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9.12.31 11:38:00
연극 ''에쿠우스''
근육질 말(馬) 보느라 정작 말(言)은 안들려
[조선일보 제공] 혼란스러웠다. 연극 《에쿠우스(Equus)》는 비극인데 관객은 숭고한 주인공이나 좌절이 아니라 다른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넋을 낚아챈 건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말(馬)들이었다. 절대다수인 여성 관객은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중간 휴식) 때 온통 말 이야기뿐이었다.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근육질의 말 같았다. 그렇다면 연극이 변한 것인가, 관객이 달라진 것인가.
주인공 알런 스트랑(류덕환)은 사랑하던 말들의 눈을 발굽파개로 찔러 법정에 선다. 알런의 정신 감정을 맡은 다이사트 박사(조재현)는 그가 뭔가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연극은 사건을 재구성하는 셈인데, 초반부에 다이사트는 이렇게 말한다. "저 소년은 오직 너제트라는 말만 포옹합니다. … 저 놈의 말 대가리를 제가 뒤집어쓴 것 같습니다.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1막에서 관객은 최면에 빠진 알런이 벌판에서 너제트를 타는 장면을 본다. 마구간은 그에게 하나의 신전(神殿)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야성(野性)을 꿈꾸는 다이사트는 알런에게 점점 질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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