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금융돋보기]아리송한 분할상환·비거치식 규정…누가 적용받나

by김동욱 기자
2015.07.31 09:00:00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정부는 지난 22일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을 내놨습니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빚 증가세가 심상치 않자 총량 관리에 나선 겁니다. 주택담보대출(375조원)을 포함해 가계부채는 1100조원에 이릅니다. 정부는 대출 건전성 등을 고려할 때 가계부채가 당장 문제가 될 가능성은 작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올 하반기로 예상되는 미국의 금리 인상 등을 대비해 이번 대책을 내놨다고 설명했습니다.

대책의 핵심은 주택대출 개편입니다. 내년부터 3~5년간 이자만 내다가 만기에 대출원금을 갚는 만기일시상환·거치식 대출 형태를 이자만 내는 기간을 1년 이내로 줄이고 원금도 처음부터 나눠 갚는 분할상환·비거치식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겁니다. 고정금리 대출을 유도하기 위해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을 땐 추후 금리 상승 리스크를 반영해 대출한도를 줄이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소득 심사도 강화하기로 했는데요. 과거엔 집을 담보로 은행에 맡기기만 하면 소득이 없어도 신용카드 사용액 등을 대신 제출해 대출을 받는데 별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식으로 소득자료를 제출하면 설령 집이라는 담보물이 있더라도 대출한도를 다 채워 대출받기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총부채상환비율(DTI)·주택담보비율(LTV) 등 대출규제는 따로 손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7월 말로 끝나는 LTV·DTI 규제 완화 조치를 8월 1일부터 1년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대출규제 완화 조치가 1년 더 시행되긴 하지만 정부가 소득심사를 강화하기로 한 만큼 이 규제와 별개로 소비자로선 대출 문턱이 높아진 걸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대책이 발표된 뒤 시장에선 혼선이 빚어졌습니다. 바로 분할상환·비거치식(거치기간 1년 이내) 규정 때문입니다. 이 규정의 적용대상을 어디까지로 봐야 하는지를 두고 시장에선 갈팡질팡한 모습이 감지됐습니다. 예컨대 이런 겁니다. 이번 대책 때문에 신규 분양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거란 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예비 입주자가 입주 전 잔금을 치르기 위해 주택대출을 받을 때 정부가 발표한 규정이 바로 적용되면 주택대출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이유로 거론됐습니다. 또 소득 검증이 강화되면 잔금대출을 받더라도 예상한 것보다 한도가 줄여 잔금을 치르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이번 대책 발표로 신규 분양시장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위원회가 신규 분양은 예외로 둬 새로 바뀐 주택대출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사실 정부가 대책 발표 때 보도자료에 이 부분을 적지 않아 시장 혼선을 자초한 측면이 있습니다.



보통 신규 분양아파트에 당첨되면 입주까지 두 번 은행 대출을 받습니다. 입주 전 건설사 보증을 낀 중도금대출(신용대출)을 통해 집값을 나눠 갚고 입주 때 집을 담보로 주택대출을 받아 나머지 잔금을 치릅니다. 중도금대출은 신용대출이어서 이번 대책과 관련이 없습니다. 잔금대출은 주택대출 형태여서 이번 정부가 발표한 대출규정이 적용되는지를 놓고 혼선이 빚어졌는데요. 정부가 신규 분양엔 분할상환·비거치식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한 만큼 잔금대출을 받을 땐 거치식·만기일시상환 방식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잔금대출 땐 원래도 DTI 규정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득 검증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소득이 없다고 해서 대출한도가 줄어 잔금을 치르는데 애를 먹을 일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새로 바뀐 규정은 기존 주택에 한해서만 적용됩니다. 시기도 내년부터입니다. 이를 위해 현재 시중은행과 은행연합회는 TF(테스크포스)를 꾸리고 세부 대출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습니다. 애초 정부는 큰 틀만 제시하고 세부사항은 은행 스스로 정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앞서 대책 발표 때 수요자가 주택자금을 마련하는데 애를 먹지 않도록 다양한 예외 사항을 두겠다고 밝혔는데요. 그렇다고 해도 내년부터 거치식·만기일시상환 대출은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은행들이 사실상 거치식 상품은 취급하지 않고 비거치식 상품(1년 이내)만 취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은행들은 1년 이내의 거치식 상품을 취급해도 비거치식 상품을 고르면 금리혜택을 줘 소비자들을 유도한다는 계획입니다.

물론 집을 담보로 생활자금을 마련하는 경우는 지금처럼 거치식·만기일시상환 형태로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부적인 대출 가이드라인은 올 10월쯤 발표될 예정입니다.