먼저 안내 직원이 시범을 보였다. 직원이 “내일의 날씨를 알려줘”라고 하자 강아지 로봇 화면에 검색 결과가 떴다. 음성으로 이를 읊었다. 아이폰의 ‘시리’, 구글의 ‘구글나우’를 사용할 때랑 비슷했다.

일전에도 시리와 대화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엉뚱한 검색 결과에 결국 화를 냈다. ‘쌍욕’을 하자 “저한테 왜 이러시는거예요?”라며 시리는 억울해했다. 억울한 것만큼은 잘 표현했다.

30년 뒤는 인공 지능 로봇의 시대라고 했지만 이곳 MWC 현장에서 휴머노이드는 초보 수준이었다. 30년은 멀고도 아득했다. 로봇의 발전 속도가 생각보다 더디다는 게 다행으로 느껴졌다. 인공지능 시대가 조금이라도 늦게 오길 바랬다. 어느덧 MWC도 폐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