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톺아보기]술 주정(酒精)엔 경쟁이 없다
by박수익 기자
2016.03.12 09:36:37
소주의 원료 ''주정'' 만드는 10개사 중 5개사 상장
대한주정판매에 일괄 납품·판매해 경쟁강도 낮아
소주제조사 마케팅전쟁땐 산업 파이도 덩달아 커져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흔히 술을 마시고 정신없는 행동을 하면 ‘술 주정이 심하다’는 표현을 합니다. 이때는 술주(酒)자 술취할정(酊)을 씁니다. 주식시장에도 주정과 관련있는 회사들이 있습니다. 술과 밀접한 관계는 있는데 뜻은 다릅니다. 술주(酒)자 깨끗할정(精), 영어로 에탄올이라고 하는 색깔 없는 투명한 액체입니다.
공업용이나 의학용으로도 사용하지만 소주의 원료로 많이 쓰입니다. 주정에 물(정제수)을 부어서 희석하고 약간의 첨가물을 섞어주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처음처럼이나 참이슬같은 희석식소주가 됩니다. 소주병 뒷면에 쓰여있는 원재료를 살펴보면 실제로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주정을 만드는 회사는 총 10곳이 있고 이 가운데 주식시장에 상장한 회사도 5곳이나 됩니다.
먼저 뉴스를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하이트진로홀딩스(000140)가 자회사 하이트진로에탄올을 창해에탄올(004650)이라는 회사에 매각한다는 공시가 나왔습니다.
| 3월 11일 창해에탄올이 하이트진로에탄올 지분 100%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공시 화면.(자료: 금융감독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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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진로에탄올과 창해에탄올은 모두 에탄올(주정)을 만드는 업체입니다. 창해에탄올이 이번 M&A를 완료하면 업계 점유율 1위로 올라섭니다. 그런데 주정산업의 특성은 다른 산업과 많이 다릅니다. 왜 그런지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주정을 만드는 회사는 시장점유율(생산량) 기준으로 진로발효, 창해에탄올, 일산실업, 서영주정, 풍국주정, MH에탄올, 한국알콜, 롯데칠성, 서안주정, 하이트진로에탄올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진로발효(018120), 창해에탄올(004650), 풍국주정(023900), MH에탄올(023150), 한국알콜(017890)이 상장회사입니다. 물론 롯데칠성이나 하이트진로에탄올도 상장회사이거나 모회사가 상장되어 있지만. 순수 주정업체만 보면 5곳이 상장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자여러분들은 처음처럼과 참이슬 맛을 잘 구분할 수 있는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맥주 맛은 얼추 구분하겠는데 소주맛은 정말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소주 맛을 구분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입니다. 보통은 그냥 도수에 따라 ‘독하다, 덜 독하다’ 정도만 느끼실 수 있을 텐데요, 그 이유가 주정산업 특성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정은 쌀·보리 같은 곡물을 발효시켜 불순물을 제거해서 만든 것입니다. 주정은 알코올도수가 95%인데요. 이것을 바로 먹으면 속에서 불이 나겠죠. 따라서 주정에 물(정제수)을 일정비율로 섞어서 도수를 낮추면 참이슬이나 처음처럼같은 희석식소주가 됩니다. 소주제조사마다 다른 첨가물 조금씩 넣긴 하지만 맛이 아주 미세하게 다를 뿐이죠.
2월 초 삼광글라스(005090)라는 종목을 분석하면서 소주병 만드는 곳은 특정 주류회사와 계약관계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주정업체는 주류회사와 계약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관련기사 ‘쏘맥’이 유리병업체 실적에 미친 영향
대한주정판매회사라는 일종의 총판 역할을 하는 도매상이 따로 있습니다. 10개의 주정업체가 주정을 만들면 주류회사와 바로 거래하지 않고 대한주정판매에 일괄 납품합니다. 매년초 한국주류산업협회와 도매업자인 대한주정판매가 필요한 수량을 예측·협의해 각 주정업체에 만들어야할 수량을 지정해 줍니다. 그렇게 각 업체들이 생산한 주정을 모아서 대한주정판매가 탱크로리에 담아서 소주회사로 공급하는 것입니다. 주정업체들이 마음대로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고 규칙이 있습니다.
대한주정판매는 각 주정회사들이 주주로 참여해 일정 지분을 나눠가지고 있습니다. 이 지분율이 주정업체들의 생산량과 매출을 결정하는 핵심요인입니다. 위의 그림처럼 지분율에 따라 판매량이 정해집니다. 당연히 시장점유율도 지분율에 따라 결정되겠죠. 일종의 약속입니다. 특정업체가 만든 주정이 특정 소주제조회사로 바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주의 핵심 원료인 주정의 차이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소주애호가들이 어느날 갑자기 소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단결하지 않는 이상 산업위험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주정산업 자체만 보면 거의 차별화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대한주정판매 지분율에 따라 움직이니까, 달리기시합으로 따지면 1위~5위까지 계속 같은 순서로 달려서 결승선까지 골인하는 셈입니다. 한마디로 경쟁하지 않는 시장입니다.
상장회사 5곳의 시장점유율만 비교한 표입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약속이나 한 듯 점유율 순위가 일정하죠. 실제로 약속을 그렇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상장한 주정업체들을 보실 때는 우선 개별업체보다는 산업전체 업황의 사이클부터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나라 소주 3대업체가 참이슬의 하이트진로, 처음처럼의 롯데주류, 좋은데이 만드는 무학이 있습니다. 이들 3사의 점유율이 80%입니다.
이들이 어떤 새로운 소주시장을 놓고 마케팅전쟁을 벌인다고 하면 주정산업의 파이도 커지는 것입니다. 그만큼 산업전체의 생산량이 늘어나게 되니까요. 실제로 처음처럼이 2006년 초에 출시됐는데요, 당시는 롯데주류가 아닌 두산이 만들었었는데, 하이트진로와 엄청난 마케팅전쟁이 벌어졌습니다. 2006년 소주 출고량이 7.4% 증가했고, 덩달아 주정 출고량도 3.7% 증가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도주나 과일소주, 탄산소주라는 것도 결국 소주업체들의 마케팅 전략이거든요. 사람들의 주량이 어느날 갑자기 늘 수는 없기 때문에 소주시장 규모도 급격하진 증가하지 않습니다. 다만 요즘 우리 국민들의 삶이 너무 고단해서 그런지 소주시장 규모가 일정수준 유지되면서 조금씩은 오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정업체 주가도 어떤 소주가 요즘 ‘유행이더라’고 하면 이 회사들 주가가 움직이곤 합니다.
어떻게 보면 투자자 입장에서 구별하기 어려운 무미건조한 주식일 수도 있겠죠. 산업이 안정적이지만 이 말은 반대로 성장가능성이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식투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현재보다 미래가치를 보고 베팅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회사들이 꼭 주정사업만 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사업도 같이하고, 약간 다른 특성들이 있습니다. 여기 차별화된 점을 어느정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우선 창해에탄올은 코스닥사장사인데 자회사가 코스피상장사로 있습니다. 보해양조(000890)라는 곳의 지분 31%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이외의 지역별로 소주 브랜드가 다른 것을 아실 텐데요, 보해는 광주·전남지역에 ‘잎새주’라는 소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회사 제품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것은 ‘보해복분자주’와 ‘매취순’입니다. 그리고 창해에탄올은 주정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발효기술을 응용해 바이오화장품 사업한다고 합니다. 다만 아직 신규사업이라 수익이 본격화되는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회사 관련 뉴스가 나왔습니다. 하이트진로가 자회사 하이트진로에탄올이라는 회사를 창해에탄올에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한주정판매 점유율에 따라 생산한다고 했으니까 창해에탄올의 점유율 높아지겠죠. 현재 창해에탄올의 점유율은 14.3%로 진로발효(16.5%)에 이어 2위인데 하이트진로에탄올(5.6%)을 인수하면 19.9%로 1위가 됩니다. 다만 주정산업의 특성상 다른 산업처럼 1위라고 더 생산하거나 가격결정권 쥐면서 시장을 흔들 수 있는 산업은 아닙니다.
풍국주정이라는 상장회사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연결기준으로 매출액의 50%는 주정 사업에서 나오고 나머지 50%는 산업용가스에서 나옵니다. 주정산업이 성장성이 낮으니까 이걸 만회하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선도산업과 에스디지라는 자회사가 가스산업을 합니다. MH에탄올이라는 회사도 있습니다. 이 회사의 이름인 ‘MH’는 무학의 약자입니다. 무학그룹 소속이었다가 계열분리했고 원래 이름도 ‘무학주정’이었습니다. 무학그룹 창업주의 장남이 무학, 차남이 MH에탄올의 최대주주입니다. 두 회사을 연결하는 지분관계는 없습니다. 아울러 좋은데이 소주가 잘 팔린다고 해서 MH에탄올이 수혜를 보는 것은 아닙니다. 주정산업의 특성상 일괄납품·판매 제도 때문입니다.
<이 기사는 SK증권의 ‘소주사 경쟁은 주정사를 춤추게 한다’, 신영증권의 ‘주정업 10년 만에 다시본다’ 보고서와 각사 정기보고서를 기초로 별도 취재 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